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이 자동차 전장부품분야 최고 선진국으로 평가받는 일본으로 최근 두 차례의 출장을 떠나 관련한 업체와 협력 가능성을 논의하며 활발한 행보를 보이고 있다.
일본 전자업체들이 과거 전장부품 중심으로 사업구조를 재편했을 때와 지금의 삼성전자가 비슷한 처지에 놓인 만큼 미래 청사진을 그리는 한편 본격적 경쟁에도 대비하기 위한 목적으로 분석된다.
11일 삼성전자에 따르면 이 부회장은 10일까지 열흘 동안 일본에서 현지 전자기업 관계자들과 만나 전장부품 등 분야에서 협력 가능성을 논의했다. 5월 초에는 일본 통신사 경영진들과 만났다.
일본 전자기업과는 전장사업 기술 협력 및 고객사 공유 가능성을, 통신사들과는 5G 기반 자동차용 통신시스템(텔레매틱스) 관련 논의를 진행했을 것이라는 해석이 유력하다.
이 부회장이 새 성장동력으로 점찍은 인공지능과 전장부품에 특히 중점을 두고 최근 인력 확보에 적극적으로 나선 한편 해외 기업들과 접점도 확대하고 있기 때문이다.
일본은 글로벌 자동차 전장부품시장에서 가장 큰 영향력을 확보한 종주국으로 꼽힌다.
파나소닉과 소니 등 2000년대 초반까지 글로벌시장을 주름잡던 주요 전자업체들이 실적 부진으로 일제히 전장부품 등 기업대상사업을 중심으로 하는 강도 높은 체질 개선에 나선 성과다.
파나소닉은 현재 전 세계 자동차 인포테인먼트시장과 전기차 배터리시장에서 점유율 1위를 굳건히 지키고 있다. 소니는 자동차용 카메라와 이미지센서분야 상위 기업으로 자리잡았다.
도시바와 산요, 후지쯔도 모두 삼성전자보다 훨씬 앞서 전장부품 중심으로 사업을 전환했고 무라타는 전장용 적층세라믹콘덴서(MLCC) 기술력과 점유율에서 압도적 선두를 차지하고 있다.
모두 삼성전자와 전자계열사들이 대규모 연구개발 투자로 육성하고 있는 신사업분야다.
일본 전자기업들의 변화는 자동차 전장부품을 삼성전자와 삼성전기, 삼성SDI와 삼성디스플레이 등 전자 계열사의 새 성장동력으로 키워내야 하는 이 부회장의 고민과 맞닿아 있다.
삼성전자가 현재 반도체와 스마트폰, TV와 디스플레이 등 주력사업에서 세계 최고 기업이지만 최근 중국 회사들의 거센 도전에 직면해 미래를 낙관하기 어려운 처지이기 때문이다.
일본 전자업체들은 과거 삼성전자와 LG전자, 애플 등 해외 경쟁업체에 밀려 TV와 PC, 스마트폰 등 주력사업을 점차 축소해 왔는데 삼성전자가 비슷한 전철을 밟고 있는 셈이다.
삼성전기와 삼성SDI, 삼성디스플레이 등 전자 계열사도 더 이상 삼성전자에 부품 공급을 통한 실적 성장을 기대하기 어려워 전장사업에서 새 수익원을 마련하는 것이 절실하다.
이 부회장이 항소심에서 석방된 이후 최근 약 2개월 사이 일본에만 2차례 출장을 떠나 여러 현지 IT기업과 사업을 논의한 것은 이런 고민을 반영한 것으로 분석된다.
▲ 일본 파나소닉의 자동차 인포테인먼트 시스템. |
삼성전자가
이건희 회장 때 일본 전자업체들을 뛰어넘고 글로벌 선두에 오른 것처럼 이 부회장이 이번에는 전장부품 최대 경쟁사인 일본 회사들을 넘겠다는 의지를 보인 것이라는 풀이도 나온다.
이 부회장은 일본 게이오신주쿠대 대학원을 졸업한 뒤 일본에서 오랫동안 경영 수업을 받았고 일본 IT업계에서 가장 '거물'로 꼽히는 손정의 소프트뱅크 회장과 친분도 두텁다.
삼성전자가 앞으로 나아갈 길과 미래 성장의 해답을 일본 전자기업들의 역사에서 찾고 이를 적극적으로 사업 전략에 반영해 나갈 가능성이 충분하다.
이재용 시대에 들어 삼성전자가 인수합병을 통한 신사업 성장전략을 강조하고 있는 만큼 두 차례의 출장길에서 대규모 인수합병과 같은 중요한 논의가 진행됐을 공산도 있다.
삼성전자 관계자는 "이 부회장이 여러 글로벌 기업과 이제 막 협력 논의를 시작한 만큼 해외 출장 등의 성과가 공개되까지 시간이 더 걸릴 수 있다"며 "주로 인공지능과 전장부품 등 신사업에 연관이 있다"고 말했다. [비즈니스포스트 김용원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