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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Who Is ?] 황철주 주성엔지니어링 대표이사 회장

반도체장비 국산화 선도, 기술에 타협 없어 [2018년]
조예리 기자 yrcho@businesspost.co.kr 2018-10-17 07:3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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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애
[Who Is ?] 황철주 주성엔지니어링 대표이사 회장
▲ 황철주 주성엔지니어링 대표이사 회장.

황철주는 반도체 장비전문업체인 주성엔지니어링 대표이사 회장이다.

반도체와 디스플레이장비의 국산화를 목표로 기술 경쟁력 강화에 힘을 쏟고 있다.

1959년 경상북도 고령에서 태어나 인하대 전자공학과를 졸업했다.

현대전자에 입사하면서 반도체사업에 입문한 뒤 네덜란드 반도체 장비업체인 ASM으로 직장을 옮겼다.

ASM이 한국시장에서 철수하자 주성엔지니어링을 창업해 대표를 맡았다. 한국 벤처기업 1세대로 꼽힌다.

주성엔지니어링을 코스닥에 상장한 뒤 사업영역을 반도체 제조장비에서 LCD와 올레드 등 디스플레이장비, 태양광 등으로 확장했다.

벤처기업협회장과 청년희망재단 이사장을 역임했으며 벤처기업협회 명예회장을 맡고 있다.

소탈한 성격이지만 승부사 기질도 강하다. 기술력을 향한 열정으로 회사가 보유한 특허 가운데 상당수를 직접 개발했다.

경영활동의 공과


△주요 고객사 올레드 증설에 수혜 본격화
주성엔지니어링은 2019년 완공되는 LG디스플레이의 중국 광저우 올레드(OLED)공장에 공급할 장비를 수주했다.

주성엔지니어링은 LG디스플레이 광저우 올레드공장 증설이 지연되면서 2018년 상반기에 시장 기대치를 밑도는 실적을 냈는데 2018년 8월 정식으로 장비 발주 계약을 체결했다.

권휼 DB투자증권 연구원은 “광저우 올레드공장과 파주 P10공장의 10.5세대 올레드 직행, 국내 8세대 LCD 생산 라인의 올레드 전환 가능성 등이 주성엔지니어링 실적에 긍정적 영향을 미칠 것”이라고 바라봤다.

이번 계약 체결은 주성엔지니어링이 세계 1위 디스플레이기업 LG디스플레이와 이전부터 꾸준히 LCD와 대형 올레드 등 사업분야에서 협력하며 기술력을 인정받고 신뢰를 얻은 결과다.

중화권 디스플레이기업들도 주성엔지니어링을 선호하는 협력사로 꼽고 있다.

다양한 공정에 사용되는 장비를 모두 공급할 수 있는 능력을 갖춘데다 LG디스플레이를 주요 고객사로 두며 기술력을 확실하게 검증받은 회사로 평가받고 있기 때문이다.
[Who Is ?] 황철주 주성엔지니어링 대표이사 회장
▲ 주성엔지니어링 실적.
△올레드 패널업황 호조에 힘 받아
주성엔지니어링은 2017년부터 시작된 올레드 패널의 수요 급증에 힘입어 장비 수주를 늘리고 있다.

애플은 2017년 신제품 ‘아이폰8’에 최초로 올레드 패널을 탑재한 데 이어 ‘아이폰XS’와 ‘아이폰XS 맥스’에도 올레드를 장작했는데 이에 따라 세계 대부분의 제조사들이 올레드 패널 채택을 추진하고 있다.

한국과 중화권 디스플레이기업들은 스마트폰시장에서 중소형 올레드 패널의 수요 급증에 대응해 2017년부터 일제히 공장 증설에 수조 원대의 대규모 투자를 계획하며 디스플레이 장비시장은 유례없는 호황을 앞두고 있다.

중소형 올레드가 향후 수년 동안 공급 부족을 겪을 것으로 전망되자 디스플레이 기업들이 투자 규모를 더 확대하며 적극 대응하고 있는 것이다.

