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이 중국의 '반도체 굴기'를 견제하고 나서고 중국 정부가 이에 강력히 반발하면서 두 나라 사이 갈등이 높아지고 있다.
양국 정부가 상대국 반도체기업을 강력히 견제함에 따라 미국 반도체기업 마이크론과 중국 푸젠진화가 무역분쟁의 희생양이 되는 양상이어서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가 반사이익을 볼 수도 있다.
▲ 김기남 삼성전자 DS부문 대표이사 사장(왼쪽)과 박성욱 SK하이닉스 대표이사 부회장. |
19일 외국언론을 종합하면 중국과 미국 사이 무역분쟁의 초점이 반도체사업에 모아지고 있다.
로이터에 따르면 중국 정부 관계자는 최근 세계무역기구(WTO) 회의에서 미국 정부의 반도체 관련 보호무역조치가 세계무역협정 위반이라고 주장했다.
마이크론이 반도체시장을 독점해 거두는 이익을 지키려는 목적으로 미국 정부가 중국 반도체기업의 시장 진입을 방해하고 있다는 것이다.
미국 정부는 중국 D램업체인 푸젠진화가 미국에서 반도체 장비나 소재, 관련된 소프트웨어 등을 수입하지 못하도록 하는 새 보호무역조치를 결정했다.
중국도 대응에 나섰다. 중국 국가시장감독관리총국 반독점국은 최근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 마이크론 등 세계 D램시장을 과점한 3개 업체의 가격 담합 의혹을 수사하는 과정에서 의미 있는 성과를 거뒀다는 발표를 내놓았다.
지난해 말부터 진행하고 있던 수사 내용을 중국 당국이 뒤늦게 밝힌 것은 결국 미국 정부의 규제 조치에 맞대응하기 위한 협상카드를 꺼내든 것이라는 분석이 나온다.
최도연 신한금융투자 연구원은 "중국의 반독점 조사 관련 발표는 이미 연초부터 나왔던 내용으로 과도하게 해석할 필요가 없다"고 바라봤다.
중국 당국이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 마이크론에 모두 가격 담합을 이유로 메모리반도체 가격 인하를 요구하거나 막대한 과징금을 물리는 등의 추가 조치를 내놓을 가능성은 낮다.
중국 스마트폰 제조사와 서버업체의 메모리반도체 수요가 꾸준히 늘고 있는 상황에서 중국 당국이 반도체 공급 협상의 주도권을 잡기는 현실적으로 어렵기 때문이다.
반도체기업의 한 관계자는 "중국 당국에서 이번 수사와 관련해 따로 전달받은 내용은 없다"며 "조사에 성실하게 임하고 있다"고 말했다.
다만 미국 마이크론은 D램시장에서 점유율이 상대적으로 낮고 중국과 미국 정부의 이해 관계에 가장 긴밀하게 얽혀있는 만큼 무역분쟁에 따른 피해를 볼 가능성이 상대적으로 높다.
김경민 하나금융투자 연구원은 "미국과 중국 사이 무역분쟁이 격화되면 한국 반도체기업보다 미국업체가 상대적으로 더 불리하다"고 분석했다.
중국은 이미 6월 기술특허 침해를 이유로 마이크론이 메모리반도체 일부 제품을 중국에서 판매하지 못하도록 하는 판결도 내렸다. 미국과 분쟁이 확산되면 이런 조치가 더 강화될 공산이 크다.
이런 사태가 벌어지면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가 중국에서 마이크론의 반도체 수요를 대체하면서 사업을 확대할 기회를 얻을 수 있다.
미국이 중국 D램 선두업체로 꼽히는 푸젠진화의 시장 진출을 막기 위해 보호무역 조치를 더욱 강화하고 있는 점도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에 긍정적 영향을 미칠 가능성이 충분하다.
월스트리트저널에 따르면 미국 정부는 푸젠진화가 반도체 기술을 확보하지 못하도록 하기 위해 마이크론을 주축으로 여러 관련된 기업의 힘을 합쳐 기술 유출 방지체계를 구축하고 있다.
중국은 그동안 미국기업의 반도체장비와 기술 등을 적극적으로 활용해 반도체시장 진출을 준비해 왔는데 시장 진출이 늦어지면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의 과점체제가 더 오래 지속될 공산이 크다.
미국과 중국이 서로 상대 국가의 반도체기업을 상대로 제재조치를 강화할 조짐을 보이면서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가 '어부지리'를 얻을 기회도 열리고 있는 셈이다.
월스트리트저널은 "미국은 마이크론의 반도체기술을 국가 핵심자산으로 판단해 지켜내려 하고 있다"며 "마이크론도 중국 정부를 상대로 자체 대응이 어렵다고 판단해 미국 정부에 적극 협조하고 있다"고 보도했다. [비즈니스포스트 김용원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