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더불어민주당 대표 경선
더불어민주당 대표 경선에 출마해 이해찬 김진표 의원과 경합했으나 2위로 탈락했다.
송영길은 2018년 7월24일 문재인정부의 북방경제협력위원회 위원장을 사임하고 민주당 대표 경선에 출마할 것을 선언했다.
유력 후보로 점쳐진 이해찬 의원과 김진표 의원이 각각 11살, 16살 많다는 점을 들며 세대교체론을 주장했다.
2016년 패배했던 과거를 딛고 예비경선을 통과한 뒤 “당을 통합하고 사심 없이 문재인 대통령을 뒷받침하겠다”며 “역동적 민주당, 새로운 민주당, 젊은 민주당을 향한 당원 동지들의 열망을 받들고 싶다”고 말했다.
8월25일 전당대회에서 치러진 본경 선에서 탈락했지만 2위를 차지했다. 당선자인 이해찬 후보의 득표율은 42.88%였고 송영길 은 30.73%, 김진표 후보는 26.39%였다.
송영길은 참여정부에서 재정경제부와 교육인적자원부의 장관 겸 부총리를 지냈던 김 후보를 3위로 밀어내는 선전을 펼쳤다는 평가를 받았다.
그는 “당선된 이해찬 대표와 함께 새로운 민주당을 만들기 위해 열심히 뛰겠다”며 “민주당은 국민의 요구대로 변화할 것”이라고 밝혔다.
이 대표는 “송영길 의원은 북방경제에 관심과 조예가 깊고 김진표 의원은 경제정책에 식견이 탁월한 분"이라며 "특별위원회를 구성해 그분들이 역량을 발휘하도록 할 것”이라고 화답했다.
| ▲ 7월19일 코엑스에서 열린 북방물류 활성화 정책 토론회에서 송영길 더불어민주당 의원(가운데)이 구형준 현대글로비스 본부장(왼쪽), 김영주 한국무역협회 회장과 기념촬영을 하고 있다. <연합뉴스> |
△북방경제협력위원장
송영길은 2017년 5월 문재인 정부의 러시아 특사로 임명돼 러시아를 방문했고 2017년 8월에는 북방경제협력위원회 위원장이 됐다.
북방경제협력위원회는 한국 중국 관계와 한국 러시아 관계에 기반한 북방경제를 전담하는 위원회로 문재인 정부의 외교정책 가운데 하나인 신북방정책의 일환인 셈이다.
러시아와 인연을 오래 다졌고 북방 문제에 이해가 깊다는 점을 인정받았다.
송영길과 러시아의 인연은 인천시장을 지낼 때 시작됐다.
당시 그는 러일전쟁때 인천 제물포 앞바다에서 침몰한 러시아 함선 바랴그호의 깃발을 러시아 측에 반환하고 기념시설을 건립했다.
이에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은 송영길에게 직접 오르지나 드루쥐비 훈장을 수여했는데 이 훈장은 러시아에서 외국인이 받을 수 있는 가장 높은 등급이다.
북방경제협력위원장에 오르기 전인 2017년 7월27일 더불어민주당 박정, 정재호 의원과 자체적으로 '북방경제원정단'을 꾸려 러시아를 방문했다. 아시아 경제협력, 가스관과 대륙철도 연결, 북극 항로 개척 등 현안을 두고 현지 관계자들과 논의했다.
송영길은 “북한 나진과 러시아 하산 사이 물류 프로젝트를 박근혜 정부 때 중단시켰다”며 “이를 재개할 가능성을 두고 여러 가지로 모색할 것”이라고 말했다.
7월에는 북방경제협력위원회 인사들과 함께 북한 라선특별시를 이틀에 걸쳐 방문해 나진-하산 물류 프로젝트의 필요성을 강조했다.
송영길은 “지난 70년 동안 대륙과 단절됐던 남-북-러 철도연결을 위해 나진 하산 물류 프로젝트를 추진하는 것이 필요하다”며 “이를 통해 한국은 육로와 해양을 통해 유라시아로 진출해 동북아 물류거점 국가로 발돋움할 수 있다”고 말했다.
그는 “경제적 혈관인 대륙철도 연결을 통해 북방물류 육성의 토대를 마련해 일자리 창출과 혁신성장 성과들을 이끌어 낼 수 있을 것”이라고 덧붙였다.
7월24일 더불어민주당 대표 경선에 나서기 위해 북방경제협력위원장을 사임했다.
△문재인 선대본부장
송영길은 2017년 2월8일 문재인 더불어민주당 대통령 후보의 선거캠프에 합류해 총괄선대본부장을 맡았다.
그는 “지난 대선 실패 뒤로 국민과 함께 아픔을 같이 해온 문 후보는 더 성숙하고 준비된 의지와 책임감을 지니고 다시 국민 앞에 섰다”며 “문 후보를 도와 대한민국의 요구에 응답하기 위해 최선을 다하기로 결심했다”고 말했다.
