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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Who Is ?] 이순우 전 저축은행중앙회 회장

서번트의 리더십, 업무에서 깐깐해 [2018년]
이상호 기자 sangho@businesspost.co.kr 2018-10-24 08: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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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애
[Who Is ?] 이순우 전 저축은행중앙회 회장
▲ 이순우 저축은행중앙회장.

이순우는 저축은행중앙회 회장이다.

저축은행에 대한 부정적 인식을 개선하고 저축은행이 금융환경 변화에 대응할 수 있도록 힘쓰고 있다.

1950년 12월15일 경상북도 경주에서 태어났다.

성균관대학교 법학과를 졸업한 뒤 상업은행(현 우리은행)에 입사했다.

우리은행 부행장과 수석부행장을 거쳐 우리은행 행장에 선임됐다.

우리금융지주 회장에 선임돼 재직하다 우리금융지주가 우리은행과 합병하면서 다시 우리은행 행장에 선임됐다.

저축은행중앙회 회장으로 재직하고 있으며, 임기는 2018년 12월27일까지다.

업무와 관련한 것은 깐깐하게 살피지만 고객과 부하직원을 섬기는 '서번트' 리더십을 갖췄다는 평가를 듣는다.

경영활동의 공과
[Who Is ?] 이순우 전 저축은행중앙회 회장
▲ 이순우 저축은행중앙회장(오른쪽)이 2016년 1월28일 이광구 당시 우리은행장과 연계사업 추진을 위한 포괄적 업무제휴협약을 체결한 뒤 악수하고 있다.
△롯데카드와 함께 첫 저축은행표 신용카드 선보여
이순우는 롯데카드와 손잡고 처음으로 저축은행 신용카드를 발급했다.

저축은행중앙회는 2018년 9월 롯데카드와 업무협약을 맺고 롯데카드의 ‘아임(I’m)’ 카드 라인업에 저축은행 전용카드를 선보였다. 저축은행이 발급하는 첫 신용카드다.

저축은행은 롯데카드를 이용한 신규 고객 확보와 카드 수수료 등 수익을 창출할 수 있게 됐고 롯데카드는 계열사 은행 창구가 없어 카드 발급 채널이 부족하다는 단점을 보완할 수 있게 됐다.

△GS리테일과 협약으로 저축은행 영업망 확장
이순우는 2018년 6월 저축은행중앙회와 GS리테일의 업무협약을 맺었다.

업무협약에 따라 7월부터 69곳의 저축은행 고객들은 GS25 편의점에 설치된 효성티앤에스의 현금자동인출기(ATM)를 이용하면 수수료 없이 예금인출을 할 수 있게 됐다.

GS25 편의점 1만2천 곳 가운데 1만 곳에 현금자동인출기가 설치돼 있고 이 가운데 80%에 이르는 8천 곳이 효성티앤에스의 현금자동인출기를 사용한다.

저축은행 고객이 편의점 현금자동인출기를 활용할 수 있게 되면서 입출금 인프라가 부족해 실생활에서 이용하기 어렵다는 저축은행 예금통장의 한계를 어느 정도 보완할 수 있게 됐다.

저축은행중앙회와 GS리테일은 2018년 하반기에 제휴 체크카드도 출시하기로 했다. 제휴 체크카드를 이용하는 고객이 GS25, GS수퍼마켓 등 GS리테일 유통채널에서 할인 혜택을 받을 수 있도록 한다는 계획을 세웠다.

저축은행중앙회는 다른 편의점과 제휴 확대도 추진하고 있다.

△은행권과 연계대출 협약 맺어
우리은행을 비롯한 DGB대구은행, SH수협은행 등 시중은행과 저축은행의 연계대출 협약을 추진해 성과를 냈다.

은행권의 대출심사에서 탈락한 고객을 저축은행으로 소개 받는 방식의 협업 모델이다. 저축은행은 낮은 비용으로 상대적 우량고객을 소개받고 은행은 수수료를 얻을 수 있다.

저축은행들은 2018년 2월부터 우리은행과 52개사, DGB대구은행과 44개사, SH수협은행과 39개사가 연계대출 협약을 맺고 본격적으로 관련 업무를 시작했다.

△저축은행 통합전산망 교체
이순우는 2018년 2월 저축은행의 노후화된 통합전산망을 전면 교체했다. 통합전산망 교체는 20년 만에 이루어지는 것으로 저축은행업계의 숙원사업이었다.

