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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장] “한국 산업계 '갈라파고스화' 막으려면 ESG공시 의무화 앞당겨야”

손영호 기자 widsg@businesspost.co.kr 2024-09-23 15:22: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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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장] “한국 산업계 '갈라파고스화' 막으려면 ESG공시 의무화 앞당겨야”
▲ 23일 이종오 한국사회책임투자포럼(KoSIF) 사무국장이 서울 여의도 국회 소통관 기자회견장에서 발언하고 있다. <비즈니스포스트>
[비즈니스포스트] "우리나라가 ESG(환경·사회·지배구조) 공시 의무화 시점을 재계의 요구대로 2029년으로 미루면 국제 투자자로부터 외면받아 '산업계의 갈라파고스화'를 자초할 가능성이 높습니다."

이종오 한국사회책임투자포럼(KoSIF) 사무국장은 23일 서울 여의도 국회 소통관에서 '한국형 ESG 공시 의무화'를 촉구하기 위한 기자회견에서 "세계 경제가 지속가능한 경제로 빠르게 재편되고 있어 글로벌 투자자들이 ESG 공시에 주목하고 있다"며 이같이 말했다.

이날 기자회견은 한국사회책임투자포럼, 그린피스, 녹색전환연구소, 더불어민주당 기후행동의원모임 ‘비상’이 함께 마련했다.

이 사무국장은 "투자자들은 지속가능한 기업의 가치와 경쟁력은 ESG 공시 능력에 있다는 점을 잘 알고 있다"며 "우리나라 기업들이 국제 투자 시장에서 소외되는 일을 피하려면 지속가능공시 의무화 시점을 최대한 앞당겨야 한다"고 지적했다.

한국형 ESG공시란 한국회계기준원 지속가능성기준위원회(KSSB)가 국제지속가능성기준위원회(ISSB)를 한국 기준에 맞춰 수립하고 있는 의무공시를 말한다. 

의무화 대상은 자산 2조 원 이상 상장기업이며 차후 단계적으로 다른 기업들까지 확대된다. 공시 내용에는 온실가스 배출량, 감축목표, 환경영향평가 등을 담은 기후공시가 포함돼 있다.

공시 시행 시기를 결정하는 금융위원회는 한국형 ESG공시 도입 시점을 애초 2025년으로 잡고 있었으나 지난해 10월 갑자기 시행 일정을 2026년 이후로 연기했다. 

대한상공회의소가 발표한 설문조사에 따르면 기업들은 공개된 KSSB 공시 초안에 대체로 부정적 의견을 가진 것으로 나타났는데 이런 점이 반영된 것으로 추정된다. 

올해 6월 대한상의 발표에 따르면 국내 자산 2조 원 이상 125개 기업들 가운데 58.4%는 ESG 공시 시행 적정 시기를 2028년~2030년으로 보는 것으로 조사됐다.

공급망 내 배출을 다루는 스코프 3 공개와 관련해서도 한국형 ESG 공시에서는 이를 제외하거나 유예해야 한다는 의견이 90%를 넘었다.

이에 이종오 국장은 “국제적으로 120여 개 투자 관련 기관들은 올해 5월 국제지속가능성기준위원회 ESG공시 기준을 2025년부터 도입할 것을 촉구한 바 있다”며 “특히 연기금을 중심으로 한 글로벌 투자자들은 ESG공시와 관련된 목소리를 더욱 높이고 있다”고 강조했다.

그러면서 “세계 최대 국부펀드인 노르웨이 펀드는 최근 일본 ESG 공시 기준과 관련해 이를 ISSB 기준에 부합하도록 조정해야 한다는 의견을 냈다”며 “캐나다 연금 투자 펀드는 자국 ESG 공시가 ISSB가 제시한 국제적 기준을 충족해야 한다는 성명을 발표했다”고 설명했다.

이 국장은 “유엔 책임투자원칙(UN PRI)은 우리나라 ESG공시와 관련해 최근 한국 KSSB 공시 초안이 국제적으로 신뢰할 수 있는 정보 공개를 보장하지 못할 수 있다는 우려를 표명하며 ISSB 기준 준수를 촉구하는 서한을 보내기도 했다”고 말했다.

국제적으로 보면 주요국가들은 자체적으로 수립한 ESG공시 기준을 의무화했거나 의무화를 앞두고 있다.

유럽연합(EU)은 지난해 1월 기업지속가능성보고지침(CSRD)을 발효했고 올해 1월에는 CSRD 보고 양식인 지속가능성 공시기준(ESRS)을 도입했다.

