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윤석헌 금융감독원장(가운데)이 4일 서울 여의도 금감원에서 금융협회 6곳의 협회장들과 간담회를 하고 있다. <뉴시스> |
윤석헌 금융감독원장이 취임 이후의 ‘정중동’에서 벗어나 대외 행보를 시작했다.
그동안 신중한 태도를 지키면서 금감원 내부를 추스르는 데에 집중했다면 앞으로는 ‘금융 호랑이’로서 금융체제의 개편 작업을 본격 추진할 것으로 예상된다.
윤 원장은 4일 금융협회 6곳의 협회장들을 만난 자리에서 가계부채 관리와 일자리 창출, 금융 소비자 보호, 채용비리 근절, 사회적 책임의 강화 등 주요 현안을 챙길 것을 당부했다.
금융권의 채용비리를 막기 위해 은행권에서 채택하려는 채용절차 모범규준을 금융투자와 보험 등 다른 업권에서도 도입할 것을 제시하는 등 구체적 주문도 내놓았다.
5월4일 금감원장으로 임명된 뒤 1개월 동안 비교적 조용히 지낸 점을 감안하면 6월부터 금융체제 개편을 본격적으로 추진하겠다는 신호를 보낸 것으로도 볼 수 있다.
윤 원장이 임명됐을 때 금융권은 그를 ‘호랑이’에 빗대면서 긴장했다. 윤 원장이 학자 시절 정부의 금융정책에 쓴소리를 쏟아냈던 만큼 금융 개편에도 속도를 낼 것으로 전망됐다.
그가 5월8일 취임식에서 금감원의 독립성을 강조하면서 “법과 원칙, 소신에 따라 (금융시장에서) ‘브레이크’를 시의적절하게 밟아야 한다”고 말한 점도 금융권을 긴장하게 했다.
그러나 윤 원장은 취임 이후 5월18일 금융감독자문위원회 전체회의에 나온 것을 제외하면 외부 행사에 참석하지 않았고 언론과 접촉하는 것도 자제했다.
전임자인 김기식 전 금감원장이 2주 동안 일하면서
박원순 서울시장과 회동, 라디오방송 출연, 증권·자산운용·저축은행업계 CEO 간담회 등 외부에서 활발하게 움직였던 것과 비교된다.
윤 원장은 취임 후 첫 1개월 동안 전임 금감원장 2명이 연이어 낙마하면서 불안해진 내부 분위기를 다잡는 데에 힘쓴 것으로 보인다.
그는 5월 중순에 열린 금감원 간부회의에서 “조직의 안정을 무엇보다 최우선 과제로 두겠다”고 말했다. 전임자들이 만든 ‘3대 혁신 태스크포스팀’도 그대로 유지했다.
5월 내내 금감원 부서장들과 잇달아 만나 현안을 듣고 의견을 나눴다. 주말 출근을 스스로 줄이는 등 직원들의 ‘워라밸(일과 가정의 균형 맞추기)’도 챙겼다.
MBC ‘무한도전’을 연출한 김태호 PD를 강연자로 부르고 도시락을 싸와 먹으면서 강연을 함께 듣는 등 금감원 직원들과 격의 없이 어울리려는 모습도 보였다.
금융권 관계자는 “윤 원장은 장점으로 평가되던 원만한 대인관계와 소탈한 성격을 살려 직원들을 다독이면서 업무 파악에 주력해 왔다”며 “1개월 정도면 업무를 거의 살펴봤을 시기인 만큼 ‘
윤석헌표’ 금융 개편의 윤곽이 6월부터 차츰 선명해질 것으로 보인다”고 말했다.
윤 원장은 조만간 은행과 보험 등 금융업권별로 CEO들을 만나 현장의 목소리를 듣고 의견을 나눌 계획을 세웠다. 현재 금감원에서 일정 등을 조율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6월에 대기업집단의 금융 계열사 지배구조에 관련된 금융그룹 통합감독 모범규준의 최종안이 나오는 만큼 이와 발맞춰 윤 원장이 하반기 금융감독방향 등을 직접 브리핑할 수 있다는 관측도 나온다.
금감원은 금융그룹 통합감독 모범규준이 시행되면 2018년 하반기 안에 모범규준의 이행 상황을 점검하고 그룹 위험의 실태 평가도 실시한다.
금감원은 보험협회를 통해 보험사들이 보험료를 두 번째 받을 때 신용카드 납입을 거절하는 등의 사례를 고칠 것을 주문하는 등 금융 소비자 보호도 강화하고 있다.
윤 원장의 취임 전에 시작된 일이기는 하지만 삼성바이오로직스 분식회계 논란과 관련해 증권선물위원회의 결과가 나오면 시장에 파급될 영향들도 대비해야 한다. 삼성바이오로직스 문제와 함께 삼성그룹의 지배구조가 본격적으로 논의돼 개편안이 나오면 금융 계열사의 향방에 관해서도 감독기구로서 면밀히 살펴봐야 한다.
은행 채용비리는 아직 검찰에서 수사가 진행되고 있는 만큼 수사 결과를 지켜보면서 은행권에 미칠 영향을 검토하고 은행은 물론 제2 금융권까지 채용비리 근절을 확립시키는데 제도 정비와 점검을 철저히 해나갈 것으로 보인다.
윤 원장은 취임사에서 “금융에 잠재된 여러 위험은 금융회사 부실이나 불합리한 관행 등으로 드러나 금융 시스템의 불안과 금융 소비자의 피해를 불러온다”며 “공정한 금융질서를 확립하고 금융 소비자를 보호하는 금감원의 소임은 그 어떤 상황에도 흔들리면 안 된다”고 말했다. [비즈니스포스트 이규연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