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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넷제로 히어로](1-1) 미국도 놀란 에이치투 흐름전지, 화석연료 대안 부각

이경숙 기자 ks.lee@businesspost.co.kr 2023-01-25 11: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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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font color='#949494'>넷제로</font> 히어로](1-1) 미국도 놀란 에이치투 흐름전지, 화석연료 대안 부각
▲ 에너지저장장치(ESS)용 흐름전지 전문기업, 에이치투(H2)는 자체 연구 개발을 통해 바나듐 레독스 흐름전지(VRFB)를 상용화한 국내 최초이자 유일한 기업으로 꼽힌다. 왼쪽은 에이치투 한신 대표, 오른쪽은 기술연구소 부문장인 허지향 이사. <비즈니스포스트>
[비즈니스포스트] “기후 문제는 곧 화석연료 문제입니다. 우리는 대담한 비즈니스 목표를 설정했습니다. 화석연료를 안 쓰게 하는 것입니다.”

화석연료 그러니까 석탄, 석유를 안 쓰게 하겠다고? 석탄과 석유는 증기기관차 발명 이래 인류 문명을, 산업을 움직여온 동력이 아니던가?

13년 차 제조업체 대표가 한 말이라고 하면 고개를 갸웃거리게 될 수도 있겠다. 그러나 562억 원의 투자 자금을 끌어오고 지식경제부장관상과 산업통상자원부 장관상, 국무총리표창까지 3관왕을 쓴 주인공이 한 말이라고 하면 다르게 들릴까.

에너지저장장치(ESS)용 흐름전지 전문기업, 에이치투(H2)의 한신 대표와 그가 2010년 창업한 에이치투는 그 '대담한 비즈니스 목표'를 현실로 만들고 있다.

과연 이들의 솔루션은 화석연료의 대안이 될 수 있을까. 대전 테크노밸리에 자리 잡은 에이치투에서 한 대표과 기술연구소 부문장인 허지향 이사를 만났다.

◆ 화석연료가 세계 탄소배출의 92%, 신재생에너지 보급 가속

역사상 처음 인류가 공동으로 해결에 나선 문제가 생겼다. ‘기후위기.’

기후변화에 관한 정부간협의체(IPCC)에 따르면 기후위기의 원인은 인간 활동에 있다. 증기기관차 발명 이후 인류가 땅 속에 잠자고 있던 석탄, 석유를 끄집어내 태웠기 때문이다.

1850년부터 2017년까지 약 2200기가톤(Gt)의 탄소가 이미 배출됐다. 가뭄, 한파, 폭우 같은 기후재앙은 점점 더 자주 또 더 넓게 나타나기 시작했다.

한 대표는 “2050년까지 산업화 이전인 약 100년 전 대비 지구 평균 온도가 1.5도 이상 올라가지 않도록 기온 상승을 억제해야 한다”며 “그러려면 지금보다 이산화탄소 배출을 연간 36.9기가톤 감축해야 한다”고 지적했다.

1기가톤은 10억톤이다. 한국의 한해 이산화탄소 배출량은 코로나 팬데믹 이후 7억톤 미만에 머물고 있다. 다시 말해, 인류는 한 해에 한국 같은 산업국가 53개가 배출하는 탄소를 줄여야 한다는 뜻이다. 쉽지 않은 목표다.

한 대표는 “문제는 간단하다”고 말했다. 화석연료를 쓰지 않으면 된다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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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국제에너지기구(IEA)가 2022년 발표한 세계 탄소배출량보고서에 따르면 2021년 세계 탄소배출의 92%는 화석연료가 차지했다. 그림은 에너지 관련 온실가스 배출량. <국제에너지기구>


그의 말처럼 온실가스 배출 문제의 핵심은 화석연료다. 국제에너지기구(IEA)가 2022년 발표한 세계 탄소배출량보고서에 따르면 2021년 세계 탄소배출의 92%는 화석연료가 차지했다. 석탄이 42%, 석유가 29%, 천연가스가 21%를 배출했다.

