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이종오 한국사회책임투자포럼(KoSIF) 사무국장은 국민연금이 넷제로를 선언하고 기후변화 대응이라는 시대의 변화에 앞장 서야 한다고 본다. 세상이 변하려면 자본이 먼저 움직여야 하고 한국에서 가장 많은 자본을 움직이는 주체가 바로 국민연금이기 때문이다. <비즈니스포스트> |
[비즈니스포스트] 사회가 변하려면 무엇이 가장 앞장서야 할까?
이종오 한국사회책임투자포럼(KoSIF) 사무국장의 생각은 분명하다. 바로 ‘자본’이다.
그러면 한국에서 가장 많은 자본을 움직이는 곳은?
세계 3대 공적 연기금 가운데 하나로 올해 1월 말 기준으로 917조 원을 움직이고 있는 ‘
국민연금’이라는 데 누구나 이견이 없을 것이다.
이 국장이 2007년부터 현재까지 15년 넘게 한국사회책임투자포럼에서 활동하며
국민연금의 변화를 요구해 온 까닭이다.
이 국장은 “
국민연금이 기금의 지속가능성을 중심에 놓고 운용하면 한국의 자본시장이 그 방향으로 움직이고 그에 따라 기업도 변하고 결국 세상도 바뀌게 된다”고 말한다.
그래서 이 국장이 최근 가장 중점을 두는 주제는 ‘
국민연금의 넷제로 선언’이다.
기후변화 대응이 전 인류의 문제로 부상했고 지속가능한 발전은 이제 기업을 넘어 사회 전반의 과제가 됐다. 그 과제가 구체화 된 목표는 2050년까지 온실가스의 순수 배출량을 ‘0’으로 만들겠다는 ‘넷제로(Net-Zero)’다.
하지만
국민연금이 세계적 흐름에 제대로 호응하지 못하고 있다는 것이 이 국장의 생각이다.
이 국장은 “전 세계 유수 연기금 등 금융기관 등이 기후위기 대응과 기금의 지속가능성을 위해 넷제로를 선언하고 이행에 노력하고 있지만
국민연금은 세계 3대 연기금이라는 위상에도 불구하고 넷제로에 관심조차 없다”며 “그나마 2021년 탈석탄을 선언하기는 했지만 이제까지 2년이 다 돼 가도록 석탄투자 제한 기준도 만들지 못하고 있는 상황”이라고 지적했다.
국민연금이 머뭇거리는 사이 넷제로는 점점 자본시장과 기업 환경에 현실적 제약으로 구체화 되고 있다.
이 국장은 “유럽연합은 이미 2018년에 ‘지속가능금융 액션 플랜’을 만들면서 자본 흐름의 전환을 3대 목표 가운데 하나로 제시한 바 있다”며 “이후 유럽연합에서 탄소국경조정제도(CBAM), 공급망실사법 등을 제도화하면서 탄소배출 관련 규제는 점점 우리 기업과 자본시장에도 장벽이 되고 있다”고 짚었다.
넷제로와 관련된
국민연금의 변화를 유도하기 위해 이 국장이 주목한 개념은 바로 ‘금융배출량(financed emissions)’이다.
자본 투자를 주로 하는 금융기관 등은 제조기업과 달리 조직 자체가 직접적으로 온실가스를 배출하는 활동을 거의 하지 않는다. 하지만 금융기관이 투자한 자금은 제조기업의 온실가스 배출에 지대한 영향을 준다.
금융배출량은 투자, 대출, 보험 등 자본을 통한 금융기관의 온실가스 배출 기여를 산정하기 위해 사용된다.
이는 2021년 영국 글래스고에서 열린 제26차 유엔기후변화당사국총회(COP26)를 앞두고 결성된 ‘탄소중립을 위한 글래스고 넷제로금융연합(GFANZ)’ 설립으로 더욱 확산된 개념이다. 탄소회계금융파트너십(PCAF)에서는 금융배출량 산정의 표준을 제공한다.
글래스고 넷제로 금융연합에 현재 참여하는 금융기관의 수는 세계적으로 550개가 넘는다. 이들의 운용자산 규모는 150조 달러에 이른다.
이 국장이 활동하는 한국사회책임투자포럼은 18일 국내 최초로
국민연금의 금융배출량을 산정해 공개했다.
공개된 자료에 따르면
국민연금의 금융배출량은 2021년 기준으로 2710만3018톤으로 한국 전체 온실가스 배출량의 3.98%에 이른다.
이 국장은 “국내 1168개 기업 가운데 온실가스 배출량이 공시된 312개 기업만을 대상으로 한 결과”라며 “
국민연금이 국내는 물론 해외에서 주식과 채권, 대체자산에도 투자를 하고 있다는 점을 고려하면
국민연금 전체 자산의 금융배출량은 훨씬 많을 것”이라고 말했다.
이어 “한국이 진정으로 기후변화에 의미있는 대응을 하려면
국민연금부터 움직여야 한다는 점이 더욱 분명해진 것”이라고 덧붙였다.
국민연금이 넷제로 선언을 하고 금융배출량을 ‘0’으로 만들도록 투자의 방향을 바꾸는 일은 기금의 지속성에도 긍정적 영향을 줄 것이라고 강조했다.
이 국장은 "기후변화는 물리적 리스크, 전환리스크 등으로 기업가치와 금융기관의 수익성에 장기적으로 영향을 줄 수밖에 없다"며 "국내 기업 전반의 기후변화 대응 수준을 높이는 일은 장기 투자자이면서 국내 산업 전체에 투자하고 있는 '유니버셜 오너(Universal Owner)'인
국민연금의 수익성 제고와도 직결될 것"이라고 바라봤다.
이제
국민연금의 기금 운용에서 기후변화 위험의 고려와 기회 창출은 수탁자 의무이기도 하다.
올해 3월7일 ‘
국민연금 수탁자책임 활동에 관한 지침’을 개정해 환경(E) 영역의 중점관리사안 가운데 하나로 ‘기후변화 관련 위험 관리가 필요한 사안’을 지정했기 때문이다.
국민연금 수탁자책임 활동의 중점관리사안을 환경과 사회 영역으로 확장하면서 각각 환경은 기후변화, 사회는 산업재해로 지정하도록 한
국민연금 수탁자책임 활동 지침 개정도 이 국장이 2019년 '
국민연금 책임투자 활성화 방안'이 발표된 이후부터 지속적으로 제기한 결과물이다.
이 국장은 2007년 한국사회책임투자포럼에 설립 멤버로 참여해 2015년 ESG를 고려하도록 하는
국민연금법 개정, 2016년 가습기 살균제 가해기업에
국민연금의 투자 사실 공론화, 2018년
국민연금 스튜어드십 코드와 2019년
국민연금 책임투자 활성화 방안 도입 등
국민연금의 변화를 촉구하는 데 늘 앞장서 왔다. 이상호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