송영길은 이 기간 박근혜 대통령의 탄핵 인용 주장에도 힘을 기울였다.
그는 “검찰과 특검의 수사를 바탕으로 한 탄핵소추 사유가 차고도 넘친다”며 “하루 빨리 탄핵이 인용돼 새로운 대한민국으로 나아가야 한다”고 말했다.
송영길은 문재인 후보 선거운동과 박근혜 대통령 탄핵 등 두 막중한 현안에서 모두 성과를 내 중진급 의원들과 젊은 의원들 가운데에서 두각을 드러내게 됐다.
△인천 계양을에서 재기 성공
송영길은 제20대 총선을 앞둔 2016년 3월 3선 지역구였던 인천 계양을 출마를 선언했다.
그는 “계양은 저를 정치적으로 낳고 키워준 어머니 같은 존재”라며 “계양 발전의 새로운 동력을 만들어 계양을 일으켜 세우겠다”고 말했다.
인천 계양을에는 더불어민주당을 탈당하고 국민의당에 입당한 최원식 의원이 있었다. 송영길은 최 의원 탈당 당시 “탈당하지 말라. 탈당하면 내가 출마할 수밖에 없다”며 만류했으나 최 의원이 탈당을 결심하자 인천 계양을에 출마하기로 마음을 굳혔다.
송영길은 서운산업단지를 100만 평 규모의 계양테크노밸리로 확대한다는 내용을 골자로 한 일자리 2만여 개 확충, 계양 자율형 사립고교 유치, 서울대학교와 경인교육대학교 통합 등을 공약으로 내놓았다.
2016년 4월13일 치러진 제20대 총선에 인천 계양을 지역구에서 43.3% 득표율을 올려 윤형선 새누리당 후보와 최원식 국민의당 후보를 제치고 당선됐다.
2010년 인천시장 출마를 위해 의원직을 내려놓은 뒤 6년 만에 4선으로 국회로 복귀한 것이다.
△인천시장 재선 실패
송영길은 새정치민주연합 후보로 인천시장 재선에 도전했으나 2014년 제6회 인천광역시장 지방선거에서 48.2% 득표율을 내며 50.0%를 낸 유정복 한나라당 후보에 패해 낙선했다.
그는 기자간담회에서 “정치에 입문하고 15년 동안 하루도 쉬지 않고 뛰어 왔는데 좀 쉬면서 힘을 찾으라고 안식년을 준 것이 아닌가 생각한다”며 “심신을 정비하고 저를 돌이켜 보는 시간으로 삼겠다”고 말했다.
인천시장 퇴임 뒤 중국 칭화대학교로 1년 동안 유학을 떠났다.
송영길은 “퇴임하면 중국에서 중국과 대만 간 양안관계와 관련한 공부를 하려고 한다”며 “남북관계 개선의 지혜를 찾는 데 많은 도움이 될 것으로 기대한다”고 밝혔다.
중국에서 돌아온 뒤 2015년 10월 여의도에 ‘먹고사는문제 연구소’를 열어 중국 유학중 구상했던 민생정책을 구체화하고 정치현안에 목소리를 내기 시작했다.
그는 연구소를 열며 “젊은 세대들이 스스로를 N포 세대, 흙수저라며 자조적 표현으로 부르고 있고 헬조선이라는 말이 공공연하게 쓰이고 있는 상황”이라며 “연구소를 통해 국민 생활과 밀접한 주거·복지·일자리 정책을 비롯해 국민의 먹고 사는 문제를 해결할 수 있도록 다양한 정책 대안을 제시하고 실천해 나가겠다”고 말했다.
| ▲ 2013년 12월26일 송영길 당시 인천시장이 인터뷰하고 있다. <연합뉴스> |
△인천시 빚과 싸움
송영길은 인천시장을 지내며 취임 당시 11조7300억여 원에 이르고 계속해서 증가세를 보이던 인천시 부채를 감소세로 돌려놓았다.
2010년 지방선거 당시 인천시 부채는 7조5천억 원 규모로 알려졌으나 회계 방식이 영업부채를 포함시키는 것으로 바뀌며 9조4550억 원으로 늘었다.
여기에 감사원이 전임 시정부가 숨겨놓은 빚, 분식결산, 부채 돌려막기, 편법 출자 등을 밝혀내 총 부채가 11조7300억여 원에 이르렀다.
송영길은 2011년 5월4일 2014년 인천아시안게임 대회 준비 주요 사항의 추진 계획 보고회에서 “이미 유치돼 수많은 예산이 투입된 상태에서 개최를 반납하는 것은 불가능하다”며 개최를 유지하되 규모를 줄일 것을 천명했다.
전체 사업비를 2조5805억 원에서 1조9447억 원으로 6358억 원을 줄이는 데 성공했다.