한 대표는 “온실가스는 전 세계적으로 에너지 산업이 가장 많이 배출하며 그중에서도 전력산업이 수송 부문과 함께 가장 큰 비중을 차지한다”며 “온실가스 배출을 효과적으로 줄이려면 전력 에너지 분야가 혁신적으로 변해야 한다”고 말했다.

전 세계는 전력 에너지원을 신재생에너지 같은 무탄소 전원으로 빠르게 바꾸고 있다. 미국 정부는 2021년 21%던 신재생에너지 비중이 2050년 44%로 2배 이상 높아질 것이라고 전망한다.

한국의 신재생에너지 확대속도도 만만치 않다. 한국 정부는 현재 7.5%인 신재생에너지 비중을 2036년까지 30.6%로 네 배 이상 늘릴 계획을 가지고 있다.

한 대표는 “이 중 대부분이 태양광과 풍력 발전으로 구성될 예정”이라며 “신재생에너지 발전단가가 하락하면서 전 세계적으로 태양광과 풍력의 보급이 폭발적으로 늘어나고 있다”고 말했다.

◆ 전력망 불안정성 야기하는 신재생에너지, 에너지저장장치가 대안

그러나 신재생에너지 비중이 커지면 전력 공급의 불안정성도 커진다. 한 대표는 “신재생에너지는 변동성, 간헐성이라는 특성 때문에 전력망에 큰 불안정성을 야기한다”고 지적했다.

태양광과 풍력이 대부분을 차지하는 신재생에너지는 햇빛, 바람이 없으면 생산되지 못한다. 그 탓에 2020년 미국 캘리포니아, 2021년 텍사스에서 대규모 정전사태가 일어났다.

반대로 햇빛과 바람이 좋아 수요보다 많이 생산되면 발전시설 가동을 일시 중단해야 한다. ‘출력제어’를 해야 한다. 바람이 많고 햇빛이 좋은 제주에선 지난해 132회의 출력제어가 발생했다. 전력이 과도하게 생산되면 과부하로 전력망에 피해가 일어나기 때문이다.

신재생에너지의 또 다른 문제는 시간대별로 다른 발전량이다. 태양광은 이른 오전, 늦은 오후에도 발전량이 줄어든다. 이 문제를 해소하려면 주로 천연가스(LNG) 발전소를 가동해 수요를 메꿔야 한다.

천연가스의 주성분은 메탄이다. 메탄은 지구온난화지수가 21이다. 이산화탄소보다 21배 강력한 지구온난화 효과를 일으키는 온실가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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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창업 때부터 에이치투의 흐름전지 개발을 이끈 허지향 이사가 한신 대표와 실험실에서 대화를 나누고 있다. <비즈니즈포스트>


한 대표는 “높은 발전 비용이 소요되는 신재생에너지는 수요가 없어서 버려지고 메탄을 배출하는 천연가스 발전을 같은 날 가동시키는 아이러니한 상황”이라며 “지금의 재생에너지는 반쪽짜리”라고 말했다.

화석연료 대체에 필요한 나머지 ‘반쪽’은 에너지저장장치다.

세계 22개국 70명의 연구진이 참여해 100가지 기후위기 솔루션을 제안한 ‘플랜드로다운’ 보고서는 “분산형 에너지저장장치는 여러 솔루션에 반드시 필요한 지원기술”이라고 평가했다.

이어 “에너지저장장치는 재생에너지를 충분히 활용하게 해주고 석탄, 석유, 가스 발전의 확대를 막는다”고 덧붙였다.

◆ 리튬이온전지 한계 뛰어넘는 바나듐 흐름전지, "대용량 장주기 에너지저장에 적합" 

한 대표는 “현재도 대용량 저장장치가 있으면 화석연료 발전을 줄일 수 있다”고 말했다. 전력 수요가 급증하는 ‘피크’ 시간대를 위해 예비해둔 석탄 혹은 LNG 발전소만 가동시키지 않아도 온실가스 배출을 줄일 수 있다는 것이다.