특히 주성엔지니어링의 주요 고객사인 LG디스플레이도 2017년부터 올레드 패널 증설에 20조 원 이상을 투자하겠다는 계획을 내놓으며 올레드 관련한 장비가 주성엔지니어링의 가파른 성장을 이끌 것이라는 전망이 고개를 들고 있다.

△반도체와 디스플레이장비 국산화 성과
주성엔지니어링은 대부분의 국내 부품업체들이 해외기업에 의존하던 반도체와 디스플레이 핵심 장비를 국산화하는 데 크게 기여한 기업으로 평가받고 있다.

주성엔지니어링은 1995년 창립 이후 반도체 원자층 증착장비(ALD), 플라즈마 화학 증착장비(PE CVD) 등을 국산화하는 데 성공했다.

황철주는 장비업체에서 근무하던 경험과 지식을 바탕으로 주성엔지니어링을 창업했는데 당시 법인 설립 전부터 삼성전자에서 장비 선주문을 받을 정도로 시장에서 빠르게 자리를 잡은 것으로 알려졌다. 그만큼 국산 반도체장비 수요가 높다는 것을 일찍 파악하고 시장에 뛰어든 것이다.

당시 벤처기업으로 출발한 주성엔지니어링이 반도체장비와 같이 높은 기술력이 요구되는 분야에 진출한 것을 놓고 비판적 시각도 많았지만 황철주는 해외기업의 증착장비를 면밀히 분석하며 주요 핵심 기술을 확보하는 데 성과를 냈다.

당시 정부가 반도체장비의 국산화를 적극 지원하고 있어 국책과제를 받는 등 도움에 힘입어 성장을 앞당기는 데 기여한 것으로 알려졌다.

주성엔지니어링은 이후 현대전자와 LG반도체 등으로 고객사를 늘려가며 연구개발 투자를 지속해 기술 확보에 꾸준히 힘썼다. 한동안 적자를 보는 가운데도 연구개발 투자를 늘려야 한다는 황철주의 고집이 주성엔지니어링의 중장기적 기술 경쟁력 확보에 기여했다는 평가가 나온다.

주성엔지니어링은 창업한지 약 4년만에 국내업계 최초로 반도체 공정에 사용되는 장치를 개발하는 데 성공하며 해외 수출을 본격화했다. 창업 5년 만인 1999년 코스닥시장에 상장했다. 당시 공모가가 34만 원으로 역대 최고가였다.

비전과 과제/평가

◆ 비전과 과제
[Who Is ?] 황철주 주성엔지니어링 대표이사 회장
▲ 황철주 청년희망재단 이사장이 2015년 11월5일 서울 광화문우체국 내 재단 사무실에서 열린 현판식에서 인사말을 하고 있다. <연합뉴스>
황철주는 올레드 패널 증착장비에서 세계적 기술력 확보를 과제로 안고 있다.

주성엔지니어링의 주력 사업분야는 디스플레이 원판에 유기물질을 입히는 데 사용되는 증착장비 공급인데 이 시장에서 뚜렷한 주도자가 없는 상황이다. 증착이란 올레드 패널에 들어가는 유기물들을 기판 위 적정 위치에 자리 잡게 하는 기술이다.

주성엔지니어링은 주로 중국 스마트폰기업에 올레드 패널을 공급하는 중국 디스플레이기업을 타겟으로 증착장비를 공급하고 있다. 중국 스마트폰기업들은 증착장비 선별에 까다롭지 않아 주성엔지니어링의 장비를 꾸준히 받고 있다.

그러나 결국 주성엔지니어링이 시장에서 선두업체로 경쟁력을 인정받으려면 세계적 수준의 기술력을 확보해야 한다. 따라서 LG디스플레이 뿐 아니라 글로벌 디스플레이 기업에 인정받을 수 있는 기술력을 확보하는 것이 향후 지속성장을 추진하기 위한 최대 과제인 셈이다.