미국은 증권거래위원회(SEC)가 올해 3월에 기후공시를 발표했고 내년부터 본격적으로 시행에 나선다.

이런 상황에서 한국만 ESG공시 의무화 시점을 재계 요구대로 2029년 이후로 미룬다면 국외 ESG 의무 공시에 대응력을 갖추지 못한 국내 기업들의 경쟁력이 떨어질 우려가 있다는 지적도 나왔다.
[현장] “한국 산업계 '갈라파고스화' 막으려면 ESG공시 의무화 앞당겨야”
▲ 지현영 녹색전환연구소 변호사가 발언하고 있다. <비즈니스포스트>
지현영 녹색전환연구소 변호사는 “주요 국가들과 비교해 매우 후진적인 행태로 비교적 늦은 2027년을 의무화 시기로 잡고 있는 일본조차도 이미 법적 근거를 마련하고 일본 금융청은 공시 및 인증에 관한 실무그룹을 구성해 공시제도 로드맵을 제시하고 있다”며 “매 회의마다 결과를 투명하게 공개하고 자국 기업들이 시행 시기 전에 준비할 수 있도록 하고 있다”고 지적했다.

이어 “반면 우리나라의 금융위원회는 2021년부터 한국형 ESG 공시와 관련해 구체적인 로드맵을 제시한 바가 없어 이런 부작위가 국내 기업과 자본 시장의 경쟁력을 떨어뜨리고 있다”며 “현재 자본 시장에서는 기업의 전략 및 관행을 평가할 때 해당 국가가 견고한 지속가능성 관련 재무 공시를 갖췄는지에 따라 평가 결과가 달라지고 있다”고 설명했다.

지 변호사는 “금융위원회는 지금이라도 하루빨리 구체적 로드맵을 제시해 지속가능공시를 2026년부터 의무화하는 것이 우리 기업과 경제를 살리는 길이고 이를 위한 기반으로 자본시장법이 조속히 개정돼야 한다”고 말했다.

녹색전환연구소는 앞서 대한상의가 진행한 설문조사에서 나타난 결과가 구체적인 로드맵이 제시되지 않은 현 상황에 기업들이 느끼고 있는 혼란이 반영된 결과라고 분석했다.

지 변호사는 “최근 설문조사에 따르면 국내 기업 가운데 75%, 투자자들 가운데 85%가 지속가능성 의무공시 초안에 오히려 동의하고 있다”며 “이에 따라 국내 주요 기업들은 명확한 로드맵을 공개해줄 것을 (금융위에) 촉구하고 있는 상황”이라고 설명했다.

이어 “기업들이 원하는 것은 의무화 연기가 아니라 빠르고 명확한 로드맵 제시를 통한 불확실성 해소이자 명확하고 상세한 가이드라인 수립”이라며 “경제단체들은 기업 다수 입장을 제대로 대변하지 않고 있다”고 지적했다.

기자회견에 참여한 환경단체들은 공동성명문을 통해 금융위가 2026년부터 ESG 공시를 자율 공시 형태가 아닌 의무 공시로 시행하고 스코프 3 배출 정보를 반드시 포함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현장] “한국 산업계 '갈라파고스화' 막으려면 ESG공시 의무화 앞당겨야”
▲ 발언하는 박지혜 더불어민주당 국회의원. <비즈니스포스트>
이번 공동성명문 기자회견에는 박지혜, 김성환, 박정현, 위성곤, 이소영, 엄미애, 한정애 더불어민주당 의원 등 정치권 인사들도 다수 참석해 한국형 ESG공시 의무화 시점을 앞당겨야 한다는 데 의견을 보탰다.

박지혜 의원은 “ISSB는 IFRS 지속가능공시 기준을 제정해 해당 기준에 따르는 기업들이 2025년부터 기후공시를 시행하도록 하고 있다”며 “한국 정부는 이런 국제사회 흐름을 외면한 채 소극적 대응으로 일관하고 있으며 주무부처인 금융위는 국제사회 흐름을 외면한 채 소극적 대응으로 일관하고 있다”고 강조했다.

이어 “코리아 디스카운트를 해소하겠다면서 기업 밸류업을 얘기하고 있는데 진정한 기업 밸류업은 단기적 이익 증대가 아니라 장기적 지속가능성을 보장하는 조치여야 한다”며 “이번 기후공시 의무화 역시 그런 맥락에서 이해할 수 있을 것”이라고 지적했다. 손영호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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