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신의 경험과 소신에 따라 작지만 의미있는 변화를 일으키는 어번 히피(Urban Hippies)의 생각은 들여다볼수록 매력적이다”
안건희 이노션 대표이사 사장이 2014년 이노션의 첫 잡지 ‘라이프 이즈 오렌지’ 탄생을 축하하며 실은 인사말이다.
▲ 안건희 이노션 대표이사 사장.
어번 히피는 당시 사회적 관습이나 인식을 따르기보다 도시 안에서 스스로의 전문성이나 삶의 방식을 버리지 않고 취향과 개성을 지켜내는 젊은이들을 부르는 말이다.
안 대표는 입사 이래 보수적 기업문화를 갖춘 것으로 알려진 현대차그룹을 떠났던 적이 없지만 광고회사의 수장답게 안정을 추구하기보다 창의적 시도를 선호해온 것으로 평가된다.
안 대표가 새 먹거리 찾기에서도 창의성을 발휘해 이노션의 현대기아차 내부거래 비중을 낮추는 해법을 찾아낼까?
안 대표는 광고 대행을 넘어 직접 콘텐츠 마케팅을 펼치는 것으로 보폭을 넓히고 있다. 현대기아차 광고물량을 포기할 수 없다면 전체 매출의 규모를 키우는 것만이 내부거래 비중을 낮추는 유일한 해답이기 때문이다.
이노션은 11일 어린이 콘텐츠 전문회사인 ‘캐리소프트’의 마케팅을 전담하는 ‘마케팅랩’ 계약을 맺고 광고주 영입 등 업무를 본격적으로 시작했다. 마케팅 렙은 광고와 홍보 등을 기획, 제작, 실행하는 마케팅 대행사와 미디어의 광고를 대행하는 미디어렙을 결합한 말이다.
이노션은 이 계약에 따라 캐리소프트 콘텐츠와 채널의 마케팅 업무를 독점적으로 진행할 수 있는 권한을 확보했다.
이노션 관계자는 “콘텐츠 마케팅은 광고회사의 강점인 기획력과 마케팅 역량이 시너지를 낼 수 있는 최적의 분야”라며 ““유튜브를 바탕으로 급성장하고 있는 캐리소프트 콘텐츠에 이노션의 마케팅 노하우를 접목해 체계적이고 종합적 수익모델을 만들 것”이라고 말했다.
안 대표는 이노션이 국내 광고대행사 가운데 처음으로 직접 애니메이션 제작하는 작업도 이끌었다.
이노션은 2016년 MBC에서 방송된 어린이 TV만화 ‘파워배틀 와치카’을 직접 제작하고 마케팅, 배급, 라이선싱을 주도했다.
여기에서 멈추지 않고 국내 완구회사와 함께 파워배틀 와치카 장난감을 제작하고 인도네시아 공중파채널 ‘글로벌TV’와 방영계약도 맺었다. 이 콘텐츠 사업은 어린이용 뮤지컬 제작으로까지 확대됐다.
안 대표의 이런 참신한 시도와 창의성은 평균 3년을 채우지 못하는 현대차그룹에서 최고경영자 자리를 9년째 지킬 수 있었던 비결 가운데 하나로 꼽힌다.
이 밖에도 안 대표는 적극적으로 해외 광고회사를 인수합병하며 새 기회를 찾는 데 속도를 내고 있다.
이런 노력에 힘입어 이노션의 매출 규모도 점점 커지고 있다. 안 대표가 취임할 당시인 2009년 이노션 매출은 2338억 원이었는데 지난해 3930억 원으로 늘어났다. 올해는 4720억 원으로 증가할 것으로 전망된다.
안 대표는 1957년 태어나 경기고와 서울대 법학과를 졸업했다.
현대자동차 기획실에서 사회생활을 시작한 뒤 마케팅전략실 실장 이사, 수출 1실장 상무, 수출사업부장 전무, 서유럽 판매법인장 전무, 현대모비스 기획실장 부사장을 거쳤다.
2009년부터 이노션 대표이사를 맡고 있다.
이노션은 현재 내부거래 비중이 거의 60%에 이르는데 최근 공정거래위원회가 일감 몰아주기 규제를 강화할 조짐을 보이면서 쉽지 않은 상황에 놓였다.
공정위는 총수일가 사익편취 규제대상인 상장기업 지분요건을 현행 30%에서 20%로 낮추는 법안을 검토하고 있다. 만약 이 법안이 시행되면 총수일가 지분율이 29.9%(정성이 이노션 고문 27.9%, 정의선 현대차 부회장 2% 등)에 해당하는 이노션도 일감 몰아주기 규제대상에 오르게 된다.
이렇게 되면 이노션은 총수일가의 이노션 지분을 매각하거나 내부거래 비중을 낮춰야 한다.
하지만 이노션이 내부거래 비중을 낮추기 위해 현대차그룹 광고물량을 포기하는 것은 현실적으로 어려울 것으로 전망된다.
김민정 하이투자증권 연구원은 “이노션은 공정거래법의 개정에 따라 총수일가의 지분매각이 이뤄지더라도 매출에 영향은 미미할 것”이라며 “보안성, 효율성, 긴급성 측면에서 현대자동차그룹의 광고물량이 이노션을 이탈할 가능성은 거의 없기 때문”이라고 말했다. [비즈니스포스트 서하나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