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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한항공 사태의 교훈, 촛불이 '묻지마 경영권 승계'에 의문을 품다

이한재 기자 piekielny@businesspost.co.kr 2018-04-29 06:22: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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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현민 전 대한항공 전무의 갑횡포로 시작된 대한항공 오너일가의 비리 의혹이 대기업의 경영권 승계에 어떤 변화를 낳을까?

촛불정국 이후 사회적 기조가 변한 만큼 대기업 오너들이 자녀들에게 경영권을 승계하는 과정에서 후계자의 경영능력과 인성 등 정성적 역량을 더욱 꼼꼼히 따질 것으로 보인다.

◆ 땅콩회항보다 파장 더 큰 물컵 횡포

29일 재계에 따르면 조현민 전 전무의 갑횡포로 빚어진 이번 대한항공 오너일가 비리 의혹은 2014년 조현아 당시 대한항공 부사장의 이른바 ‘땅콩회항’ 때보다 더 큰 파장을 낳고 있다.
 
대한항공 사태의 교훈, 촛불이 '묻지마 경영권 승계'에 의문을 품다
조현아 전 한진칼네트워크 사장(왼쪽)과 조현민 전 대한항공 전무.

조양호 한진그룹 회장은 2014년 땅콩회항 사태 때 조현아 당시 대한항공 부사장을 경영일선에서 물러나게 하는 선에서 사태를 마무리했다.

조현아 전 부사장이 구속되고 조현민 당시 대한항공 전무가 조 전 부사장에게 ‘반드시 복수하겠다’는 문자를 보낸 사실이 알려지면서 도덕성 논란이 일었지만 대한항공 경영에 큰 타격을 입지는 않았다.

하지만 지금은 양상이 사뭇 다르다.

조현아 칼호텔네트워크 사장과 조현민 대한항공 전무가 경영에서 물러났지만 파문은 가라앉지 않고 있다.

파장은 오너 일가의 갑횡포 논란이나 3세경영의 자질 논란에서 그치는 것이 아니라 대한항공을 향한 정부 부처의 전방위적 압박으로 이어지고 있다.

관세청은 조 회장이 조현아 조현민 자매의 사퇴 내용을 담은 사과문을 발표한 다음날인 23일 조 회장 일가의 밀수 의혹과 관련해 대한항공 본사를 대상으로 추가 압수수색을 진행하는 등 수사를 더욱 강화했다.

24일에는 공정위가 대한항공 등 한진그룹 계열사의 일감 몰아주기와 관련한 현장조사를 진행한 사실이 알려졌고 25일에는 고용노동부가 대한항공의 노동환경 실태조사를 시작했다.

조양호 회장이 사퇴해야 이번 사태가 어느 정도 마무리 될 것이라는 시각도 있다.

◆ ‘정의’와 ‘공정’을 중시하는 사회적 분위기

이번 대한항공 사태는 촛불정국을 거치면서 달라진 사회적 분위기가 더 큰 영향을 미친다는 분석이 힘을 얻는다. 

이번 사태는 처음부터 지금까지 대한항공 직원과 대한항공 협력사 직원의 내부고발과 제보에 따라 영상, 녹취록 등이 공개되며 파장이 지속적으로 커졌다.

 
대한항공 사태의 교훈, 촛불이 '묻지마 경영권 승계'에 의문을 품다
▲ 2016년 12월 서울 광화문 광장 '박근혜 대통령 퇴진 촉구' 촛불집회 모습. <뉴시스>

조 회장 일가의 여러 일탈행위들은 관행처럼 여겨지며 오랜 세월 반복된 것으로 알려진 만큼 내부 직원들은 2014년에도 불합리를 인지했을 가능성이 크지만 당시에는 침묵했다.

그때와 달리 그동안 쌓여 왔던 부조리에 적극적으로 목소리를 내고 있는 셈인데 촛불혁명을 거치며 ‘정의’와 ‘공정’의 가치를 학습한 시민들의 경험이 큰 영향을 끼쳤다는 분석이 나온다.

정의와 공정을 중시하는 사회적 분위기는 대기업 오너들의 경영권 승계 방식에도 변화를 낳을 것으로 보인다.

그동안 오너 3세의 경영권 승계는 이른바 ‘묻지마 경영승계’로 불릴 만큼 초고속 승진을 통해 이뤄질 때가 종종 있었다.

하지만 사회적 감시망이 더욱 엄격해진 만큼 대기업 오너들은 앞으로 후계자의 경영능력과 함께 인성 등에 더욱 엄격한 잣대를 들이대며 승계 작업을 진행할 가능성이 크다.

문재인 정부 변화도 경영권 승계 변화에 영향줄 듯

문재인 정부가 이전 정부와 달리 기업의 사회적 책임을 강조하는 점도 오너들의 묻지마 승계를 더욱 어렵게 할 것으로 보인다.
 
대한항공 사태의 교훈, 촛불이 '묻지마 경영권 승계'에 의문을 품다
박능후 보건복지부 장관.

문재인 정부는 현재 기업의 투명성 등을 높이기 위해 국민연금의 스튜어드십코드 도입을 준비하고 있다.

스튜어드십코드는 위탁자금과 관련한 기관투자자의 책임을 명시한 지침으로 국민연금이 스튜어드십코드를 도입하면 주주권을 적극적으로 행사할 수 있는 근거를 얻게 된다.

국민연금은 삼성전자, 현대자동차, SK텔레콤, LG전자, 롯데쇼핑 등 국내 대기업의 주요 계열사 대부분의 지분을 5% 이상 보유하고 있어 주주권을 강화하면 대기업의 경영활동에 큰 영향을 미칠 수 있다.

박능후 보건복지부 장관은 27일 국민연금 기금운용위원회의에서 조 회장 일가의 일탈행위를 직접 예로 들며 “국민연금이 독립적 주주권 행사를 통해 이런 일의 재발을 막고 기금의 수익성을 높이는 것이 스튜어드십코드 도입의 의의”라고 설명했다.

대기업 오너들은 이번 대한항공 사태를 통해 오너 3세의 자질 논란이 기업 이미지에 타격을 주는 선을 넘어 정부 부처의 전방위적 압박으로 이어질 수 있다는 점을 직접 확인했다.

문재인 정부가 기업의 사회적 책임을 강조하는 상황에서 국민연금의 스튜어드십코드까지 도입되면 대기업의 묻지마 경영권 승계는 더욱 어려워질 수밖에 없는 셈이다.

손경식 한국경영자총협회장은 26일 기자간담회에서 조 회장 일가의 갑질 논란과 관련해 “이번 문제가 모든 기업의 문제라고 생각하지 않는다”며 “현재 대부분 기업은 사회적 책임을 다하는 방향으로 가고 있고 변화하는 국민 눈높이에 맞춰 기업활동을 하기 위해 노력하고 있다”고 말했다. [비즈니스포스트 이한재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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