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한재 기자 piekielny@businesspost.co.kr2018-12-20 14:03: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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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현욱 광장건축사사무소 소장이 19일 경기 판교 한 카페에서 '완두콩주택'의 효용성을 설명하고 있다. <비즈니스포스트 성현모 기자>
“아파트를 눕혀라.”
이현욱 광장건축사사무소 소장은 진정한 도시재생을 위해 위로 우뚝 솟은 아파트를 옆으로 눕혀야 한다고 봤다.
아파트가 아닌 낮은 주택을 일렬로 배치한 로우하우스(Row House), 이른바 ‘완두콩주택’을 복잡한 도시문제의 대안으로 제시하고 있는 것이다.
문재인 정부가 대규모 개발을 지양하는 도시재생뉴딜을 주요 부동산 정책으로 꺼내들었지만 수도권을 중심으로 재건축, 재개발 등 개발요인에 따른 집값 상승은 여전히 도시 노동자의 상대적 박탈감을 높이고 있다.
비즈니스포스트는 국토교통부가 수도권 3기 신도시를 발표한 19일 도시 주택문제의 근본적 대안을 들어보기 위해 경기 판교의 한 카페에서 ‘땅콩주택’으로 유명한 건축가 이현욱 소장을 만났다.
이 소장은 “재개발과 재건축을 통한 도시재생사업에는 한계가 왔다”며 다양성을 지닌 주택단지를 허물고 획일화된 고층 아파트를 올리는 재개발, 재건축 문화를 도시 주택 문제의 근본 원인으로 꼽았다.
그는 “아파트는 건설부터 유지관리까지 너무 많은 에너지를 소비하고 도시의 다양성을 훼손한다”며 “진정한 도시재생을 위해서는 아파트를 옆으로 눕힌 로우하우스를 만들어야 한다”고 말했다.
로우하우스는 저층 단독주택을 옆으로 나란히 연결한 형태의 공동주택으로 고개를 옆으로 기울여 보면 아파트를 눕힌 형태를 띠고 있다. 유럽에서 보편적으로 볼 수 있는 주택 형태다.
▲ 영국의 로우하우스. <이현욱 소장>
이 소장은 많은 사람들이 아파트를 눕히면 세대 수가 줄어들 것이라고 생각하지만 이는 큰 오해라고 말한다.
그는 “도시에서 땅은 매우 중요한 자원으로 용적률이 몹시 중요하다”며 “로우하우스는 주택과 주택의 동 사이의 거리를 최소화해 아파트의 세대수와 용적률을 그대로 유지한다”고 강조했다.
서울 아파트는 보통 용적률이 200%대에서 형성되는데 로우하우스 역시 보통 250%의 용적률을 보인다는 것이다.
이 소장은 “땅콩주택을 시작한 것도 결국 이 로우하우스를 위한 것”이라며 “영국, 네덜란드, 프랑스 등 유럽 국가들은 이미 로우하우스를 통해 재건축이나 재개발 없이 도시의 형태를 오랫동안 유지하고 있다”고 말했다.
그는 로우하우스에 완두콩주택이라는 이름을 붙였다. 땅콩주택이 단독주택 2채를 이어 붙인 형태라면 완두콩주택은 땅콩주택을 5채, 10채 등으로 줄줄이 이어붙인 것이다.
이 소장이 말하는 완두콩주택의 장점은 명확하다.
우선 공사비가 적게 들어 집값을 크게 낮출 수 있다. 고층 아파트를 짓기 위해서는 첨단기술이 필요하지만 완두콩주택은 첨단기술이 없더라도 누구나 지을 수 있어 대형 건설사의 시공을 필요로 하지 않는다.
단독주택을 옆으로 줄줄이 붙인 만큼 층간소음이 없다. 도시에서 상상하기 힘든 마당, 다락방, 테라스 등도 각 세대마다 가질 수 있다.
에너지도 적게 든다. 단적으로 엘리베이터가 필요 없다. 당연히 관리비도 적게 나온다.
재건축도 필요 없다. 자체 리모델링이 가능해 스스로 도시재생을 가능하도록 한다. 이를 통해 도시는 자연스럽게 다양성을 확보한다.
▲ 유럽의 로우하우스. <이현욱 소장>
이 소장은 “완두콩주택의 확대를 위해서는 정부와 정책을 만드는 사람들의 사고의 전환이 필요하다”며 “주택은 도시재생과 도시의 다양성을 만드는 핵심요인인데 완두콩주택이 변화의 시작이 될 수 있다”고 말했다.
