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크리스토퍼 한승 고(Christopher Hansung Ko).’ 한국계 미국인인
고한승 삼성바이오에피스 대표의 미국 이름이다.
고 대표는 삼성그룹 경영자들 가운데 보기 드물게 페이스북 등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를 이용하며 직원들과 소통하는 스타일로 알려졌지만 대외적으로 눈에 띄는 행보를 보이지는 않았다.
고 대표가
김동연 경제부총리와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의 간담회 자리에 참석해 정부에 바이오산업 규제 완화를 적극 요청하면서 삼성그룹 바이오사업을 대표하는 얼굴로 주목받고 있다.
7일 삼성바이오에피스에 따르면
고한승 대표는 6일 정부-삼성 간담회 자리에서
김동연 부총리에게 삼성이 ‘제2의 반도체 신화’로 육성하고 있는 바이오사업을 소개하고 여러 규제를 완화해 줄 것을 건의했다.
고 대표는 바이오의약품 원료물질 수입 통과의 개선과 각종 세제 완화, 약가 정책 개선 등 각정 규제 완화 필요성을 김 부총리에게 전달한 것으로 알려졌다.
고 대표는 인천 송도를 중심으로 하는 한국형 바이오클러스터 조성 및 전문 인력 양성 아이디어도 설명했고 국내 바이오제약 산업이 글로벌 수준으로 발전해 나가기 위한 정부의 지속적 관심과 지원을 요청했다.
이런 사실이 알려지면서 고 대표의 삼성그룹 내 위상이 한층 높아졌다는 말도 나온다. 고 대표가
이재용 부회장의 ‘신임’을 받은 것이 아니냐는 것이다.
김 부총리와 이 부회장의 간담회 자리에 참석했던 사람들은
윤부근 삼성전자 부회장과
김기남,
김현석, 고동진, 노희찬,
진교영 삼성전자 사장 등 삼성전자 경영진이었다. 삼성전자 경영진이 아닌 사람은 고 대표가 유일했다.
삼성바이오에피스 관계자는 “고 대표에게 따로 연락이 와 참석하게 된 것으로 알고 있다”고 말했다.
애초 삼성그룹의 바이오사업은 삼성바이오에피스의 모회사이자 삼성물산의 자회사인 삼성바이오로직스가 대표하고 있다.
그러나 삼성바이오로직스는 2015년 회계 처리와 관련해 최근 금융위원회로 증권선물위원회로부터 고의 공시 누락이라는 결정을 받고 검찰에
김태한 대표이사와 법인이 고발됐다. 참여연대로부터도 분식회계 혐의로 고발을 당했고 사건은 검찰 서울중앙지검 특수부에 배당됐다.
김태한 삼성바이오로직스 대표는 6일 간담회 자리에 참석하지 않았는데 삼성그룹 관계자는 “검찰 수사 등 여러 부담이 있는 상황이 반영된 것으로 보인다”고 말했다.
김태한 대표는 올해 6월 미국 보스턴에서 열렸던 세계 최대 바이오행사인 ‘바이오USA’에도 참석하지 않았다.
고한승 대표는 김 대표 대신 올해 바이오USA에 등장했다. 고 대표가 바이오USA에 모습을 드러낸 것은 올해가 처음이다.
고 대표는 “다국적 제약사와 글로벌 미팅을 진행하고 세계 바이오 트렌드를 점검하기 위해 들렀다”고 말했다.
김 대표가 삼성그룹 공채 출신으로 제일합섬(현 도레이케미칼)에서 경력을 쌓은 데 반해 고 대표는 외부에서 영입됐다.
고 대표는 1966년생으로 미국 캘리포니아의 프로스펙트 하이스쿨을 졸업하고 UC버클리대에서 생화학 학사학위와 석사학위를 받았다. 이후 노스웨스턴대학교 대학원에서 유전공학 박사학위를 취득했다.
미국 바이오업계에서 일했고 2000년 바이오 벤처기업 다이액스에서 부사장을 맡으며 다이액스가 미국 나스닥시장에 상장하는 데 기여했다.
2000년 삼성종합기술원 바이오연구 기술자문으로 영입되면서 삼성그룹과 연이 닿았고 2004년 삼성종합기술원 바이오&헬스 랩장을 맡았다.
▲ 김동연 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이 6일 오전 경기도 평택시 삼성전자 평택캠퍼스를 방문해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과 고한승 삼성바이오에피스 대표(왼쪽 위) 등과 기념촬영을 하고 있다. |
고 대표는 2007년 삼성그룹 신사업팀으로 차출됐다. 당시 이건희 삼성전자 회장이 미래 먹거리 개발을 지시해 만든 팀이었다.
신사업팀은 3년 간의 고심 끝에 2010년 바이오를 포함한 ‘5대 신수종’ 사업을 발표했다. 삼성바이오로직스와 삼성바이오에피스가 설립됐고
고한승 대표는 삼성바이오에피스 대표를 맡았다.
당시 삼성바이오에피스는 바이오시밀러사업에서 후발주자였다.
고한승 대표는 다수의 바이오시밀러를 동시에 개발하는 방법으로 약점을 극복하겠다는 전략을 펼쳤고 ‘속도전’을 통해 바이오시밀러 판매 승인 기간을 최대한 줄였다.
삼성바이오에피스는 2016년 1월 유럽의약품청(EMA)에서 바이오의약품 ‘엔브렐’의 바이오시밀러인 ‘베네팔리’의 판매허가를 받았고 2016년 5월에는 바이오의약품 ‘레미케이드’의 바이오시밀러인 ‘플릭사비’ 판매 허가를 받았다.
베네팔리는 최초의 바이오시밀러로서 시장을 선점하는 데 성공했고 지난해 유럽에서 4080억 원의 매출을 냈다. 올해 2분기에도 1억1560만 달러(1300억 원)이 넘는 매출을 내며 지난해 2분기보다 매출이 30%가량 늘었다.
베네팔리 성과 덕분에 삼성그룹도 바이오사업에서 체면을 세울 수 있었다.
고 대표와 삼성바이오에피스는 올해 10월 중대한 도전을 앞두고 있다.
삼성바이오에피스는 올해 10월 바이오의약품 ‘휴미라’의 특허만료에 따른 바이오시밀러 경쟁에 뛰어든다. 휴미라의 글로벌 연 매출은 20조 원으로 유럽시장 규모만 5조 원에 이른다.
삼성바이오에피스의 휴미라 바이오시밀러 경쟁자는 글로벌제약사인 베링거잉겔하임과 암젠, 산도스 등이다. 쉽지 않은 경쟁이 예상된다. [비즈니스포스트 이승용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