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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인문계 출신이 삼성에 입사하기는 하늘에 별 따기다. 2011년 10일 전북 무주리조트에서 열린 삼성 신입사원 하계수련대회를 찾은 이재용 부회장. |
올해 상반기 대졸 신입공채의 막이 오른다.
삼성그룹과 현대차그룹, SK그룹, LG그룹 등 주요 대기업들은 이르면 다음달부터 모집공고를 내고 상반기 신입사원 채용에 들어간다.
올해 대기업 취업시장 기상도는 ‘이공계 흐림’ ‘인문계 먹구름’이다.
기업들은 올해 채용규모를 지난해 수준에서 동결하거나 줄일 것으로 알려졌다. 취업준비생들은 혹독한 취업관문을 뚫어야 한다.
특히 인문계 출신들이 대기업에 들어가기는 ‘하늘의 별따기’다. 올해는 그 하늘마저 더욱 높아졌다. 아예 인문계 출신을 뽑지 않는 곳도 많다.
이 때문에 대기업 대졸 공채에서 지나친 이공계 쏠림 현상에 대한 우려도 높아지고 있다.
◆ 정부의 고용확대 주문, 백약이 무효
최경환 경제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은 얼마 전 지방의 한 대학 캠퍼스를 찾았다. 대학가 벽보에 최경환 학생 ‘F학점’ 대자보가 나붙었기 때문이다.
최 부총리는 이 자리에서 “오죽 답답하고 힘들까 하는 생각이 들어 어깨가 무겁다”며 “단군 이래 최고 스펙을 가졌다는 청년들이 제대로 된 직장을 가지기 힘들고 대학등록금이 빚으로 남는 상황을 걱정하고 있다”고 말했다.
최 부총리는 정부의 청년고용정책이 청년층 눈높이에 미치지 못하고 있는 데 공감했다.
최 부총리는 고용시장을 개혁하겠다며 노동시장 유연성 강화, 비정규직 연한 연장 등의 발언을 쏟아내 거센 역풍을 만났다. 최 부총리는 뒤늦게 “노동시장 개혁은 금년도 역점과제로 대기업 정규직 채용을 늘리고 비정규직과 중소기업 일자리의 질을 높이는 데 목적이 있다”고 해명했다.
지난해 말 기준으로 국내 청년실업률은 9%를 넘어섰다. 정부가 고용시장의 가늠자인 대기업 채용 확대를 주문하고 있지만 공염불에 그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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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최경환 경제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이 지난달 26일 서울 마포구 신촌 한 카페에서 열린 청년층과의 공감과 소통을 위한 '대학생들과의 호프 톡'에 참석해 대학생들과 대화를 나누고 있다.<뉴시스> |
올해 주요 대기업의 신입사원 채용은 2010년 이후 최악이라는 전망이 나온다. 대기업 인사팀의 한 관계자는 “불확실한 경영환경과 경기불황으로 채용을 늘리기 어려운 상황”이라고 털어놓았다.
취업정보 전문기업인 잡코리아가 24일 국내 500대 기업을 대상으로 한 설문조사를 보면 응답회사 316기업 가운데 175기업만 대졸공채를 진행한다고 밝혔다. 77기업은 올해 신규채용 계획이 없고 64기업은 채용계획조차 세우지 못한 것으로 조사됐다.
이 설문조사에서 대졸 신입사원 채용예정 비율이 높은 곳은 유통무역업종으로 70.8%였다. 이어 석유화학(70%), 전기전자(61.3%), 금융(61%) 등의 순이었다.
대한상공회의소가 회원사를 상대로 올해 채용계획을 조사한 결과 기업당 평균 채용인원은 126.9명으로 지난해 평균 채용인원 129.9명보다 2.3% 가량 줄었다. 또 전체 신규채용 인원도 지난해 2만3385명에서 올해 2만2844명으로 감소할 것으로 예상됐다.
