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에게 주어진 권한 내에서는 충분히 따라가고 있고 열심히 노력한다고 생각한다.”
이동걸 KDB산업은행 회장은 당당하고 단호했다. 임기 안에 치명적 오점을 남기지 않겠다는 학자 출신 관료의 자존심과 강박도 느껴졌다.
▲ 이동걸 KDB산업은행 회장이 22일 서울 중구 을지로 IBK기업은행 본점에서 열린 국회 정무위원회의 예금보험공사, KDB산업은행, IBK기업은행, 서민금융진흥원 등에 대한 국정감사에서 의원 질의에 답변하던 중 안경을 고쳐쓰고 있다.<연합뉴스> |
22일 서울 을지로 IBK기업은행 본사에서 열린 국회 정무위원회 국감에 참석한 4명의 피감기관장 가운데
이동걸 회장에게 질의의 90% 이상이 집중됐다.
예고된 질타였다. 19일 한국GM이 단독으로 주주총회를 열고 법인 분할 안건을 의결한 뒤 주말이 지나고 바로 국감이 열린 탓이다.
이 회장은 소신 있는 원칙주의자로 통한다. 취임 이후 잡음이 많을 수밖에 없는 구조조정 과정에서 소신과 원칙을 내세워 뚝심 있게 밀어붙였다는 평가를 받는다.
이번 국감에서도 이 회장의 이런 성격을 그대로 엿볼 수 있었다. 한국GM을 둘러싸고 수많은 이해관계가 얽혀있는 상황이지만 이 회장은 시종일관 당당하고 일관성 있는 태도를 보였다.
여러 차례 물을 마시고 안경을 고쳐 쓰며 긴장한 듯한 모습을 보이긴 했지만 기존의 생각과 주장에서 한 발짝도 물러서지 않았다.
이 회장은 한국GM의 법인 분할 사실이 알려진 뒤 모두 3차례 공식석상에 섰다. 9월 취임 1주년 기자간담회, 10월10일 산업통상자원부 국감, 그리고 이번 산업은행 국감이다.
이 회장은 한달 반 동안 상황이 크게 달라졌음에도 9월과 마찬가지로 한국GM이 철수할 가능성이 높지 않다고 잘랐다. 이날 한국GM과 관련한 이 회장의 발언 가운데 새로운 건 거의 없었다.
이 회장은 한국GM의 이른바 ‘먹튀설’을 두고 “납득할 수 없다”고 봤다. 먹튀라는 근거 없는 논쟁 때문에 실질적으로 생산적 논의가 되지 못하고 있다는 것이다.
의원들의 거센 질의에도 법인 분할 자체를 놓고는 옳고 그름을 판단하기 이르다는 입장도 고수했다.
이 회장은 그동안 법인 분할 자체의 판단보다는 절차가 잘못된 만큼 일방적 추진을 막고 함께 논의해야 한다는 뜻을 보여왔다.
이 회장은 말이 바뀐 것 아니냐는 의원의 지적에도 “말을 바꾼 적이 없다”고 단호하게 답변했다.
산업은행 책임론, 무용론을 주장하는 의원들의 질의에도 굴하지 않고 주어진 권한 내에서는 잘하고 있다고 스스로 평가했다.
이 회장은 원래 할 말은 하는 성격으로 알려져 있다. 과거 금융감독위원회 부위원장 재직시절 금감위 내부와 마찰을 일으키며 취임 1년 반 만에 사임했다. 금융연구원장 재직 시절에도 정부에 비판적 논조의 발언을 하다 임기를 1년 이상 남겨두고 물러나기도 했다.
이 회장이 지금과 같은 당당함을 이어갈 수 있을지는 한국GM의 법인 분할 사태가 어떻게 마무리되느냐에 달려있는 것으로 보인다.
특히 이 회장이 취임한 뒤 1년 동안 금호타이어, STX조선해양의 구조조정을 놓고 성공적이라는 평가를 받은 만큼 한국GM 사태는 이 회장의 성과에 오점이 될 수 있다. 이 회장은 스스로 GM과 맺은 한국GM 경영 정상화 합의안을 놓고 '윈-윈'이라고 평가하기도 했다.
산업은행 회장은 원래 쉽지 않은 자리다.
수많은 기업의 구조조정에서 생사의 열쇠를 쥐고 있어 누구나 탐내고 정부와 금융권에서 주목을 받는 자리이지만 그만큼 성과를 내지 못하면 그에 따른 비판을 한 몸에 받아야 한다.
스스로 한 일만 책임지는 자리도 아니다. 국책은행이기 때문에 전임자의 일도 처리하지 않을 수 없다.
이 회장은 이날 오렌지라이프와 KDB생명의 실적을 비교하는 김종석 자유한국당 의원의 지적을 놓고 “KDB생명은 애초 인수해서는 안될 회사였다”라고 말했다.
구조조정을 책임지는 국책은행의 수장으로서 다소 무책임하다는 지적이 나오는 이유다.
이 회장은 “대우조선해양과 대우건설 역시 마찬가지”라며 “내가 취임한 뒤에는 이런 회사를 단 한 곳도 인수하지 않았다”고 말하기도 했다. [비즈니스포스트 조은아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