“전 세계 어디서나 밤에는 전력이 남아 돕니다. 잉여 용량이 있지요. 한국의 전기생산 용량은 130기가와트입니다. 그걸 밤에 저장해 60기가와트를 담아둘 수 있는 저장장치가 생긴다면 낮에 석탄 등 화석연료발전소를 돌리지 않을 수 있습니다.”

‘60기가와트’라고 하면 어느 정도 규모인지 감이 잘 오지 않을 것이다. 원전 1기가 일반적으로 1기가와트의 전력을 생산한다. 즉, 한 대표의 ‘가설’이 성립하려면 한국에서만 원전 60기에 해당하는 에너지저장장치가 필요한 셈이다. 참고로, 한국엔 25기의 원자력발전소가 있다.

이런 어마어마한 양의 에너지를 저장하려면 대용량, 장주기(Long-duration)의 에너지저장장치가 필요하다. 크게 전지에 저장(BESS)하거나 수소로 저장(HESS)하는 방식이 있다. 

하지만 요즘 널리 쓰이는 리튬이온전지에는 한계가 있다. 발화 즉 화재사고가 일어나고 있다는 점. 

그 대안으로 에이치투는 바나듐 레독스 흐름전지 즉 VRFB(Vanadium Redox Flow Battery)를 개발했다.

한 대표는 “VRFB는 물을 기반으로 한 전해액을 사용하기 때문에 화재에 대한 위험이 전혀 없다”고 말했다. 국내만 보더라도 리튬이온전지는 지난 5년간 37건의 화재사고를 일으켰지만 VRFB는 전 세계에서 단 한 건도 화재를 일으키지 않았다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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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흐름전지는 액체 상태의 전해액에 에너지를 저장한다. 저장 용기에 전해액을 넣어놨다가 펌프를 통해 전지 안으로 흘려보니 전기를 충전시킨다. <에이치투>


VRFB로 대표되는 흐름전지는 일반 배터리와 작동 방식이 다르다. 리튬이온전지는 전력 저장 물질을 전지 안에 담고 있다. 양극과 음극으로 구성된 전극 부분에 전기에너지를 저장한다.

반면 흐름전지는 액체 상태의 전해액에 에너지를 저장한다. 저장 용기에 전해액을 넣어놨다가 펌프를 통해 전지 안으로 흘려보내 전기를 충전시킨다.

따라서 흐름전지는 전해액 저장용기만 키우면 에너지 저장 용량을 손쉽게 늘릴 수 있다. 한 대표는 “VRFB는 화석연료 발전소를 대체하기 위한 대용량 장주기의 에너지저장장치를 구현하기에 매우 적합하다”고 말했다.

◆ 미국 최대 ESS 구축하는 기술력, 562억 원 투자 받은 비결은?

이런 아이디어로 에이치투는 울산 화력발전소를 비롯해 폴란드 신재생에너지국책연구소(KEZo) 등 14곳에 자사의 에너지저장장치를 공급했다. 총 31메가와트시(MWh) 용량이다. 

그중 눈을 끄는 건 미국 샌프란시스코 프로젝트다. 20메가와트시 용량의 이 설비는 2024년 상업운전에 돌입하면 미국 최대의 에너지저장장치로 등극할 예정이다.

샌프란시스코는 왜 하필 머나먼 한국 대전의 기업을 선택했을까. 창업 때부터 에이치투의 VRFB 개발을 이끈 허지향 이사는 기술의 차별성으로 세 가지를 꼽았다.