◆ 평가

돼지껍데기와 삼겹살을 즐기는 소탈한 성격이지만 승부사 기질이 강한 것으로 알려져 있다. 특히 기술력을 놓고는 양보를 몰라 직접 기술 개발에 나서는 것은 물론 직원들의 역량 역시 강조한다.

주성엔지니어링의 대표 표어는 ‘World’s Best People, World’s Best Products, World’s Best Company’다. 회사 곳곳에는 ‘교육없이 혁신없고 혁신없이 1등없다’ ‘남만큼 해서는 남 이상 될 수 없다’ 등의 문구가 적혀있다고 한다.

황철주는 회사가 보유한 특허 가운데 상당수를 직접 개발한 것으로 알려졌다.

능력을 중시해 인재영입에도 적극적이다. 하이닉스, 모토로라, 삼성전자 등 출신을 가리지 않고 부사장으로 영입했다. JP모건의 반도체 전문연구원, 미국 펜타곤 테크놀로지 아시아지역 책임자, 미국 플라즈마 소시즈 대표이사, IMS리서치 한국지사장, LED테크노 대표 등도 부사장으로 영입해 경쟁력을 높였다.

모교인 인하대학교에 애정이 강한 것으로 알려졌다. 2000년 조현정 비트컴퓨터 대표 등 인하대학교 출신 벤처기업인들과 함께 인하대학교에 50억 원을 기부해 학교에 벤처플라자와 창업관 등을 지었다.

2004년 인하대학교는 황철주 등 벤처기업인 5명에게 명예공학박사 학위를 수여했다. 인하대학교가 개교 이래 외국인이 아닌 모교출신에게 명예박사학위를 수여한 것은 이때가 처음인 것으로 알려졌다. 이후 2016년 ‘자랑스런 인하인’ 수상자에도 선정됐다.

황철주는 ASM에 근무하던 사회 초년생 시절부터 누가 가르쳐주지 않아도 직접 반도체 증착장비의 구조와 공정, 기술 등을 배우고 익히는 데 힘썼다고 전해진다. 철저한 기록 습관과 부지런한 태도로 지식과 경험을 빠르게 쌓았는데 이런 자산이 향후 주성엔지니어링의 창업자금 마련과 성장에 기여했다는 풀이가 나온다.

ASM의 주요 고객사였던 삼성전자에서 황철주를 최고 장비 엔지니어로 인정했고 이런 명성과 평가가 주성엔지니어링이 창업 초기부터 삼성전자를 고객사로 확보하는 데 주효했다고 알려졌다.

2001년 경기도 광주에 있는 주성엔지니어링 본사 건물벽면에 가로 13m, 세로 9m의 대형 태극기를 걸었다.

당시 황철주는 “해외출장을 다니다가 태극기가 걸려있는 공장을 보면 나도 모르게 가슴이 뭉클해지는 감동을 받곤 했는데 그 뭉클함을 우리 직원들의 가슴에도 심어주고 싶어 최대한 큰 태극기를 내걸었다“고 말했다. 대형 태극기는 현재 주성엔지니어링을 대표하는 상징이 됐다.

2005년 사재 50억 원을 출연해 ‘일운과학기술재단’을 설립했다. ‘한 사람을 맡아 정성을 다해 키운다’는 의미의 일운(一云)장학재단은 매년 10여 명의 대학생들에게 장학금을 수여한다.

자녀에게 권하고 싶은 책으로 존 고든의 ‘상어와 물고기’를 꼽았다.

‘100-1=0’과 ‘1+1=5’를 강조한다. 100-1=0은 99개를 잘해도 단 하나의 작은 실수로 모든 것이 물거품이 될 수 있다는 뜻이고 1+1=5는 글로벌 경쟁에서 이기려면 두 사람이 다섯 사람의 몫을 할 수 있어야 한다는 뜻이다.

취미는 독서고 좋아하는 운동은 골프와 등산이다.