저축은행중앙회 관계자는 “전반적 처리 속도 등을 개선해 각 저축은행의 핀테크 기능과 비대면 거래를 강화할 기반이 마련됐다”며 “은행별로 특화된 상품을 신속하게 설계해 고객들에게도 다양한 상품을 선보일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통합전산망을 이용하는 67개 저축은행들의 영업 효율성도 높아졌다. 79개 저축은행 가운데 금융지주 계열사 등 일부 저축은행을 제외한 대부분 저축은행은 통합전산망을 사용한다.

저축은행업계 관계자는 “수십억 원대 자본금으로 설립된 독립 저축은행들이 수백억 원을 들여 새 전산 시스템을 구축하기엔 부담이 크다”며 “저축은행중앙회 차원의 개편이 이뤄져 경쟁력을 갖출 수 있게 됐다”고 말했다.

△우리은행 시절 민영화 추진

이순우는 2011년 우리은행장에 취임했다.

우리은행은 1999년 상업은행과 한일은행이 합병한 뒤 대부분 관료 출신 외부인사가 은행장을 맡았는데 이순우는 내부 출신으로 두 번째, 상업은행 출신으로 첫 은행장에 올랐다.

정통 은행원 출신으로 조직의 주요 직위를 두루 거치면서 경험을 쌓고 능력이 검증됐다는 평가를 받았다. 특히 상업은행과 한일은행 합병 이후 첫 인사부장을 맡아 원만한 인사를 하는 등 조직 안정과 통합능력을 인정받았다.

이팔성 우리금융지주 회장이 “민영화 적임자를 골랐다”고 했을 정도로 우리은행 민영화는 이순우의 가장 중요한 과제였다. 이순우 역시 “우리은행이 우리금융 민영화에 앞장서 적극적으로 중추적 역할을 담당할 것”이라고 의지를 나타냈다.

이팔성 회장이 물러난 후 2013년 6월부터 우리금융지주 회장을 겸임하며 직접 민영화 작업을 이끌었다. 그는 민영화에 책임감을 느낀다며 걸림돌이 된다면 언제든 회장에서 물러나겠다고 결의를 다졌다.

경남은행, 광주은행 등 지방은행과 우리투자증권 등 증권계열사를 차례로 매각하면서 순조롭게 민영화 수순을 밟았다. 하지만 마지막 우리은행 패키지 매각을 통한 민영화는 실패했다.

이순우는 우리금융지주와 우리은행을 통합해 매각하는 방안을 추진했다. 하지만 예비입찰에 중국 안방보험 한 곳만 참여하면서 민영화가 무산됐다.

이순우는 민영화가 무산되자 이에 책임을 지면서 우리은행장 연임을 포기했다. 그는 2014년 12월30일 이임식에서 “우리은행 민영화를 기필코 완수하고 싶었다"며 "주어진 소임에 최선을 다했지만 후배들에게 큰 짐만 남기고 홀로 떠나는 것 같아 마음이 무겁다”고 아쉬움을 나타냈다.

비전과 과제/평가

◆ 비전과 과제
[Who Is ?] 이순우 전 저축은행중앙회 회장
▲ 이순우 저축은행중앙회장(오른쪽 두번째)이 2018년 6월4일 서울 영등포구 금융감독원에서 열린 금융협회장 간담회에 참석해 서류를 검토하고 있다. 왼쪽부터 권용원 금융투자협회장, 김태영 은행연합회장, 이순우 저축은행중앙회장, 김덕수 여신금융협회장. <연합뉴스>
이순우는 저축은행의 부정적 인식을 개선하는 데 꾸준한 노력을 기울이고 있다.

이순우는 저축은행중앙회 회장으로 취임하면서부터 “저축은행 이미지 개선이 시급하다”며 “저축은행들이 패배의식을 버리고 고객이 변화를 실감하도록 적극적으로 노력해야 한다”고 말했다.

저축은행중앙회는 2018년 7월 일반 대중들이 저축은행과 관련해 긍정적이고 친근하게 느낄 수 있도록 영상광고 2편을 제작해 선보이기도 했다. 10월에는 광고와 캐릭터 공모전을 열어 친근한 이미지 구축에 나섰다.

이순우는 저축은행의 인식을 개선하기 위해 사잇돌대출 거리 캠페인에 참여하고 저축은행 모바일 플랫폼 ‘SB톡톡’ 홍보를 위해 직접 길거리에서 전단지를 나눠 주는 등 홍보 활동에 적극적으로 참여하기도 했다.

