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대중공업그룹은 모두가 함께 마시는 큰 우물이니 아끼고 사랑해야 오래 함께할 수 있다.”
권오갑 현대중공업지주 대표이사 부회장이 수년 전 담화문에서 했던 말이다. 40년을 몸담은 애정이 드러난다.
23일 권 부회장이 주도한 현대중공업그룹의 지배구조 개편안을 놓고 호평이 쏟아지고 있다. 권 부회장은 현대중공업이라는 큰 우물을 흐릴 수도 있는 걱정거리를 깨끗이 치워냈다는 점에서 안도할 것 같다.
현대중공업그룹이 내놓은 지배구조 개편안이 지주사체제 전환와 순환출자 해소라는 과제를 모두 해결한 ‘묘수’로 환영받고 있는 만큼 지배구조 개편에 관한 잡음은 더이상 없을 것으로 보인다.
이경자 한국투자증권 연구원은 이날 "현대중공업그룹의 이번 지배구조 개편안은 모든 참여자에게 충격을 주지 않는 최선의 방안"이라며 "회사와 주주 모두에게 긍정적"이라고 바라봤다.
현대중공업그룹은 22일 현대삼호중공업을 분할해 투자회사를 현대중공업에 흡수합병하는 개편안을 발표했다. 현대미포조선이 들고 있던 현대중공업 지분 역시 현대중공업지주에 넘겨 순환출자 고리를 해소한다.
권 부회장이 그동안 별러온 지주사체제 구축을 성공적으로 마친 셈이다. 증권사들도 이번 개편안은 모두가 ‘승자’라고 평가하고 있다.
당초 현대중공업이 공정거래법상 규제를 지키기 위해 현대삼호중공업이 보유한 현대미포조선 지분을 직접 사들이려면 8천억 원가량을 써야해 투자자들의 우려가 많았다.
하지만 합병을 통해 자금 지출없이도 현대미포조선 지배력을 확보하면서 이런 불확실성을 덜었다. 중간 지주사로서 조선 자회사 관리와 시너지 창출도 쉬워질 것으로 여겨진다.
현대미포조선 역시 들고 있던 현대중공업 지분을 현대중공업지주에 '할인없이' 팔았다. 3천억 원이 넘는 유동성을 확보해 전 세계의 조선사 가운데 가장 튼튼한 재무구조를 구축했다.
현대중공업지주는 현대중공업 지분율이 기존 27.74%에서 30.95%로 늘어 지배력을 높이고 지주회사 관련 규제를 조기에 해결하게 됐다.
주주들도 이득을 챙길 수 있을 것으로 보인다. 현대중공업지주는 앞으로 배당성향을 70%로 제시하는 등 적극적 주주 환원정책을 펼치기로 했다. SK, LG, GS, CJ 등 주요 지주사들의 3년 동안 평균 배당성향인 59.8%를 훌쩍 웃돈다.
현대미포조선은 최근 3년 동안 배당을 실시하지 않았는데 올해는 배당수익을 기대해 볼 수 있게 됐고 현대삼호중공업 주주들도 합병 비율에 따라 주식 일부를 현대중공업 주식으로 교환 받게돼 환금성 측면에서 유리해졌다.
권 부회장은 지난해 현대중공업지주 대표에 오른 이후로 지주사 전환 등 체질 개선 작업에 전념해왔는데 결실이 코앞으로 다가왔다.
완벽한 지주회사가 되기 위해 금융 계열사인 하이투자증권을 매각해야 하지만 지난해 이미 DGB금융지주와 주식 매매계약(SPA)를 체결했다. 현재 금융당국의 대주주 적격성 심사를 남겨놓고 있고 사실상 승인난 것이나 다름없는 것으로 알려졌다.
권 부회장이 ‘오너경영체제’의 길을 닦는 일에도 청신호가 켜졌다. 그룹 최대의 숙제가 해결된 만큼
정기선 현대중공업 부사장이 수주 등 경영 성과를 내는 일에 집중할 수 있는 환경이 마련됐기 때문이다.
권 부회장은
정몽준 현대중공업지주 최대주주의 복심으로 꼽히는데 정 최대주주의 장남인 정 부사장의 '대관식 준비'를 어깨에 짊어지고 있다.
정 부사장은 지난해 말 승진한 뒤 현대글로벌서비스 대표이사에 올라 경영 전면에 나섰다. 현대중공업 수주를 총괄하는 선박해양 영업부문장도 맡고 있으며 3월에는 현대중공업지주 지분을 5.1% 사들이면서 경영권 승계에 시동을 걸었다.
최광식 하이투자증권 연구원은 "투자자들은 여태 현대중공업그룹의 지배구조 재편과정을 걱정해왔는데 계열사 자금 소요 등 주주들이 반대할 만한 이유없이 부드럽게 이를 해결했다"며 "이제 오롯이 조선업 본업만 바라보면 된다"고 말했다.
권 부회장은 수익성을 높여 재도약을 꾀하기 위한 그룹 체질 개선도 서두르고 있다. 4월 현대중공업과 현대미포조선, 현대건설기계, 현대일렉트릭이 한꺼번에 인력 구조조정을 진행한 데 이어 23일에도 현대중공업이 추가로 해양사업본부 인력의 희망퇴직을 실시하기로 했다. [비즈니스포스트 고진영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