송영길은 2011년 송도에 삼성바이오로직스를 유치했다.
당시 김태한 삼성전자 신사업추진단장은 송영길에게 “송도로 갈 가능성은 1% 정도니 큰 기대는 하지 말라”고 했으나 송영길은 준비한 청사진과 기반시설 등을 들고 삼성을 설득하는 데 성공했다.
송영길은 “송도에는 이미 CJ그룹 바이오연구소, 미국 유타대학교와 인하대학교의 바이오연구소, 가천의과학대학교의 뇌과학연구소가 들어와 있다”며 “존스홉킨스대학교와 서울대학교가 병원을 세울 계획도 있어 송도는 앞으로 바이오테크놀로지의 메카가 된다”고 김 단장을 설득했다.
삼성바이오로직스는 플랜트 건설에 1조 원, 바이오시밀러 개발사업에 1조 원 등 모두 2조 원을 송도에 투자하기로 했다.
송영길은 인천시에 외국인 직접 투자 유치(FDI)를 늘리며 경제를 활성화하기 위해 노력했다. 덕분에 2012년 인천시는 외국인 투자 유치 실적에서 경기도를 앞지르고 전국 2위에 올랐다.
송영길은 “외국인 투자로 경제를 활성화해 재정을 건전하게 하는 것이 재정 위기의 근본적 해결 방법”이라며 “기업이 많아지고 일자리가 늘고 세수가 커져야 안정적 재원을 확보할 수 있다”고 말했다.
2013년 1월에는 인천터미널 부지를 롯데쇼핑에 9천억 원에 매각했다.
그 밖에 인천도시공사가 시행하는 10조 원 규모의 16개 사업을 취소 또는 축소하고 송도파크호텔, 영종보금자리, 검단산업단지 등 시 소유의 부동산 자산을 매각했다.
빚을 줄이기 위해 다방면으로 노력한 결과 전임 안상수 시장 때 이자만 매년 4천억 원 규모였던 인천시의 빚은 2013년 4328억 원 줄면서 감소세로 돌아섰다.
△인천시장 당선
송영길은 2010년 4월25일 인천시장 출마를 선언하며 인천 계양을 지역구의 의원직을 내려놓았다.
그는 기자회견을 열어 “반드시 지방선거에서 인천에서부터 승리해야 한다”며 “그 승리의 여세를 몰아 당 안에 깊게 드리운 패배주의를 걷어내고 서울 경기를 한나라당 독재로부터 되찾아야 한다”고 각오를 다졌다.
인천경제자유구역 계획의 재검토, 구도심 재생기금 3조 원 마련, 중소기업 지원기금 1조 원 지원, 초중고 친환경 무상급식, 9세까지 시에서 보육 지원 등 공약을 내걸었다.
2010년 6월2일 치러진 지방선거에서 52.7% 득표율을 내 안상수 한나라당 후보를 제치고 인천시장에 올랐다.
△정치활동의 시작
송영길은 1999년 6월2일 재보궐선거에서 새정치국민회의 소속으로 인천 강화-계양 갑에 출마했다.
당시 김대중 정부의 옷로비 의혹 등이 불거지며 선거 과정이 송영길에게 불리하게 전개됐다. 결국 송영길은 41.8% 득표율로 56.9% 득표율을 보인 안상수 한나라당 후보에게 져 낙선했다.
2000년 제16대 국회의원 선거 때 강화군이 서구에 흡수되면서 지역구가 나뉘었다. 송영길은 새천년민주당 소속으로 인천 계양구 지역구에 재도전했다.
재보궐선거에서 만났던 안상수 한나라당 후보를 상대로 48.3% 득표율을 내며 설욕에 성공했다. 그 뒤로 17대와 18대 총선에서도 인천 계양구을에서 당선되며 3선의 중진급 의원 위치에 올랐다.
△정계 입문 전
송영길은 연세대학교 재학 시절 학생운동을 했다. 1984년 12월 전두환 정부 시절 여당이었던 민정당 당사에서 일어난 ‘민정당사 점거 농성사건’의 주모자로 지목돼 구속됐다. 이 때문에 학교에서 제적당했다가 이후 복적됐다.
대학 졸업 뒤로는 노동운동을 했다. 1991년 전국택시노동조합연맹 인천시지부 초대 사무국장에 올라 운수 노동자들의 권익 향상에 이바지했다.
1992년 현장 노동운동을 접고 서울 신림동으로 옮겨 사법시험 준비를 시작했는데 당시 송영길의 응시를 놓고 택시노련에서 찬반투표를 할 정도로 그의 영향력은 컸다. 그는 투표 결과에 따라 시험에 응시해 1994년 제36회 사법시험에 합격했다.
사법연수원을 나온 뒤 민주사회를 위한 변호사모임과 전국택시노조연맹 고문 변호사로 활동하는 등 노동인권 변호사로서 노동자 권익 보호에 앞장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