‘1사1교 금융교육’을 중점적으로 추진하면서 저축은행중앙회와 결연을 맺은 학교에 방문해 직접 강연을 하는 등 사회공헌활동에도 적극적 모습을 보였다.

이순우는 “아직도 저축은행을 놓고 과거의 선입견으로 부정적으로 인식하는 국민들이 있다”며 “서민금융기관으로서 역할을 착실히 수행하다 보면 고객의 신뢰에 한걸음 가까이 다가갈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저축은행중앙회장은 규정상 연임이 가능하지만 이순우의 연임 가능성은 높지 않은 것으로 전망된다. 업계에서는 다음 저축은행중앙회장은 관료 출신 인사가 될 가능성이 큰 것으로 바라본다.

이순우는 우리은행이 지주회사체제로 전환한 뒤 새로 출범할 우리금융지주 회장 후보로도 거론된다. 손태승 우리은행장이 회장을 겸직할 것이라는 시각이 지배적이나 회장과 행장을 분리하면 이순우를 비롯한 우리은행 출신 인사가 회장에 오를 수 있다는 관측이 나온다.

◆ 평가
[Who Is ?] 이순우 전 저축은행중앙회 회장
▲ 이순우 우리은행장이 2014년 3월25일 서울 중구 우리은행 본점에서 특성화고 학생을 대상으로 열린 채용설명회에 참석해 학생들을 만나고 있다.
일반 은행원에서 금융지주사 회장까지 승진한 입지전적 인물이다. 상업은행 출신으로 친화력이 뛰어나고 은행 업무 전반의 경험이 많다는 평가를 들었다.

상업은행 근무 당시 명동 외곽 지점장으로 발령받은 뒤 지역 유력 인사들과 자주 술자리를 가지는 등 친화력을 발휘해 최상위권 실적을 냈다.

우리은행장 시절에도 하루 수백 명의 고객을 만나는 등 영업활동을 게을리하지 않았다. 임직원들이 만나기 어려운 기업 CEO들을 직접 상대했는데 정용진 신세계 부회장을 만난 뒤 기자에게 그를 높이 평가하기도 했다.

업무를 깐깐하게 진행한다는 평가를 받는다. 2004년 개인고객본부장으로 일하던 시절 상품 및 서비스 안내장과 포스터를 직접 일일이 챙긴 뒤 합격 판정을 내려야만 영업점에 배포할 수 있도록 지시했다.

‘서번트 리더십’의 대표주자로 손꼽힌다. 서번트 리더십은 고객이나 부하 직원을 윗사람처럼 대하는 것을 뜻한다. 고객과 직원들의 처가상을 직접 챙기기도 할 정도였다고 한다.

영업 현장을 방문할 때 정장 재킷 대신 점퍼를 입고 다니며 분위기를 편하게 만든 것으로 알려졌다.

상업은행에 들어오기 전까지 여러 번 실패를 겪었다. 중학교 입시에 실패해 무산중학교에 들어갔다. 서울대학교 법과대학에 지원했다 떨어지기도 했다. 군대에 다녀온 뒤 대학교 2학년 때부터 사법고시를 준비했으나 낙방해 은행에 들어오게 됐다고 한다.

금융계 멘토는 양택기 전 상업은행 방배동지점장이다. 상업은행 은행원 시절 회사생활에 잘 적응하지 못하고 겉돌던 그에게 선배인 양 전 지점장이 술을 사며 ‘잘 웃고 가끔 어설프게 실수도 하라’고 조언했다고 한다.

우리은행 시절 여자농구단을 꾸준히 지원했다. 외환위기 때 여자농구단 해체 논의가 일어나자 직접 임원들을 설득해 농구단을 존속했다. 우리은행장이 된 뒤에도 모든 경기를 모니터링하는 등 애정을 보인 것으로 알려졌다.

고객을 만날 때 일반 명함, 고객을 위한 명함, 가톨릭식 명함, 점자 명함 등 네 종류의 명함을 사용하는 것으로 알려졌다.

제임스 딘이 한 말인 “영원히 살 것처럼 꿈꾸고 내일 죽을 것처럼 오늘을 살아라”라는 말을 종종 사용한다.

