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23일부터 사흘 동안 부산 해운대에서 열린 국제 논물환경공학회(PAWEES)에는 한국·일본·대만 등 주최국 3국뿐 아니라 인도네시아, 가나, 미국 등 논농사 지역의 연구자 180여 명이 참석해 주제별 토론을 벌였다. 사진은 고베대학의 타가노리 나가노 박사가 벼 재배 아시아삼각주에 대한 수해 및 염수침입 영향 완화를 위해 지리정보시스템(GIS) 기반 농업용수 통합관리 플랫폼을 개발하는 방안을 발표하는 모습. <비즈니스포스트> |
[부산=비즈니스포스트 이경숙 기자] 창문 밖에서 한낮의 푸른 바다가 여유롭게 물결치는 부산 한화리조트 해운대. 그러나 어두운 3층 회의실 안에선 30여 명의 학자들이 바깥의 눈부신 날씨엔 아랑곳하지 않고 열띤 토론을 벌이고 있었다.
인도네시아에서 ‘질밥’이라 불리는 베일을 쓴 여성이 화재 취약지역의 기온과 강우 패턴을 분석한 자료를 영사막에 띄우고 작물을 언제 심는 게 적절할지 연구한 결과를 설명했다. 인도네시아 스리위자야 대학의 리아니 무라로마 박사였다.
전 세계에서 온 다양한 피부색의 농공학자들이 연구방법과 결과를 두고 토론을 벌였다. 논문 심사를 연상케 하는 날카로운 질의응답이 이어졌다.
연구자들은 서로 다른 주제를 토론하는 네 군데의 회의실을 오가며 저마다 자신이 관심 있는 연구 결과를 듣고 의견을 주고 받았다.
국적과 피부색은 달랐지만 이들의 관심사는 하나였다. 기후변화의 시대, ‘농촌 자원의 현명하고 지속가능한 관리’를 통한 논농사와 물환경의 지속성을 높이는 방안이다.
한국·일본·대만 3개국이 공동주최하는 국제 논물환경공학회(PAWEES, International Society of Paddy and Water Envionment Engineering)가 23일부터 사흘 동안 부산 해운대에서 열렸다.
올해 학회에는 주최국 3국뿐 아니라 인도네시아, 가나, 미국 등 논농사 지역의 연구자 180여 명이 참석해 주제별 토론을 벌였다.
주제는 크게 네 가지였다. 토양과 물 관리를 위한 스마트기술, 농업 보전과 다기능, 물-에너지-식량-환경 넥서스와 지속가능한 개발목표(SDGs) 그리고 기후변화와 농업 리스크 관리가 그것이다.
◆ "농공학 해법들이 생업에, 지역사회에, 지구의 건강에 영향"
▲ 국제 논물환경공학회는 한국·일본·대만 3국의 농공학회를 주축으로 2003년 창립됐다. 사진 왼쪽에서 일곱 번째부터 김성준 국제 논물환경공학회장(건국대 교수), 최경숙 한국농공학회장(경북대 교수), 카주아키 히라마추 일본농공학최장(큐슈대 교수), 치하오 판 대만농공학회 사무총장(대만국립대 교수). <비즈니스포스트> |
PAWEES 회장을 맡은 김성준 건국대 사회환경공학부 교수는 개회사에서 “인간 활동과 우리 환경 사이의 복잡한 상호작용은 새로운 해결책과 능동적인 전략을 요구한다”며 “(논의) 주제의 중심에는 책임감 있는 스튜어드십, 기술 발전, 자연과의 조화로운 공존이라는 이상이 있다”고 강조했다.
김 교수는 또 “우리가 추구하는 해법들은 당면 분야를 넘어 사람들의 생업에, 지역사회에, 지구의 건강에 영향을 미친다”고 말했다.
토양 수분 측정 문제부터 가뭄 혹은 폭우에 잘 견딜 작물까지 많은 ‘해법들’이 이 자리에서 논의됐다. 구두 발표 89건, 포스터 전시 47건 등 이번 학회에서 논의된 연구결과만 136건에 이르렀다.