이 소장은 2011년 땅콩주택으로 대중적 인지도를 얻은 뒤 한국토지주택공사(LH)의 요청으로 대형 건설사를 상대로 완두콩주택 설명회를 진행했다. 결국 대형 건설사의 사업으로 이어지기도 했다.
GS건설은 경기 김포 운양동에 완두콩주택 형태의 ‘자이더빌리지’를 지었고 2017년 평균 33대 1의 높은 경쟁률로 분양에 성공했다.
이 소장은 과거 땅콩주택을 직접 지어 효용성을 입증했던 것처럼 지금은 땅콩주택의 에너지효율을 한 단계 끌어올리는 실험을 하고 있다.
그는 경기 용인 동천동에 ‘동천동 베스트빌’이라는 이름으로 단열기능을 한 단계 높여 에너지 효율성을 강화한 ‘수퍼땅콩집’을 짓고 있다.
수퍼땅콩집은 기존보다 단열을 대폭 강화한 땅콩주택으로 수도, 전기, 가스 등 모든 관리비를 1년에 100만 원 이하로 낮추는 것을 목표로 한다.
이 소장은 이를 위해 2015년 캐나다로 건너가 에너지 효율을 높이고 탄소배출을 줄인 친환경적 목조주택을 짓는 방법을 알려주는 ‘수퍼이(Super-E) 하우스’ 프로그램을 이수하기도 했다.
동천동 베스트빌은 이 소장이 수퍼이 하우스 기준에 맞춰 처음 짓는 주택단지다.
이 소장은 수퍼이 하우스 기준을 완두콩주택에 적용하면 도시에 짓는 완두콩주택 역시 한 달 관리비를 10만 원 이하로 낮출 수 있을 것으로 보고 있다.
▲ 이현욱 소장이 짓고 있는 '동천동 베스트빌' 주택. <이현욱 소장>
이 소장은 건축업계에서 일반 건축가들과는 조금은 다른 길을 가는 건축가라는 평가를 받는다.
국내에 땅콩주택을 소개해 땅콩주택 열풍을 불러일으킨 것은 물론 단독주택의 관리비를 낮추기 위한 실험을 통해 단독주택의 단열 기준을 바꾸는 데 기여했다.
최근에는 사실상 재능기부 형식으로 서울 도봉구 행복구민청 설계를 맡아 애초 50억 원으로 잡혀 있던 공사비를 20억 원대로 줄이기도 했다.
이 소장은 남들과 조금은 다른 길을 가는 과정에서 이런 저런 오해를 받았다. 올해 초에는 설계비를 떼먹었다는 사기죄 혐의로 경찰조사를 받은 사실이 언론을 통해 알려지며 논란을 겪기도 했다.
이 소장은 “2016년 소형주택도 대형주택처럼 설계와 감리를 분리하는 법안이 시행되면서 벌어졌던 일”이라며 “건축주가 감리의 책임을 설계를 담당했던 내게 물으면서 경찰에 고발했고 경찰 조사결과 무혐의로 끝이 났다. 현재 당시 보도를 했던 언론사 등을 상대로 명예훼손 소송을 진행하고 있다”고 말했다.
이 소장은 1970년 생으로 경원대학교(현 가천대학교) 건축공학과를 졸업했다. 현재 광장건축사사무소 소장, 이집소(이현욱좋은집연구소) 소장 등을 맡고 있다.
이 소장은 대중에게 땅콩주택을 한국에 소개한 건축사로 유명하다. 한 필지에 두 가구가 사는 듀플렉스하우스(duplex house) 개념을 아이들에게 설명하다 마침 옆에 놓여 있던 까지 않은 땅콩을 보고 영감을 얻어 땅콩주택이라는 이름을 지었다고 한다.
이 소장은 친구와 함께 경기 용인 동백지구에 직접 땅콩주택을 지은 이야기를 담은 ‘두 남자의 집짓기’ 책을 통해 대중적 인지도를 얻었고 이후 ‘나는 마당 있는 작은 집에 산다’ ‘굿바이 아파트 집 짓기의 정석’ 등의 책을 집필하며 대중과 소통을 이어가고 있다.
올해 초 부업으로 판교에 카페를 하나 열었고 요즘은 케이크 만드는 재미에 푹 빠져 있다고 한다. 여전히 두 남자의 집짓기를 통해 소개한 경기 용인 동백지구에 지은 땅콩주택에 '잘' 살고 있다. [비즈니스포스트 이한재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