사건사고
△차명재산 의혹
이순우는 2017년에 일부 언론으로부터 차명재산으로 재산세를 절감하려 한 것이 아니냐는 의혹을 받았다.

언론 보도에 따르면 이순우는 2008년 5월에 서울 중구 신당동에 위치한 아파트를 장모에게 증여했다. 이 아파트는 장모가 사망한 뒤 처남에게 상속했다. 그러나 이순우의 법정 주소지는 계속 이 아파트로 유지됐고 이순우가 실제 거주까지 하고 있는 것으로 확인됐다.

저축은행중앙회 관계자는 "사적 영역으로 대답할 수 없다"고 말했다.

△우리은행 도쿄지점 부당대출
2014년 2월 이순우는 금융당국에 우리은행 도쿄지점에서 2010년부터 610억 원의 부당대출이 있었다고 자진 보고했다.

금융감독은 즉각 조사에 들어갔으나 2010년 당시 우리은행 도쿄지점 지점장이던 김모 전 우리프라이빗에퀴티 상무가 자살하면서 잠시 절차가 중단됐다.

이후 조사를 재개한 금융당국은 이순우는 이 사건과 직접적으로 연관이 없다는 결론을 내렸다. 그러나 이 사건으로 이순우는 리더십에 상당한 타격을 받았다.

경력/학력/가족
◆ 경력
[Who Is ?] 이순우 전 저축은행중앙회 회장
▲ 이순우 저축은행중앙회장이 2016년 1월14일 서울 은행연합회에서 열린 '경제살리기 입법 촉구 범국민 서명운동'에 참석했다.
1977년 상업은행(현 우리은행)에 은행원으로 입사했다.

1999년 상업은행과 한일은행이 합병해 생긴 한빛은행(현 우리은행)의 초대 인사부장으로 임명됐다.

2002년 우리은행 기업금융단 단장으로 승진하면서 임원이 됐다.

2004년 4월 우리은행 경영지원본부장 겸 집행부행장으로 임명됐다.

2004년 12월 우리은행 개인고객본부장으로 자리를 옮겼으나 집행부행장은 계속 겸직했다.

2008년 6월 우리은행 수석부행장으로 승진했다.

2011년 3월 우리은행장이 됐다.

2013년 6월부터 우리금융지주 회장을 맡으며 우리은행장과 겸직했다.

2015년 12월 저축은행중앙회 회장이 됐다.

◆ 학력

1966년 경상북도 경주시 무산중학교를 졸업했다.

1969년 대구고등학교를 졸업했다.

1977년 성균관대학교 법과대학을 졸업했다.

◆ 가족관계

◆ 상훈

2000년 노사협력 증진을 통한 국가산업발전 유공으로 국무총리 표창을 받았다.

2003년 금융산업발전 유공으로 재정경제부 장관 표창을 받았다.

2011년 제16회 중소기업 금융지원 은탑산업훈장을 받았다.

◆ 기타

저축은행중앙회에서 연봉과 성과급을 합쳐 최대 5억 원의 보수를 받는 것으로 알려졌다.

어록
[Who Is ?] 이순우 전 저축은행중앙회 회장
▲ 이순우 우리금융지주 회장이 2013년 11월5일 서울 강남구 리베라호텔에서 열린 '우리은행 2013-2014 여자프로농구' 타이틀 스폰서 조인식에서 인사말을 하고 있다.
“저축은행이 돈 버는 데 혈안이 돼서는 안 된다. 저축은행 간판만 보고도 눈물이 나는 고객을 만들어나가야 한다. 얼마 전에 지방에 갔다가 ‘나는 ○○은행 마크만 보면 눈물이 나온다’는 사람을 만났다. 모두가 외면할 때 자신을 믿고 5천만 원을 빌려준 덕분에 재기할 수 있었다는 것이다. 이 사람은 가는 곳마다 그 은행을 홍보한다. 저축은행들도 그렇게 자발적으로 입소문을 내주는 고객들을 만들어가야 한다.” (2018/10/11, 세계일보 인터뷰)

“저축은행 한 곳 한 곳을 방문해 직접 저축은행 적금에 가입하고 직원들에게 이제 나도 이 저축은행의 고객이라고 했다. 고객이라는 말을 하니 공감대도 생기면서 벽을 허물 수 있었다.” (2018/08/07, 한국금융신문 인터뷰에서 적금 가입 재순회 추진 계획을 밝히며)

