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의 서버용 반도체 실적 성장에 기여하던 미국 주요 IT기업들의 데이터 서버 투자가 축소될 조짐을 보이고 있다.
페이스북 개인정보 유출 사태를 계기로 미국 정부의 IT기업 관련 규제가 강화될 가능성이 높아진 한편 IT기업들의 성장 속도도 크게 둔화하고 있기 때문이다.
월스트리트저널은 12일 "페이스북 사태를 계기로 미국에서 IT기업 규제 강화가 논의되고 있다"며 "페이스북과 같이 데이터에 사업모델을 의존하는 기업들이 영향을 받을 것"이라고 보도했다.
마크 저커버그 페이스북 CEO는 최근 발생한 대규모 개인정보 유출 사태로 최근 이틀 동안 미국 국회 청문회에 출석해 강도 높은 질타를 받았다.
국회에서 IT기업들의 정보 활용에 대한 강력한 규제가 필요하다는 목소리가 높아지자 저커버그 CEO는 "소수의 사례를 통해 시스템을 바꾸는 것은 바람직하지 않다"고 강하게 방어하기도 했다.
페이스북을 포함한 미국 상위 IT기업들이 대부분 사용자 정보를 광고와 서비스 판매 등에 활용하는 수익모델에 실적을 의존하고 있기 때문이다.
페이스북 사태 뒤 페이스북과 애플, 아마존, 넷플릭스, 구글 지주사 알파벳 등 이른바 'FAANG'으로 불리는 미국 주요 IT기업 주가는 급격한 하락세를 보였다.
황민성 삼성증권 연구원은 "최근 미국 IT기업들의 주가 급락은 정보 유출 사건에 따른 규제 리스크 때문"이라며 "데이터를 활용한 광고와 콘텐츠시장이 위축될 가능성이 있다"고 분석했다.
유종우 한국투자증권 연구원은 사회관계망 서비스와 동영상 콘텐츠 등 분야에서 소비자들의 데이터 소비량 증가율도 성장이 둔화되고 있다고 분석했다.
유 연구원은 "데이터 사용량 감소는 IT업체들의 가격 인하 경쟁으로 이어질 수 있고 설비 투자 능력에도 악영향을 줄 수 있다"며 "서버용 반도체 수요 감소의 원인이 될 수 있다"고 내다봤다.
미국 IT기업들의 공격적 데이터서버 투자는 지난해 D램과 낸드플래시 등 메모리반도체 호황을 주도한 가장 큰 동력이었다.
시장조사기관 CBRE에 따르면 미국 IT기업들의 데이터서버 투자 규모는 2016년 약 77억 달러에서 지난해 182억 달러로 급증했다. 서버용 D램 평균 가격은 지난해 연간 80% 가까이 급등했다.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 등은 메모리반도체 주요 수요처였던 PC와 스마트폰 수요가 위축되자 지난해 수익성이 높은 서버용 반도체 공급을 늘렸고 실적도 좋아졌다.
바로투자증권은 SK하이닉스의 서버용D램 매출 비중이 올해 전체 D램의 40%를 넘을 것으로 내다봤다. 영업이익에 기여하는 비중은 더욱 클 것으로 추정된다.
삼성전자도 서버용 D램과 SSD 공급을 늘리는 방향으로 생산라인을 전환해 서버용 반도체에 갈수록 실적을 크게 의존하고 있다.
하지만 IT기업들의 사업 전망이 불안해지며 데이터서버 투자도 줄이는 추세가 지속되면 메모리반도체시장의 성장을 낙관하기 어려워진다.
미국 정부에서 IT기업들을 겨냥한 규제가 계속 이어지고 있는 점도 불안요소로 꼽힌다.
▲ 박성욱 SK하이닉스 부회장(왼쪽)과 김기남 삼성전자 DS부문 대표이사 사장. |
트럼프 정부는 최근 망중립성 원칙을 폐지하며 IT기업들의 데이터 사용량을 제한할 수 있는 법적 근거를 마련했고 반독점법을 이유로 들어 아마존을 겨냥한 규제방안도 검토중인 것으로 알려졌다.
황 연구원은 "트럼프 정부 규제로 아마존의 수익성이 나빠져 데이터서버 등 인프라 투자를 줄일 수 있다"며 "서버용 SSD 등 일부 제품 주문량은 이미 예상보다 줄고 있다"고 내다봤다.
김경민 대신증권 연구원은 지난해 서버용 반도체 부족 가능성을 우려한 IT업체들이 적극적으로 재고 확보를 앞당겨 가격 상승을 주도했다고 분석했다.
IT기업들이 이미 충분한 반도체 재고를 확보하고 있어 사업 불확실성으로 데이터서버 투자계획을 축소하면 예상보다 업황이 빠르게 나빠질 수도 있다.
경제전문지 포브스는 "페이스북 사태는 모든 미국 IT기업 규제로 번져 업계 전체에 타격을 입히는 '썩은 사과'가 될 수 있다"며 "저커버그 CEO가 만들어낸 데이터 중심 생태계가 최대 위기를 맞았다"고 보도했다. [비즈니스포스트 김용원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