첨단 IT기술을 활용한 해법들도 눈에 띄었다. 2021년부터 심각한 가뭄으로 물 부족을 겪고 있는 대만에선 국립대만대 연구자가 인공신경망을 이용해 지하수 수위를 예측하는 방법을 발표해 동료들의 좋은 평가를 얻었다.
농촌 고령화로 저수지 안전사고 문제가 생긴 일본에선 국립농식품연구기구(NARO)가 저수지 경사면을 어떤 재질로 만들어야, 또 어떤 자세로 올라와야 노약자가 잘 올라올 수 있는지 모션캡쳐 기술을 적용해 실험했다.
한국에서도 다양한 해법 연구 결과가 발표됐다. 서울대팀은 물-에너지-식품-탄소-수질 넥서스를 이용해 작물 재배활동 영향을 평가했고 강원대팀은 장기적 지속가능성을 위한 탄력적 사회태체계 구축방안을 발표했다.
◆ “식량 수입 고려시 한국은 물 수입국, 워터리스크가 더 가중될 미래에 대비해야"
▲ 황세운 경상국립대 지역시스템공학과 교수(사진)가 ‘기후변화와 농업 리스크 관리’ 좌장으로서 마무리 발언을 하고 있다. <비즈니스포스트> |
10년째 이 학회에 관심을 가지고 참석했다는 황세운 경상국립대 지역시스템공학과 교수는 최근 들어 발표되는 연구주제들이 이전보다는 더 다채롭고 상세해졌다고 전했다.
기후변화로 인한 기상재해의 직접적인 피해가 증가해 연구자들의 관심이 늘어난 데다 기후변화에 관한 정부 간 협의체(IPCC)가 제6차 평가보고서를 발표한 후엔 기온 상승, 강우량 변동성 증가 등 신뢰성 높은 정보들도 늘어난 덕분이다.
황 교수는 “기후변화에 따른 농업관련 세부 분야에 대한 잠재적 취약성 평가, 기온 등 기상적 요소뿐 아니라 이산화탄소 농도 변화가 농작물에 주는 영향, 이모작이나 대기작에 대한 실험, 적절한 추수시기의 변화, 더운 기후 혹은 수해에 강한 품종 개발 등등 매우 다양한 연구가 이뤄지고 있다”고 말했다.
기후변화로 인한
워터리스크, 농업과 식량안보의 위기가 높아지고 있는 가운데 이러한 연구들은 지역, 국가 등 공동체들의 위기 대응 역량을 높일 수 있다.
이번 학회에서 ‘기후변화와 농업 리스크 관리’ 좌장을 맡기도 했던 황 교수는 “국가 차원으로 볼 때 농업의 기본 기능은 식량안보”라며 한국에서 식량안보는 물 부족 문제와 함께 봐야 한다고 지적했다.
한국은 식량의 절반 이상을 해외에서 들여온다. 2021년 기준 한국의 식량자급률은 44.4%, 곡물자급률은 20.2%다.
황 교수는 “수입 곡물 등 식량 생산에 들어간 물, 즉 가상수(Virtual water)를 고려하면 한국은 물 수입 국가”라며 “기후변화와 국제사회의 이해관계 다변화로
워터리스크가 더 가중될 미래에 대비해 전통 농업에 다양한 첨단 기술을 접목하는 농업 연구에 지속적인 지원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 인공지능 등 첨단기술 활용 위한 '데이터', 노후 저수지 안전 위한 '다기능화' 투자 필요
▲ 국제 논물환경공학회(PAWEES) 한국 집행위원인 송인홍 서울대 조경·지역시스템공학부 교수가 포스터 발표자료들을 전시한 공간에서 국내외 학회 참가자들에 관해 설명하고 있다. <비즈니스포스트> |
가뭄, 폭우, 수질 오염 같은
워터리스크는 농업에서 ‘1차적인 이슈’다.
