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동빈 롯데그룹 회장이 박근혜 전 대통령과 독대할 당시 박 전 대통령이 롯데그룹 회장을 그만두라고 할 수도 있다고 생각한 만큼 청탁을 한다는 건 상상도 할 수 없는 일이라고 말했다.
박 전 대통령과 만나기 사흘 전 안종범 전 청와대 정책조정수석을 만난 자리를 놓고는 박 전 대통령이 그와 롯데그룹을 어떻게 생각하는지 알아볼 수 있는 자리로 여겼다고도 진술했다.
▲ 신동빈 롯데그룹 회장이 2일 오후 서울 서초구 서울고등법원에서 열린 항소심 속행공판에 출석하고 있다.
신 회장은 9일 오후 2시10분부터 서울고법 형사8부(부장판사 강승준) 심리로 열린 뇌물공여 혐의 7차 공판에서 이같이 말했다.
이날 검찰, 변호인 순으로 피고인 신문이 6시간 가까이 이뤄졌다.
신 회장은 “2015년 12월 롯데면세점 월드타워점이 특허심사에서 탈락하자 경영권 분쟁의 여파일 수도 있다고 생각했다”며 “그 뒤 롯데그룹의 입장을 해명하고 이미지를 개선하기 위해 (기존과 달리) 정계와 언론계의 여러 사람을 만나기 시작했다”고 말했다.
그는 “안종범 전 수석과 만남도 이런 노력의 일환”이라며 “대통령이 경영권 분쟁을 놓고 질책할까봐 많이 걱정했다”고 증언했다.
신 회장은 특히 “형인 신동주 전 일본 롯데홀딩스 부회장이 아버지 신격호 명예회장을 앞세워 그가 효자고 내가 불효자라고 당시 주장했다”며 “박 전 대통령이 대통령이 되기 전부터 아버지를 존경한다고 밝혀와 나에게 회장직을 그만두라 할까봐 정말 걱정했다”고 말했다.
신 회장은 박 전 대통령과 만난 자리에서 경영권 분쟁으로 물의를 일으켜 죄송하다고 했고 롯데그룹이 앞으로 적극적으로 고용창출 등에 힘쓰겠다고 말했다는 기존의 입장을 되풀이했다.
그는 “더 이상 경영권 분쟁으로 시끄럽게 할 일은 없을 것이라고 말했다”며 “그 뒤 가져온 자료로 평창동계올림픽을 이용한 경제활성화 방안을 놓고 설명하고 롯데그룹이 평창동계올림픽에 지원한 금액 등을 강조했다”고 말했다.
검찰은 롯데그룹 내부 문건에서 안 전 수석이 롯데면세점 관련 이해관계자 집중설득 1순위 대상으로 올라있다는 점, 소진세 사장이 먼저 안 전 수석에게 신 회장을 만나달라고 여러 차례 요청했다는 점, 안 전 수석도 신 회장과 만난 자리에서 면세점 관련 얘기를 들었다고 진술한 점을 들어 신 회장을 추궁했다.
검찰은 또 이인원 전 롯데그룹 부회장이 박 전 대통령을 만나러 갈 때 이를 위해 작성된 롯데그룹 내부문건에 면세점 관련 건의사항이 올라가 있던 점 등을 놓고 신 회장과 이인원 전 부회장이 비슷한 목적으로 대통령을 만나려 한 것 아니냐고도 공세를 펼쳤다.
이 전 부회장은 당초 해외출장 중이었던 신 회장을 대신해 2월 청와대의 요청으로 박 전 대통령을 만나러 갔으나 당시 총수가 아니라는 이유로 만남을 거부당했다.
이에 대해 신 회장은 “나는 경영권 분쟁의 당사자로 이인원 전 부회장과 입장이 다르다”며 “내가 만날 때는 면세점 관련 건의사항이 아예 빠졌다”고 대답했다.
신 회장은 박 전 대통령과 독대할 때 박 전 대통령이 무슨 얘기를 했느냐는 질문에는 “스포츠와 관련한 지원을 요청했다”며 “당시 K스포츠에 대한 인식이 없어 박 전 대통령이 K스포츠를 언급했다고 하더라도 K팝, K뷰티 등과 비슷한 의미로 들었을 것 같다”고 대답했다. 다만 K스포츠나 하남시 부지 매입, 스포츠시설 건립 등 구체적 얘기는 전혀 듣지 못했다고 진술했다.
이날 피의자 신문을 마지막으로 뇌물공여 혐의 심리는 마무리됐다. 11일부터 롯데그룹 경영비리 심리가 시작된다. [비즈니스포스트 조은아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