주량은 소주1병이라고 한다.
[Who Is ?] 황철주 주성엔지니어링 대표이사 회장
▲ 황철주 주성엔지니어링 대표이사가 1999년 12월 주성엔지니어링 코스닥시장 상장 기념식에 참석하고 있다.
사건사고
△박근혜 정부에서 중소기업청장 사퇴
황철주는 벤처1세대인 만큼 주식과 관련하여 지분 매각, 자사주 매입, 배당 규모, 그에 따른 재산 변동 등으로 언론에 자주 이름이 오르내렸다. 2000년대 초반 주성엔지니어링은 ‘코스닥 황제주’로 불렸는데 황철주는 2001년 100대 주식부호에 이름을 올렸다.

하지만 이런 주식 보유와 관련한 문제가 발목을 잡은 적도 있다.

황철주는 박근혜 정부에서 2013년 3월 중소기업청장에 선임됐으나 주식 백지신탁 문제로 선임 3일 만에 사임했다. 주식 백지신탁제도는 1급 이상 고위공직자가 3천만 원을 초과하는 지분을 보유할 때 직무와 관련성이 있으면 60일 이내에 주식을 매각해야 하는 공직자윤리법 조항이다.

황철주는 당시 주식 백지신탁제도를 잘못 이해해 중소기업청장 임기가 끝나면 지분을 돌려받을 수 있는 것으로 알고 수락했지만 곧 상황을 파악하자마자 물러났다. 당시 24% 정도를 보유하고 있던 주성엔지니어링 지분을 매각하면 경영권에 위협을 받을 수 있기 때문이다.

당시 이 사건은 박근혜 정권의 인사 시스템 문제와 관련해 언론에 오르내렸다. 문재인 정부에서도 벤처기업가 출신을 초대 중소벤처기업부 장관으로 발탁하기 원했지만 백지신탁을 이유로 후보자들이 대부분 거절한 것으로 알려졌다.

김한표 자유한국당(당시 새누리당) 의원 등은 이 문제를 놓고 기업인이 공직에 재임하는 동안 보유주식을 금융기관에 보관하다 반환받을 수 있도록 하는 공직자윤리법 개정안, 이른바 ‘황철주법’을 발의했지만 통과되지 않았다.

△각자대표체제 구축 실패
2003년 미국의 반도체업체인 마이크론의 도운 전 부사장을 영입해 주성엔지니어링에 공동대표체제를 도입했다. 하지만 도운 대표는 주성엔지니어링 대표에 오른 지 5개월 만에 사의를 표명했다.

당시 주성엔지니어링은 도운 대표의 사임배경을 ‘문화적 차이’라고 설명했다. 황철주는 이 사건 이후 다시는 공동대표체제를 구축하지 않았다.

경력/학력/가족
◆ 경력
[Who Is ?] 황철주 주성엔지니어링 대표이사 회장
▲ 황철주 주성엔지니어링 대표이사가 2017년 1월 시무식에서 임직원들을 격려하고 있다.
1985년 현대전자 장비엔지니어로 입사했다. 8개월만에 사표를 내고 1986년부터 1993년까지 네덜란드 반도체장비 제조업체 ASM의 한국자회사에서 근무했다.

1993년 주성엔지니어링을 설립한 뒤 1995년 주성엔지니어링 대표이사 사장이 됐다.

1998년 과학기술부 기술개발기획평가단 위촉위원을 맡았다.

1999년부터 2009년까지 한국진공학회 부회장, 한국벤처기업협회 부회장, 한국디스플레이 산업협회부회장, 한국디스플레이 장비재료산업협회 부회장, 한국물리학회재정위원회 부위원장, 태양광산업협회 부회장 등을 역임했다.

2005년 사재 50억 원을 출연해 장학재단인 '일운과학기술재단'을 설립했다.

2010년 제7대 벤처기업협회장에 올라 2013년까지 활동한 뒤 2013년 벤처기업협회 명예회장에 올랐다.

