삼성그룹이 국내에 130조 원을 포함해 모두 180조 원 규모의 투자 계획을 내놓았다. 이 가운데 삼성전자 반도체사업에만 100조 원이 넘는 대부분의 투자가 이뤄질 것으로 예상된다.
하지만 삼성전자는 메모리반도체와 시스템반도체, 공장 증설 투자와 연구개발비 지출, 인수합병 등 다양한 선택지를 놓고 시장 상황을 주시할 것으로 보여 이른 시일 안에 투자 결정이 이뤄지기는 어려울 수도 있다.
이승우 유진투자증권 연구원은 9일 "삼성그룹이 발표한 180조 원 규모의 투자에서 삼성전자가 최대 165조 원에 이르는 금액을 책임질 것"이라고 내다봤다.
업계에서는 가전제품과 스마트폰 공장 증설 및 연구개발, 디스플레이사업 등에 쓰일 투자비용을 넉넉하게 잡더라도 100조 원을 훌쩍 넘는 금액이 반도체분야에 집중될 것으로 예상하고 있다.
삼성전자도 서버와 자동차 전장부품분야에서 반도체 신규 수요가 크게 증가할 것이라며 평택을 포함한 국내 생산거점을 중심으로 투자를 확대하겠다고 밝혔다.
하지만 반도체사업에서 구체적으로 어느 분야에 투자를 집중할 지는 아직 알려지지 않았다. 올해 초 증설이 결정된 평택 제2반도체공장의 투자 계획 역시 이번에도 정식으로 발표되지 않았다.
삼성전자가 일단 반도체사업에 그동안 들인 금액을 바탕으로 대략적 투자 예상치를 내놓은 뒤 자세한 계획은 반도체시장 상황에 맞춰 순차적으로 확정하려 하는 것이라는 분석이 나온다.
이 연구원은 "올해 추정치를 포함한 삼성전자의 최근 3년 투자 금액은 약 162조 원으로 이번에 발표된 향후 3년 동안의 투자 계획과 비슷한 규모"라고 파악했다.
삼성전자는 D램과 낸드플래시 등 메모리반도체, 모바일 프로세서와 이미지센서 등 자체 설계 시스템반도체, 위탁생산 등 다양한 반도체 사업분야를 갖추고 있다.
따라서 각 분야별로 3년 동안 들일 투자 계획을 상세히 구분해 내놓기는 어려울 수밖에 없다.
메모리반도체업황이 빠르게 변화하는 한편 신사업 발달에 따른 반도체 수요 증가폭을 예측하기 어렵다는 점도 삼성전자가 반도체 투자를 미리 조율하기 쉽지 않은 배경이 되고 있다.
메모리반도체 특성으로 볼 때 경쟁사의 공급이 늘어나거나 수요가 예상만큼 늘지 않는 상황에서 삼성전자가 무리한 대규모 증설 투자를 벌이면 실적에 큰 악영향을 미칠 가능성이 높기 때문이다.
삼성전자는 올해 예정됐던 낸드플래시 증설 규모를 축소하고 D램 위주로 전환하는 등 시장 변화에 발빠르게 대응하고 있다. 이처럼 시장 상황에 맞춰 투자 계획이 수시로 변할 공산이 크다.
시스템반도체 역시 사정이 마찬가지다. 5G 통신칩, 인공지능과 자율주행 반도체 등 삼성전자가 개발 중인 차세대 반도체에 얼마나 많은 연구개발비와 인력이 필요할 지 예상하기 어렵기 때문이다.
시스템반도체 위탁생산사업에서도 현재 약 6조 원을 들여 증설되고 있는 화성 EUV(극자외선)공정 전용 공장이 얼마나 많은 잠재적 고객사 수요를 확보할 지 예측이 불가능하다.
삼성전자가 시스템반도체 후발주자로 경쟁력을 확보하기 위해 해외 관련 기업을 인수할 가능성도 고개를 들고 있어 투자 계획에 큰 변수가 될 수 있다는 관측도 나온다.
결국 삼성그룹의 대규모 투자 발표가 삼성전자 반도체사업과 세계 반도체 관련업계에 미칠 영향은 이른 시일에 파악하기 힘들 것으로 보인다.
삼성전자 관계자는 "삼성이 발표한 전체 투자 계획에 반도체도 반영되었다는 점 외에 아직 세부사항은 전달된 내용이 없다"며 "시간이 지나면서 점차 윤곽이 나타날 것"이라고 말을 아꼈다. [비즈니스포스트 김용원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