◆ 인문계 홀대, 암울한 인문계
올해 대졸 신입사원 채용인원도 지난해보다 10% 정도 줄어들 것으로 관측된다. 인원이 줄어드는 만큼 취업관문을 통과하기까지 경쟁도 더욱 치열해질 수밖에 없다.
인문계 출신 취업은 더욱 암울하다. 서울대 연세대 고려대 등 이른바 ‘SKY’ 출신들도 마찬가지다. 지난해 교육부가 밝힌 서울대 인문사회계열 졸업생의 취업률은 59.1%로 절반을 조금 넘었다. 이 수치는 대학원 진학자, 군 입대자 등을 제외한 것이다.
2013년 2월과 지난해 8월 서울대, 고려대, 연세대 등 3개 대학 인문사회계열 졸업생 3745명 가운데 취업자 수는 1701명으로 절반에도 미치지 못했다.
교육부에 따르면 전국 대학 인문계열 졸업생의 취업률은 1995년 62.6%에서 지난해 45.9%로 하향곡선을 그리고 있다.
반면 지난해 공학계열 졸업생의 취업률은 66.9%로 인문계열에 비해 20%포인트 이상 높았다. 기업들의 이공계 선호가 갈수록 심화하고 있다는 뜻이다.
문과 비율이 높은 여학생 취업률은 참담한 수준이다. 여대 문과 출신의 한 취업준비생은 “여성, 인문계 출신은 취업생태계의 최하위층”이라며 “최고의 스펙은 남자일 것”이라고 비꼬기도 했다.
지방대 인문계 출신의 취업성적표는 초라하다. 지방 국립대 인문사회계열의 취업률은 10~20%대에 불과하다.
충남대 철학과는 지난해 졸업생 취업률이 9.1%에 그쳤다. 충북대 국어국문학과는 18.8%, 전북대 정치외교학과는 18.2%, 전북대 고고문화인류학과는 14.3%, 강원대 국문과는 17.9%로 취업이 고사직전이다.
대학가에 ‘인구론’이라는 신조어도 등장했다. 인문계 졸업생의 90%가 논다는 것을 빗댄 말이다. 지방대 ‘전.화.기(전자, 화학, 기계공학과)’가 서울에 있는 대학의 ‘문.사.철(문학, 사학, 철학)’보다 낫다는 것도 이제 새로운 얘기가 아니다.
인문계에서 취업률이 높았던 상경계마저 최근 들어 몸값이 떨어지고 있다.
기업들은 인문계 출신 채용 기피의 원인을 대학교육으로 돌린다. 대학교육이 현장과 너무 괴리돼 있어 실제 직무에 전혀 도움이 되지 않는다는 것이다.
물론 대학들도 할 말은 있다. 기업들이 인문학의 특성을 무시하고 있다는 것이다. 신입사원을 뽑아 기업의 업무에 맞게 재교육해야 하는데 이 비용을 떠안으려 하지 않으려 한다는 것이다.
한 대학교수는 “이공계 인재가 기업 경쟁력을 높이는 데 당장은 힘을 발휘할 수 있으나 장기적 안목에서 인문계 출신과 균형을 맞춰야 질적으로 성장할 수 있다”며 “그런데도 이공계 쏠림현상, 인문계 홀대현상이 깊어지고 있어 안타깝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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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올해 상반기 삼성그룹 SSAT는 채용방식이 바뀌기 전 마지막 시험이라 사상 최대 인원이 몰릴 것으로 예상된다. |
◆ 삼성그룹, 기존 채용방식 마지막 기회
삼성그룹은 올해 8천 명의 대졸 신입사원을 뽑는다. 다음달 중순부터 지원서류를 받고 4월 12일 삼성직무적성검사(SSAT)를 실시한다.
삼성그룹은 올해 하반기에 대졸 채용방식을 개편한다. 따라서 올해 상반기가 기존 방식 ‘삼성고시’의 마지막 기회다. 하반기부터 직무에세이 등 직무적합성 평가를 통과한 사람만 시험 볼 자격을 얻는다.
