삼성전자가 반도체 호황에 힘입어 누렸던 가파른 실적 성장세를 뒤로 하고 내년부터 본격적으로 실적 방어를 위한 전쟁을 준비해야 하는 상황에 놓였다.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은 경영 전면에 나선 뒤 처음으로 삼성전자에 닥친 전사적 위기에 대처하는 능력을 증명해야 하는 시험대에 오르게 됐다.
이 부회장은 중요한 시기에 연말 임원인사와 조직개편에서 주요 경영진을 유임하고 역할과 담당 조직도 거의 바꾸지 않으면서 '
이재용 시대'를 열고 있는 전문경영인에 높은 신임을 재확인했다.
이승우 유진투자증권 연구원은 14일 "삼성전자의 실적 하향 추세가 더 가파르고 뚜렷해졌다"며 "내년 연결기준 영업이익이 올해보다 25% 줄어든 46조 원에 그칠 것"이라고 내다봤다.
메모리반도체의 급격한 업황 침체로 삼성전자가 반도체에 전체 실적을 크게 의존하고 있던 약점이 고스란히 드러나며 내년 사업 전망에 드리운 먹구름이 갈수록 짙어지고 있다.
디스플레이와 스마트폰, 가전 등 다른 사업도 세계의 경기 침체와 스마트폰 등 IT기기 수요 둔화 등의 영향을 받아 반도체의 실적 타격을 만회하기 역부족일 것으로 것으로 보인다.
삼성전자의 연간 영업이익은 2014년부터 꾸준한 상승세를 보였는데
이재용 부회장이 경영 전면에 나선 뒤 처음으로 큰 폭의 감소가 예상된다.
이 부회장이 내년 실적 부진 전망에 대응해 꺼내든 첫 전략은 올해 연말 임원인사와 조직개편에서 대표이사를 포함한 경영진을 대부분 유임하고 이들의 역할과 조직에 거의 변화를 주지 않은 것이다.
삼성전자가 지난해 대규모 세대교체 인사로 선임한 새 대표이사 3인 가운데 일부가 교체될 수 있다는 전망이 나왔지만 이 부회장은 기존 경영진을 재신임하며 더욱 힘을 실어줬다.
삼성 전자 계열사와 삼성물산 등 다른 계열사에도 대부분의 경영진이 유임되는 기조를 유지했다.
삼성 계열사의 한 관계자는 "올해 LG그룹이 연말 임원인사에서 '전쟁 중에는 장수를 바꾸지 않는다'는 방침을 가장 먼저 앞세웠다"며 "삼성 연말인사에도 이런 분위기가 반영된 것"이라고 말했다.
삼성전자가 해외 스마트폰업체 및 반도체기업과 치열한 경쟁을 이겨내고 글로벌 경기 침체를 극복해 실적을 방어하는 일은 어려운 싸움이 될 수밖에 없다.
이 부회장은 기존에 앞세우던 성과주의와 신상필벌 원칙을 잠시 뒤로하고 핵심 사업을 진두지휘하는 주요 경영진에 신뢰를 보이면서 안정적 경영체제를 구축했다.
김기남 삼성전자 DS부문 대표이사 부회장이 연말인사에서 승진해 이 부회장과 같은 직위에 오른 점도 이 부회장이 전문경영인을 신뢰하고 있음을 보여주는 사례로 꼽힌다.
▲ (왼쪽부터) 김기남 삼성전자 DS부문 대표이사 부회장, 김현석 CE부문 대표이사 사장, 고동진 IM부문 대표이사 사장. |
이 부회장은 한편으로 '
이재용 시대'에서 향후 핵심 경영진으로 급부상할 만한 인물을 대거 발굴하며 본격적으로 삼성전자를 이끌어나갈 토대를 마련하고 있다.
이번 연말인사에서 사장으로 승진한 노태문 무선개발실장은 최근 이 부회장의 인도 출장에 동행할 정도로 신임을 받으며 차기 주요 경영진으로 입지를 더욱 굳혔다.
삼성전자가 지난해와 올해 인사에서 모두 차기 CEO 후보군을 두텁게 한다는 기조를 앞세우며 부사장 승진자를 대폭 늘린 점도 이 부회장 시대의 인재풀을 넓히기 위한 목적으로 분석된다.
김기남 사장과
김현석 CE부문 대표이사 사장,
고동진 IM부문 대표이사 사장은 17일부터 열리는 삼성전자 글로벌 전략회의를 주재하며 본격적으로 내년 실적 방어를 위한 전략 구성을 시작한다.
이 부회장이 직접 글로벌 전략회의에 참석해 경영방침과 목표를 전달할 가능성도 거론된다. [비즈니스포스트 김용원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