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 회장이 5일 오후 경기도 의왕시 서울구치소를 나오면서 "국민 여러분께 심려를 끼쳐 죄송하게 생각한다"며 "앞으로 더 열심히 노력하겠다"는 말을 취재진에게 남기고 자리를 떠났다.
신 회장이 서울구치소를 나온 것은 올해 2월 법정구속된 뒤 8개월 만이다.
신 회장은 이날 오후 서울고등법원 형사8부로부터 특정경제범죄 가중처벌 등에 관한 법률상 횡령, 뇌물공여 등의 혐의를 놓고 징역 2년6월에 집행유예 4년을 받았다.
신 회장은 신격호 롯데그룹 명예회장과 신동주 전 롯데홀딩스 부회장과 함께 법정에 앉아 재판이 진행되는 내내 무거운 표정을 지은 채 정면과 판사의 얼굴만 응시했다.
강승준 부장판사가 “박근혜 전 대통령이 먼저 K스포츠에 자금 지원을 요구해 (신 회장이) 수동적으로 응했고 이를 들어주지 않으면 기업 활동 전반에 불이익을 받을까 두려움을 느낄 정도였다”며 "의사결정의 자유가 다소 제한된 상황에서 뇌물공여 책임을 엄히 묻기는 어렵다"고한 뒤 판결을 마치자 신 회장은 옆사람과 인사를 나누며 살짝 미소를 지었다.
신 회장이 마침내 풀려나면서 롯데그룹의 경영 정상궤도 진입을 위한 발걸음을 다시 내딛을 수 있게 됐다. 신 회장이 수감된 지 234일 만이다.
신 회장이 자리를 비운 동안 롯데그룹은 수조 원 규모의 투자계획이 멈춰섰고 앞으로 1년 안에 마쳐야 할 지배구조 개편 작업도 정지됐다.
이 때문에 롯데쇼핑과 롯데물산, 롯데월드 등 롯데노동조합협의회와 한국노동조합총연맹 산하 전국관광·서비스노동조합연맹 집행부 등 19명은 9월10일 재판부에 신 회장을 석방해 달라는 취지의 탄원서를 내기도 했다.
신 회장이 당장 해결해야 할 시급한 과제로 롯데지주체제에 롯데케미칼과 호텔롯데를 편입하는 것과 롯데카드와 롯데캐피탈 등 금융 계열사를 정리하는 것이 꼽힌다.
롯데케미칼은 EBITDA(법인세·이자·감가상각비 차감 전 영업이익) 기준으로 롯데그룹 실적 기여도가 지난해 50%를 넘어설 정도로 현금 창출원 역할을 톡톡히 맡고 있다.
▲ 롯데월드타워 모습.
롯데케미칼은 현재 일본 롯데그룹의 영향권에 있는 롯데물산을 최대주주로 두고 있는데 한국의 롯데지주체제에 롯데케미칼을 들여옴으로써 한국 롯데그룹의 현금 창출력을 높여야 한다.
호텔롯데를 유가증권시장에 상장해 한국 롯데로 편입해야 하는 점도 과제다.
호텔롯데는 롯데그룹 지배구조의 최상단에 있지만 지분의 97.2%가량을 일본 롯데가 보유하고 있다. 호텔롯데를 유가증권시장에 상장해 일본 롯데의 영향력을 줄인 뒤 롯데지주와 합병 등을 진행할 가능성이 높은데 이를 위해서는 일본 롯데 주주들과 신뢰를 쌓아온 신 회장의 역할이 강조될 수밖에 없다.
윤태호 한국투자증권 연구원이 “호텔롯데의 상장은 신 회장의 재판 결과가 변수”라고 말했다.
4조 원 규모의 인도네시아 석유화학단지 건설 프로젝트도 다시 가동될 것으로 보인다.
황각규 롯데지주 대표이사 부회장은 9월10일 열린 ‘한-인도네시아 산업협력 포럼’에서 기자들과 만나 “신 회장이 석방된 뒤 직접 인도네시아를 방문해 부지를 확인해야 석유화학단지 건설을 재개할 수 있다”고 말하기도 했다.
롯데그룹이 현재 추진하고 있는 대규모 투자계획은 인도네시아 석유화학단지 건설 프로젝트를 외에 11조 원 규모의 기업 인수합병 등이 있다.
롯데그룹이 기존에 발표했던 투자 및 채용계획을 대대적으로 확대해 개편할 수도 있다.
롯데그룹은 2016년 10월 경영비리 관련 검찰 수사가 끝난 뒤 향후 5년 동안 7만 명 규모의 신규 채용을 진행하고 40조 원을 투자하겠다고 밝혔다. 최근 삼성그룹과 LG그룹, 현대자동차그룹 등이 대규모 투자계획을 잇달아 발표하는 만큼 신 회장이 이런 계획에 더 힘을 실을 수 있다.
롯데그룹은 신 회장의 재판이 끝나자 “재판부의 현명한 판단을 존중한다”며 “롯데그룹이 그동안 원활하게 진행되지 못했던 일들을 챙기는 한편 국가경제에 이바지하고 사회적 책임을 다하는 기업이 될 수 있도록 더욱 노력할 것”고 밝혔다. [비즈니스포스트 이지혜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