채용절차도 기존 'SSAT→실무면접→임원면접'의 3단계에서 '직무적합성 평가→SSAT→실무면접→창의성면접→임원면접' 5단계로 바뀐다. 관문이 늘어나는 만큼 경쟁을 뚫기도 어려워진다.
이 때문에 상반기 SSAT에 10만 명이 넘는 사상 최대 인원이 몰릴 것으로 예상된다.
삼성그룹의 이공계 쏠림은 올해 더욱 깊어질 것으로 보인다. 삼성전자의 경우 지난해 하반기 대졸 신입사원 합격자 가운데 이공계 출신 비중이 85%나 됐다. 나머지 15%도 대개 상경계 출신으로 알려졌다.
지난해 하반기 삼성그룹 계열사 가운데 인문계 출신을 선발하지 않는 곳이 6곳이나 됐던 것으로 전해지고 있다.
◆ 현대차도 인문계는 바늘구멍 통과
현대차그룹은 10대 그룹 가운데 유일하게 채용인원을 지난해보다 연간 300~400명 정도 늘려 9500명 정도를 뽑는다.
현대차그룹은 지난해에도 출범 이후 최대 규모인 9100명을 뽑았는데 이 가운데 대졸자는 6800명이었다. 상반기 채용인원은 아직 확정되지 않았다. 공채는 계열사별로 이뤄지는데 이르면 다음달 모집공고를 낼 것으로 보인다.
현대차는 다음달 초 모집공고를 내 인적성검사(HMAT), 1·2차 면접, 신체검사 등을 거쳐 6월경 최종 합격자를 발표한다. 현대차그룹 신입사원 채용은 올해도 이공계에 집중된다.
현대차는 지난해 국내영업·해외영업·재무 등 경영지원 파트에 대해 상시 공개채용으로 방침을 바꿨다. 이는 올해도 마찬가지여서 인문계 출신은 정기공채 기회도 아예 얻지 못한다.
기아차도 3월 초 서류접수를 시작하며 채용절차는 현대차와 비슷하다.
현대기아차는 2013년 하반기 대졸 신입사원 채용부터 새로운 인적성검사를 도입했다. 언어이해, 논리판단, 자료해석, 정보추론, 도식이해 등 5개 분야를 5~6시간에 걸쳐 검사한다.
역사 관련 에세이를 쓰도록 한 것도 특징이다. 지난해 하반기 공채에서 1문항 당 700자 이내로 기술하는 방식으로 역사문제를 출제했다. 이공계 출신이라도 인문학적 소양을 갖출 것을 요구한 것이다.
지난해 "세종대왕이 과거시험에 출제했던 현명한 사람과 어리석은 사람 구별법이라는 문제를 21세기의 자신이 받는다면 어떻게 답하겠는가", "유네스코가 지정한 세계문화유산에 등재된 우리 유산 두 개를 골라 그 이유를 쓰시오", "역사 속 인물의 발명품 중 자신이 생각하는 공학도의 자질과 연관있는 발명품을 선택한 뒤 그 이유를 쓰시오" 등이 출제됐다.
◆ SK그룹, 이공계 쏠림 올해도 지속
SK그룹은 다음달 2일부터 20일까지 지원서를 받아 대졸 신입사원 공채에 나선다. 4월 말 역량평가시험을 실시한 뒤 계열사별로 면접을 진행해 6월경 합격자를 발표하는 일정이다.
올해 상반기 채용규모는 확정되지 않았다. 올해 2천 명 안팎을 뽑는데 상반기보다 하반기 채용 인원이 더 많을 것으로 알려졌다.
SK그룹의 경우 지난해 하반기 대졸 신입사원 1천 명 가운데 70% 정도를 이공계 학생으로 뽑았다.