첫째, 장주기(long-duration) 에너지저장장치를 잘 구현했다. 둘째, 현존 이차전지 기술 중 수명이 가장 길어 20년에 이른다. 셋째, 발전사업자들이 가장 중요하게 보는 균등화발전비용(LCOE) 즉 발전설비의 총 수명기간에 발생하는 발전비용 측면에서 경쟁력이 높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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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흐름전지는 전해액 저장용기만 키우면 에너지 저장 용량을 손쉽게 늘릴 수 있다. 에이치투의 컨테이너 모듈형 흐름전지. 최대 출력은 74킬로와트, 설치용량은 385킬로와트시. <에이치투>


한 대표는 에이치투가 미국 오레곤의 ESS Inc, 중국의 룽커파워에 이어 흐름전지 생산능력 측면에서 세계 3대 기업이라고 자랑했다.

이를 기반으로 에이치투는 2025년 1천억 원, 2026년 5천억 원, 2027년 7천억 원 등 빠른 성장을 목표로 잡고 있다.

투자자들도 에이치투의 미래가치에 주목하고 있다. 에이치투는 2022년 말까지 562억 원의 투자를 유지했다.

그중 230억 원은 지난해 그러니까 국내외 벤처투자가 거의 반토막 난 시기에 받았다. 인비저닝파트너스 등 임팩트 투자자뿐 아니라 한화투자증권 등 재무적 투자자들도 참여했다. 에이치투가 사회환경적으로뿐 아니라 재무적으로도 기대되는 미래가치를 지녔다는 방증이다.

인비저닝파트너스에서 에이치투 투자를 담당한 박인원 수석심사역은 "에이치투는 자체적인 연구 개발을 통해 VRFB를 상용화한 국내 최초이자 유일한 기업"이라며 "현재 글로벌 장주기 에너지저장장치 분야에서 선도 기업으로 입지를 다지고 있다"고 평가했다. 

박 수석은 "대용량, 장주기 에너지저장기술의 발전은 환경 친화적이고 효율적인 에너지원으로의 대전환을 위한 필수 전제"라며 "VRFB는 재생에너지의 예비력으로 증가 중인 가스발전을 대체하는 것을 시작으로 궁극적으로는 에너지 분야의 탈탄소화를 가속하는 데에 기여할 것"이라고 설명했다.

VRFB 개발에는 국내에서도 롯데케미칼, OCI 등 대기업들이 뛰어든 바 있다. 창업 13년, 직원 55명의 이 소기업은 어떻게 대기업들을 제치고 세계 선도기업으로 떠오르는 데에 성공했을까. 빛나는 성공에 앞서 '왕대박 실패'의 흑역사가 있었다. (다음 편으로 이어짐.) 대전=이경숙 기자
 
[편집자주] 유사 이래 처음으로 인류가 하나의 목표를 향해 달려가고 있다. ‘2050넷제로’. 2050년까지 전 인류가 온실가스 순배출량을 제로 ’0’로 만들겠다는 뜻이다. 더 큰 기후재앙을 불러오지 않기 위해 인류는 달성해야 하는 최소한의 목표다.
하지만 유엔환경계획은 각 국가가 약속한 온실가스 감축 목표로는 2030년에 1%도 줄이지 못할 것이며 이대로면 세기말 지구 평균 기온이 2.6도까지 높아질 것이라고 경고한다.
이 절체절명의 위기를 기술로 뛰어넘는 기업들이 있다. 30년 전 IT기업들이 전 세계 산업의 디지털 전환을 이끌어냈듯, 이들은 기후위기 시대에 ‘넷제로 전환’을 이끌고 있다. 비즈니스포스트는 이들을 탄소중립을 이끄는 영웅들, 즉 ‘넷제로 히어로’라 이름 붙이고 2023년 연중 기획으로 발굴해 소개한다.
[넷제로 히어로] 지난해 투자액 86조, 기후테크 기업의 시대가 시작됐다
[넷제로 히어로](1-1) 562억 투자 받은 에이치투 "화석연료 대안은 흐름전지"
[넷제로 히어로](1-2) 에이치투 대표 한신,”왕대박 실패가 대박기술 낳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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