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재희 기자 JaeheeShin@businesspost.co.kr2024-12-10 16:43: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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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편집자 주>
주요 기업들이 변화와 쇄신에 방점을 둔 연말 인사를 실시했다. 경제 성장 부진과 글로벌 정세 불안에 대응하고 새 성장동력을 찾으려는 오너와 이사회 의지가 반영됐다. 이번 인사에서는 각 기업별로 위기 돌파에 특명을 안게 된 ‘키맨’의 등장이 주목받고 있다. 이들은 내년부터 본격적으로 중장기 목표 수립과 실행에 큰 영향력을 행사할 것으로 전망된다. 특히 윤석열 대통령의 비상계엄 사태에서 촉발된 탄핵 정국 속에서 존재감이 더욱 커지고 있다. 비즈니스포스트는 올해 실시한 인사에서 가장 주목받는 키맨의 주요 역할과 과제를 짚어본다.
[비즈니스포스트] 신학철 LG화학 대표이사 부회장이 구양모 LG그룹 회장의 굳건한 신뢰를 바탕으로 회사의 사업구조 개편에 더욱 속도를 낼 것으로 예상된다.
신 부회장은 석유화학 사업의 포트폴리오를 고도화하는 한편 전지소재, 바이오, 서스테이너블리티 등의 3대 신성장동력을 키울 계획을 가지고 있다. 이를 위한 투자여력도 지난해 편광판·소재 사업 매각을 통해 1조1천억 원 가량 확보해둔 상황이다.
▲ 신학철 LG화학 대표이사 부회장이 연임에 성공하면서 3대 신성장동력 육성 완수에 더욱 속도를 낼 수 있게 됐다. 사진은 9일 미국 워싱턴DC에 위치한 상원의원 건물을 방문한 신 부회장. <연합뉴스>
재계에서는 2018년부터 계속 자리를 지켜온 신 부회장이 회사의 포트폴리오 고도화 전략을 성공시켜 국내 석유화학업계의 구조적 위기를 넘길 발판을 마련할지 관심이 모인다.
11일 석유화학업계 취재를 종합하면 에틸렌, 프로필렌, 부타디엔 BTX 등을 생산하는 기초유분사업의 비중이 높은 국내 화학 기업들의 위기가 심화되고 있다.
중국의 자급화 기조에 따른 석유화학 설비 증설로 저가 제품이 시장에 쏟아졌으며 중동의 정유사들도 원유수요 감소에 대응해 원유에서 기초유분을 추출하는 COTC(Crude Oil To Chemical) 설비에 투자하면서 역내 공급과잉 상태가 지속돼서다.
롯데그룹, 한화그룹, SK그룹 등은 화학계열사들이 대규모 적자를 내자 올해 임원인사에서 화학계열사 사장단을 대거 교체하며 쇄신에 나섰다.
신학철 부회장의 사내이사 임기가 내년 말에 종료되는 LG화학에서도 리더십 교체여부가 관심사였으나 지난달 발표한 인사에서 구광모 LG그룹 회장은 신 부회장을 재신임했다.
회사의 사업 포트폴리오 개편을 주도하고 있는 그에게 체질개선 속도를 끌어올려 달라고 주문한 것으로 해석되는 대목이다.
이에 따라 신 부회장은 LG화학의 △전지재료 △신약 △서스테이너블리티 등 이른바 ‘3대 신성장동력’ 분야의 육성에 더욱 주력할 것으로 보인다.
3대 신성장동력은 그가 2021년부터 점찍고 선제적으로 육성한 분야이다. 회사 전체 투자의 60% 이상을 신성장동력 사업에 투자할 정도로 공을 들이고 있다.
회사는 전지소재 분야에서 2024년 연산 14만 톤 규모의 양극재 생산능력을 2026년 20만 톤으로 늘리고 LG엔솔 이외 매출 비중 40%까지 확대한다는 목표를 세워뒀다.
전기차 시장의 성장둔화세가 장기화되고 전기차 지원정책 축소·폐지를 선언한 도널드 트럼프 전 대통령의 재선으로 전방시장 상황에 따라 투자계획을 조절할 가능성도 충분하다.
다만 신 부회장은 9일(현지시각) 미국을 방문해 2023년 말 테네시주에서 착공한 양극재 공장과 관련 미국 정권 교체에도 계획 자체에는 큰 변화는 없다고 시사한 바 있다.
신약 분야에서는 항암·면역·대사·당뇨분야에서 지난해 기준 12개인 신약 후보물질을 2030년 20개까지 확대하겠다는 목표다. 2023년 초 약 8천억 원에 인수한 미국 제약사 아베오(AVEO)가 항암제 중심의 신약 파이프라인 강화의 중심에 선다.
서스테이너블리티 사업 육성은 부진에 빠진 석유화학 사업의 고도화와도 맞닿아있다. 석유화학 기초유분 사업의 비중을 낮추고 재활용 제품, 친환경 바이오소재, 신재생에너지산업 소재 사업을 키우겠다는 것이다.
기존 석유화학 분야도 고부가가치 제품 위주로 육성한다.
LG화학은 올해 미국과 인도 현지에 각각 아크릴로니트릴·부타디엔·스티렌(ABS) 공장을 준공하고 향후 추가 증설투자를 검토하고 있다. 또한 자동차 전장용 접착제 사업도 2030년까지 수천억 원 규모로 키우겠다고 지난 10월 발표했다.
일각에서는 LG화학 임원인사에서 이지웅 M&A 담당의 전무 승진을 들어 신성장동력 육성을 가속화할 인수합병 매물을 적극 찾아나설 것이라는 관측을 내놓기도 한다.
3대 신성장동력 육성과 함께 LG화학의 나프타분해시설 여수2공장의 매각여부를 결론짓는 것도 신 부회장의 몫이다. 지난해부터 하반기부터 꾸준히 매각설이 도는 해당 시설은 쿠웨이트석유공사 측과 매각협상이 진행 중인 것으로 알려졌다.
▲ 2018년 11월 LG화학 대표이사 부회장으로 영입된 신 부회장은 올해 임원인사에서 연임에 성공하면서 구광모 LG그룹 회장(사진)의 신뢰가 여전히 두텁다는 것을 증명했다. <연합뉴스>
신 부회장은 1957년 생으로 서울대 기계공학과를 졸업한 뒤 경력 대부분을 보낸 3M에서 수석부회장까지 오른 인물이다.
그는 LG그룹이 2018년 구광모 회장 체제 출범 이후 영입한 첫 번째 외부영입인사로 그룹 공채출신 인사를 기용하던 전통을 깬, 능력주의 인사의 대표적 사례로 꼽힌다. 올해 임원인사에서도 LG화학 대표이사 자리를 지키자 재계에서는 구 회장의 신뢰가 두텁다는 반응이 나온다.
그는 지난 6월 하계 다보스포럼 공동의장 선출 발표에서 "LG화학은 화학첨단소재 산업 분야부터 AI, 에너지, 헬스케어 등 다양한 분야의 글로벌 리더들과 협력해 전지 소재, 친환경 소재 등 3대 신성장동력 비즈니스로 전환을 더욱 가속화하겠다”고 말했다. 신재희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