SK그룹은 지난해 하반기 SK하이닉스를 제외하고 실적이 좋지 못했다. 상반기 인력수요도 SK하이닉스에 집중돼 이공계 출신이 유리할 수밖에 없다.
◆ LG그룹, 자기소개서 비중 높여
LG그룹은 올해 2천 명 정도를 채용한다. 다음달 4일부터 서류접수를 시작한다. LG는 지난해 하반기 공채에서 개인정보 입력란을 없애고 자기소개서 비중을 높였다.
수상경력, 어학연수, 인턴, 봉사활동 등 스펙(spec)은 물론이고 주민등록번호, 사진, 가족관계 등 개인정보 입력란이 대거 축소됐다.
이번 상반기에도 같은 방식이 적용된다. 코딩테스트, 영어면접, 인턴십 등 직무별 특화전형으로 합격자를 가린다.
그룹 통합채용 포털을 통해 최대 3개 계열사까지 중복으로 지원할 수 있다는 점이 특징이다.
LG그룹도 제조업 비중이 높다. LG그룹 전자계열 3사의 인문계 출신 비율은 20% 선에 그친다.
◆ 롯데 한진 GS, 채용규모 축소
롯데그룹의 상반기 대졸공채는 4월 중 이뤄진다. 채용규모는 지난해 1300명에서 다소 줄어들 것으로 알려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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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신동빈 롯데그룹 회장 |
롯데그룹은 여성 지원자들에게 유리하다. 대졸 신입사원의 40%를 여성으로 뽑기로 했기 때문이다. 장애인과 여군장교, 전역장교에 대해 특별채용도 예정돼 있다.
하지만 서비스업종 특성상 인문계 출신자들이 대거 몰려 경쟁률은 하늘을 찌를 것으로 보인다. 롯데백화점은 2013년 신입사원 공채에서 95%를 인문계 출신으로 뽑았다. 지난해 롯데그룹 지원자는 6만여 명까지 치솟아 사상 최고의 경쟁률을 나타냈다.
한진그룹도 채용인원이 줄어든다. 대한항공의 경우 승무원은 크게 늘리기로 했으나 공항 관련 업무 직군에서 채용규모를 많이 줄인다.
GS의 상반기 신입공채 규모는 400명이다. 역시 지난해보다 줄었으며 계열사별로 4월부터 공개채용을 진행한다. 지난해부터 모든 계열사에서 한국사 시험을 치르고 있다. 5월 인적성 검사와 6월 면접을 거쳐 최종 합격자를 발표한다.
◆ 은행권 인문계 프리미엄 축소
금융권은 전통적으로 대학생들이 선호하는 직군이자 인문계에 대한 문호도 넓다.
하지만 올해 상반기 은행 채용문턱은 더욱 높아져 있다. 게다가 채용공고에 이공계 우대를 명시하는 곳도 생겨나는 등 그나마 유지돼 온 인문계 출신 프리미엄도 없어지는 추세다.
은행들이 내년부터 정년연장제를 도입하는 데다 인력 구조조정을 하는 곳이 많다. 은행들의 채용 인원은 3년 새 40% 가량 줄었다.
국책은행인 기업은행이 대졸 신입채용을 지난해 220명에서 400명으로 늘리는 것을 제외하고 나머지 은행들은 채용인원을 축소한다. 은행들이 기존점포를 줄이는 추세여서 신입 채용 여력이 많지 않기 때문이다.
기업은행의 상반기 공채는 다음달 시작된다. 상반기 채용인원은 200명이다. 지난해 경우 기업은행 공채 경쟁률은 100대 1을 넘었다.
국민은행 하나은행 우리은행은 올해 하반기에 공채를 실시하는데 채용규모가 지난해보다 줄어들 것으로 보인다.
지난해 우리은행 공채에 2만5천 명이 몰렸다. 국민은행도 2만 명이 지원했다. 지난해 4월 농협이 실시한 6급 공채는 4만 명이 지원해 은행권 최고기록을 남겼다. [비즈니스포스트 김수정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