“이번 저축은행의 자율적 금리부담 완화 방안 시행을 통해 20만 명의 서민들이 중도상환수수료 부담 없이 금리인하 혜택을 받을 수 있을 것이다.” (2018/01/23, 법정 최고금리 인하에 발맞춰 저축은행의 ‘금리부담 완화방안’을 발표하면서)

“그동안 종로에 있던 일반본부와 여의도에 있던 IT본부의 사무공간이 장기간 분리 운영되면서 신속한 업무협의 및 통합적 회원사 지원에 어려움을 겪어왔다. 이번 사무실 통합 및 이전이 중앙회의 효율적 업무수행 및 회원사 지원역량 강화를 위한 계기가 될 것으로 기대한다. 금융과 IT간의 융합 및 비대면 채널 확대 등 새로운 금융환경의 변화에 적극적으로 대응할 수 있도록 중앙회의 역량을 강화하겠다.” (2017/12/18, 저축은행중앙회 사무실을 마포로 통합, 이전하면서)

“저축은행이 서민금융, 지역금융기관으로 자리매김할 수 있도록 중금리 대출 활성화 등을 통해 서민금융 본연 역할을 할 수 있도록 하겠다. 다양한 사회공헌 프로그램으로 업계 이미지 제고에 최선을 다하겠다. 금융업권간 경계가 허물어지고 인터넷전문은행 출현 등 급변하는 금융환경에 대응해야 한다. 기존 예·대마진 위주 단순한 수익구조에서 탈피해 새로운 수익모델을 발굴해 나가야 한다.”(2017/01/04, 신년사에서)

“여신심사분석사들이 저축은행의 부실여신 방지를 위해 중요한 역할을 할 수 있도록 자격증의 내실을 기하겠다. 실무와 전문지식을 겸비한 심사요원 육성을 위해 다양한 형태의 교육서비스를 제공하겠다.” (2016/11/22, 저축은행 여신심사분석사 보수과정 연수에서)

“인패위성(실패한 것을 계기로 성공하게 됨)의 정신을 잃지 않으면 성공은 반드시 찾아온다.”(2016/03/16, ‘저축은행중앙회와 함께하는 쉽고 재미있는 금융이야기’라는 주제로 학생들에게 강연하며)

“저축은행의 이미지 개선을 위해 노력하겠다. 인터넷전문은행 등장이 2016년 상반기에 예고된 가운데 핀테크에 적극적으로 대응해 저축은행만의 먹거리를 찾기 위한 노력을 펼치겠다. 이뿐 아니라 업계와 당국과의 소통을 위해 열심히 발로 뛰어다닐 것이다. 저축은행업계가 국민들에게 따뜻한 금융기관으로 거듭날 수 있도록 최선을 다하겠다.” (2015/12/28, 저축은행중앙회 회장을 맡으며)

“제 삶의 전부와도 같았던 정든 우리은행과 사랑하는 후배들 곁을 떠난다. 저에게 참으로 과분하고 복에 겨운 나날이었다. 우리 모두의 숙원이었던 민영화를 기필코 완수하고자 했다. 주어진 소임에 최선을 다했지만 후배들에게 큰 짐만 남기고 홀로 떠나는 것 같아 마음이 무겁다.”(2014/12/30, 서울 중구 우리은행 본점에서 열린 이임식에서)

“새해에는 반드시 민영화를 달성하도록 긴장을 늦추지 않는 ‘행백리자 반어구십’의 마음을 가져야 한다.” (2014/01/01, 2014년 신년사에서 우리금융지주 민영화를 독려하며. ‘행백리자 반어구십’은 1백 리를 가는 사람은 90리를 절반으로 생각해야 한다는 뜻으로 일이 다 끝날 때까지 초심을 잃어선 안 된다는 뜻이다)

"2만여 명의 후배들에게 꿈과 희망을 주는 계기가 될 것이라 생각한다.” (2013/05/23, 우리금융지주 회장으로 내정된 뒤 소감을 말하며)

“리더가 망가지는 모습을 보이면 직원들이나 고객들이 비로소 자기 이야기를 하기 시작한다.” (2012/12/31, 아시아경제와 인터뷰에서)

“우리은행장이 된 비결은 많이 웃고, 욕도 잘하고, 약간 모자란 사람처럼 보인 것이다.” (2012/11/29, 서강대학교와 한국경제신문이 공동 개설한 ‘최고경영자 특강’ 강의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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