2011년부터 2015년까지 한국청년기업가정신재단 이사장으로 활동했다.

2011년 국가지식재산위원회 민간위원을 맡았고 2013년 한국특허정보원 비상임이사에 올랐다.

2013년 국가과학기술심의회 위원을 맡아 지금까지 활동하고 있다.

2013년 중소기업청장에 선임됐으나 주식 백지신탁 문제로 3일 만에 사임했다.

2014년부터 2017년까지 한국과학기술기획평가원 비상임이사를 지냈다.

2015년 10월부터 2016년 5월까지 청년희망재단 초대 이사장을 지냈다.

2015년 한국무역협회 비상근부회장을 맡았다.

2018년 제어·로봇·시스템학회(ICROS) 회장에 올랐다.

◆ 학력

1977년 동양공업고등학교를 졸업했다.

1985년 인하대학교 전자공학과를 졸업했다.

2004년 인하대학교에서 공학 명예박사 학위를 받았다.

◆ 가족관계

부인 김재란씨와 사이에 1남을 두고 있다.

◆ 상훈

1998년 벤처기업대상 과학기술부 장관상을 받았다.

1998년 벤처기업상 철탑산업훈장과 무역의 날 산업자원부장관표창을 받았다.

2005년 은탑산업훈장을 받았다. 과학기술부와 한국과학문화재단이 선정한 ‘닮고 싶고 되고 싶은 과학기술인'에 선정됐다.

2006년 반도체 기술대상 세계으뜸기술상(대통령상)을 받았다.

2011년 대한민국 기술대상 금탑산업훈장을 수상했다.

2016년 인하대학교에서 ‘자랑스런 인하인상’을 받았다.

2017년 대한민국코스닥대상 시상식에서 대상격인 산업통상자원부 장관상을 받았다. 기업 투명성지수와 경영실적, 기술력과 일자리 창출 등 각 부문에서 모두 높은 점수를 얻었다.

2018년 포스코청암상 기술상을 수상했다.

◆ 기타

육군 병장을 만기 제대했다.

주성엔지니어링 주식 1164만9991주(지분 24.15%)를 보유하고 있다.

2017년 주성엔지니어링에서 급여 10억1500만 원, 상여 2억9170만 원 등 12억9300여만 원의 보수를 받았다.

2018년 상반기에는 급여로만 5억 원의 보수를 받았다.

어록
[Who Is ?] 황철주 주성엔지니어링 대표이사 회장
▲ 황철주 주성엔지니어링 대표이사가 2014년 CBS '세상을 바꾸는 시간 15분'에서 '남들이 하지 못했던 1%'를 주제로 강연하고 있다.
“한국인 손으로 직접 1등 반도체 장비기업을 만들겠다는 생각으로 창업했다. 기술 도둑질이나 모방 없이 세계 1등으로 올라설 수 있도록 애쓴 선수(직원)들이 자랑스럽다.” (2017/06/22, 대한민국 코스닥 대상을 받으며)

“전 세계에서 면적과 인구가 모두 작은 우리나라가 살 길은 혁신기술뿐이다. 기업가정신을 갖춘 중소벤처기업들이 활발히 혁신기술을 만들어내고 유통하며 보호받을 수 있는 시스템이 갖춰져야 선진국으로 도약할 수 있다.” (2017/06/19, 이데일리와 인터뷰에서)

“일반적인 지식과 과학기술만으로는 지속성장하기 어려운 환경이지만 SK하이닉스와 협력사는 단순한 사업파트너를 넘어 문화와 비전을 공유하며 지속성장할 것이다.” (2017/05/30, SK하이닉스 동반성장협의회 정기총회에서)

“올해 무기는 차세대 개념의 혁신장비로 미래 반도체산업의 변화에 폭넓게 적용할 수 있는 제품이다. 진화하는 반도체에 폭넓게 적용해 지속적인 매출확대가 가능하다.” (2017/03/24, 정기주주총회에서)

