삼성전자가 시스템반도체 역사상 최대 규모의 시설 투자를 벌이는 화성의 새 반도체공장을 통해 반도체 위탁생산사업에서 반전 기회를 보고 있다.
삼성전자는 최근 대만 경쟁사인 TSMC에 기술력과 생산 능력이 뒤처져 반도체 고객사 확보에 고전하고 있는데 화성 새 공장 가동이 향후 위탁생산사업의 성패를 결정하는 변곡점이 될 수 있다.
▲ 김기남 삼성전자 DS부문 대표이사 부회장(왼쪽)과 정은승 삼성전자 파운드리사업부 사장. |
23일 업계에 따르면 삼성전자가 약 6조 원의 투자를 계획한 화성의 새 반도체공장에 갈수록 높은 기대를 걸고 있다.
삼성전자가 최근 개발을 마친 EUV(극자외선)기반 7나노 반도체 위탁생산 공정이 화성 반도체공장 완공 전까지 실적에 의미있게 기여하기 어려울 것으로 예상되기 때문이다.
삼성전자는 10월 미국에서 기술설명회 '테크데이'를 열고 기존 10나노 공정과 비교해 반도체 성능을 최대 20%, 전력 효율을 50% 높일 수 있는 7나노 반도체의 상용화에 성공했다고 밝혔다.
하지만 삼성전자 관계자는 "7나노 반도체 위탁생산은 아직 시범 생산을 하고 있는 수준으로 봐야 한다"며 "정확한 대량생산 계획과 시기를 밝히기 어렵다"고 말했다.
화성의 새 반도체공장이 7나노 EUV 위탁생산 전용으로 2020년부터 가동될 예정을 세운 만큼 삼성전자가 다른 반도체공장에 7나노 공정 도입을 미루고 있기 때문으로 분석된다.
삼성전자가 화성 반도체공장을 본격적으로 가동하면 기술력과 원가 경쟁력을 앞세워 반도체 위탁생산시장에서 강력한 우위를 차지할 것으로 예상된다.
삼성전자에서 세계 최초로 도입한 EUV공정은 반도체 미세공정의 한계를 넘을 수 있는 차세대 기술로 5나노, 3나노 등 차기 공정 개발과 상용화를 앞당기는 데도 기여할 수 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삼성전자는 EUV 도입을 위해 7나노 공정 개발 속도가 상대적으로 늦어지면서 경쟁사인 대만 TSMC에 반도체 위탁생산시장의 기술 주도권을 완전히 빼앗기게 됐다.
TSMC는 2017년 말부터 7나노 공정을 상용화해 양산을 시작하면서 애플과 퀄컴, 엔비디아와 AMD 등 글로벌 주요 반도체기업의 최신 반도체 위탁생산을 대부분 독점적으로 수주했다.
폰아레나 등 외국언론에 따르면 TSMC는 올해 7나노 공정으로 50종 이상의 반도체를 위탁생산했고 2019년에는 100종이 넘는 반도체에 7나노 공정을 적용할 계획을 세우고 있다.
삼성전자는 현재 주력으로 삼는 10나노 공정을 TSMC와 비슷한 시기에 개발해 양산을 시작했지만 7나노 반도체 위탁생산은 TSMC와 약 2년 가까운 격차로 뒤처질 수밖에 없는 상황에 놓여있다.
삼성전자가 7나노 공정에 EUV를 전면적으로 도입하고 전용 공장을 짓기로 한 결정이 결국 TSMC에 위탁생산시장 기술 우위를 완전히 내주는 전략 실패가 됐다는 분석도 일각에서 나온다.
EUV는 아직 초기 기술이라 공정 기술 개발과 양산 안정화에 시간이 필요하고 투자 부담도 큰 데다 새 공장을 짓고 양산을 시작하려면 더 오랜 시간이 걸릴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하지만 TSMC도 뒤늦게 삼성전자를 뒤따라 7나노 공정에 EUV 적용 계획을 내놓은 점을 볼 때 삼성전자의 결정이 '2보 전진을 위한 1보 후퇴'가 될 수 있다는 분석도 나온다.
삼성전자가 TSMC에 선두를 빼앗긴 사이 EUV공정 개발과 투자에 오랜 시간과 비용을 들인 만큼 EUV 공정의 비중 확대와 차기 미세공정 개발에 훨씬 앞서나갈 공산이 크기 때문이다.
결국 삼성전자가 2020년부터 본격적 가동을 앞둔 화성 새 반도체공장이 위탁생산사업에서 TSMC를 제치고 다시 선두 지위를 확보할 중요한 반전의 계기가 될 수 있다.
▲ EUV장비 도입이 예정된 삼성전자 화성 반도체공장. |
하지만 삼성전자가 이미 TSMC에 빼앗긴 반도체 고객사를 되찾아오는 일은 만만치 않을 수 있다.
애플과 퀄컴, 엔비디아 등 세계 주요 반도체기업은 올해 일제히 TSMC의 7나노 공정을 적용해 성능을 대폭 끌어올린 시스템반도체를 내놓았다.
반도체 고객사들이 삼성전자의 EUV 기반 7나노 공정을 활용하는 대신 이미 대규모 양산으로 검증을 거친 TSMC의 7나노 공정을 계속 활용하기로 한다면 삼성전자의 새 반도체공장은 가동률을 높이지 못해 오히려 실적에 부담을 더욱 키울 수도 있다.
결국 삼성전자는 2019년부터 EUV 기반 7나노 반도체의 시범 양산을 진행하며 마케팅에 힘을 쏟아 최대한 많은 위탁생산 고객사를 끌어오는 데 온힘을 쏟게 될 것으로 보인다.
삼성전자 관계자는 "반도체 고객사에 적극적으로 기술과 인력 지원을 통해 생태계 확대에 주력하고 있다"며 "화성 반도체공장의 7나노 이하 첨단 공정은 삼성전자의 기술 우위를 유지하는 데 핵심 역할을 할 것"이라고 말했다. [비즈니스포스트 김용원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