PAWEES 한국 집행위원인 송인홍 서울대 조경·지역시스템공학부 교수는 “농업은 먹을거리를 생산하는 게 기본임무”라며 “가뭄이 와도 농업 생산이 가능하게 물을 항상 공급해주는 것이 항상 ‘1번’이 될 수밖에 없다”고 말했다.
이 때문에 송 교수는 저수지별 유입수량 등 계측 데이터의 축적이 매우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인공지능(AI)이나 머신러닝으로 기후변화에 따른 저수량이나 지하수위를 예측하려해도 일관성있게 축적된 데이터가 먼저 있어야 하기 때문이다.
송 교수는 “현재는 연구자별로 3~4년 연구한 데이터들이 산발적으로 존재하는데 이마저도 개인 보유 데이터라 다른 연구자들이 활용하기가 어렵다”며 “기상 관련 데이터를 기상청이 관리하듯 농업 관련 수자원 데이터도 농어촌공사 등 공공 조직을 중심으로 축적하고 관리되어야 한다”고 말했다.
그런데 물 부족 리스크를 낮춰주는 저수지는 자칫하면 다른
워터리스크를 일으킬 수도 있다. 폭우로 인한 붕괴와 침수 문제다.
지금 추세대로 지구 온난화가 가속돼 폭우가 집중적으로 내리는 현상이 더 심각해지면 낡은 저수지들이 무너져 침수 피해를 키울 수 있다.
송 교수는 “현재 1만7천여 개의 저수지가 있는데 이 중 95%는 지어진 지 60년 이상 된 것”이라고 말했다. 이어 “농어촌공사가 관리하는 대형 저수지 3500여 개는 잘 관리되고 있지만 지자체가 관리하는 나머지 저수지들 중엔 체계적인 관리가 안 되는 곳들이 있다”고 지적했다.
이 학회에서 논의되는 해법 가운데 하나가 저수지의 ‘다기능화’, 관광자원화다.
송 교수는 일제시대에 만든 예당저수지를 예로 들었다.
예산군 홈페이지에 따르면 2019년 예당호 출렁다리 개통 후 누적 방문객 수는 10월22일 기준으로 729만 명을 넘어섰다.
송 교수는 “예당호 출렁다리를 놓고 관광자원화한 후 지역경제에 보탬도 됐지만 저수지의 안전성도 크게 강화됐다”며 “사람들이 오가야 관심이 생기고 그래야 투자도 이뤄진다”고 설명했다.
지난해 일본 후쿠오카에서, 올해엔 부산에서 PAWEES 다음 학회는 1년 후 대만에서 열린다. 이경숙 기자
본 기획물은 정부광고 수수료로 조성된 언론진흥기금의 지원을 받았습니다.
[워터리스크, 물이 산업안보다] 폭우와 가뭄 등 극단적 기후현상은 세계 많은 지역에서 점차 일상이 되어가고 있다. 한국도 예외가 아니다.
지난해 9월 한반도에 몰아친 115년 이래 최악의 폭우로 포항제철소 고로는 사상 처음 가동을 완전히 중단했다.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는 반도체공장 운영에 필요한 수자원 확보에 어려움을 겪으며 투자 계획을 고심하고 있다. 물이 너무 많아도, 부족해도 문제다.
인구 증가와 산업 활성화, 기후변화로 ‘워터리스크(water risk)’, 물 위험이 높아지고 있다. 수자원을 안정적으로 관리하는 일이 산업 안보에 중요한 과제가 됐다. 워터리스크에 효과적으로 대응하지 못하면 반도체, 철강, 화학, 발전 등 주요 산업은 물론 국가와 지역경제도 위험해진다.
비즈니스포스트는 CDP한국위원회를 맡고 있는 한국사회책임투자포럼과 함께 국내외 주요 기업과 물 관리 선진국의 리스크 관리 및 대응사례를 발굴해 보도한다. 최신 동향과 해법 관련 기사들은 비즈니스포스트 워터리스크 페이지에서 볼 수 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