“청년 일자리 문제를 풀어달라는 요구는 큰데 당장 성과를 내놓기는 어려웠다. 압박감이 엄청났다.” (2016/05/19, 청년희망재단 이사장에서 사퇴하며)

“청년 일자리 문제는 청년들이 열심히 한다고 해결되지 않는다. 기득권을 쥔 기성세대가 산업을 성장시켜야 한다. 그러려면 사회 전반의 인프라 개선이 있어야 한다. 청년들에게 돈 줘가며 열심히 일자리를 구해보라고 독려하는 것만으로는 부족하다.” (2016/02/28, 청년희망재단 이사장 당시 매일경제와 인터뷰에서)

“중소기업청장직을 수행하려면 인생을 걸고 창업해서 지금까지 일궈온 회사의 경영권을 포기할 수밖에 없는 상황이었다. 중소기업의 지속적인 성장에 대한 모범을 보여줘야 하는 중소기업청장이 자신의 회사를 붕괴시키고 고객과 주주들에게 책임을 다하지 못하는 모습을 보이면 안 된다고 생각했다.” (2013/03/18, 중소기업청장 사임에 대한 기자회견장에서)

“고생 않고 얻는 성공은 없다. 오늘 배고플 것인지, 내일 배고플 것인지를 먼저 생각하라.” (2012/03/26, 청년창업 끝장토론에서)

“작고하신 나의 어머니는 초등학교도 다니지 못해 한글을 깨치지 못한 분이셨다. 환갑이 넘은 나이에 나를 군대에 보내신 어머니는 아들의 안부가 걱정되어 비록 맞춤법에 맞지도 않고 훌륭한 문장은 아니었지만 손수 편지를 써 보내주셨고, 이런 어머니의 한없는 사랑 덕분에 지금의 내가 존재할 수 있었다.” (2011/11/18, 매일경제에 기고한 글에서)

“선진국에서는 30년 경험이 있는 상사가 신입사원에게 30년의 지식과 노하우를 주면서 자신만큼 일할 수 있도록 한다. 하지만 우리나라는 선배에게 물어봤을 때 ‘너도 직접 깨지면서 100번 실수하면서 크라’고 한다.” (2011/05/25, 문화일보와 인터뷰에서)

“상생이라는 단어는 좋은 말인데 중소벤처기업에게는 썩 좋은 말이 아니다. 중소기업의 목표는 성장이다. 그러니 공동성장이어야 한다. 이제는 상생모드에서 공동성장의 모드로 바뀌어야 한다.” (2010/05/27, 뉴스토마토와 인터뷰에서)

“대기업 중심 국가는 개발도상국이고 벤처기업이 명품을 만드는 국가가 진정한 선진국이다.” (2010/05/07, 벤처기업협회장 취임 후 첫 기자간담회에서)

“지금 와서 보니 기술은 일부다. 기업이 성공하는 데 최고의 기술력은 기본이고 그보다 더 중요한 것은 기업의 신뢰성이나 기업의 문화, 인프라다.” (2008/05/26, 전자신문과 인터뷰에서)

“저는 참 운이 좋은 사람이다. 부족한 제가 우리사회의 경쟁력 덕분에 이렇게 회사를 키우고 또 작지만 장학재단까지 만들게 됐다.” (2005/04/26, 서울신문과 인터뷰에서)

"벤처회사는 CEO가 연구개발을 할 줄 알아야 하고, 또 해야 한다." (2005/01/31, 디지털타임스와 인터뷰에서)

"태어난 이후 가장 고통스러웠다. 머릿속에는 오직 어떻게 하면 어려움을 극복할 수 있을까 하는 생각 뿐이었다. 가장 두려웠던 것은 직원들이 떠나는 것이었다." (2005/01/31, 디지털타임스와 인터뷰에서 3년 간 1000억 원대의 누적 적자를 겪었을 때 심정을 묻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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