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원전 세일즈’도 새로운 돌파구가 될 수 있다. 김 사장에게 당장 급한 것은 '황금알을 낳는 거위'와 다름없는 사우디아라비아 원전 수주다.
▲ 김종갑 한국전력공사 사장.
11일 업계에 따르면 한전은 김 사장의 선임으로 수장 공백 리스크가 해소되면서 해외 원전 수주에 속도를 낼 것으로 여겨진다.
한전은 원전 수출사업을 총괄하고 있는데 넉 달 동안 사장이 공석이었다.
이 때문에 백원규 산업통상자원부 장관이 2~3월 사우디아라비아와 아랍에미리트(UAE)를 방문하는 등 고군분투 해왔지만 한전 사장 없이는 한계가 있다는 지적을 받아왔다.
탈원전을 선언한 정부가 원전 판매에 앞장서는 것을 상대국이 이해하기 어려울 수 있다는 것이다.
이제 사우디아라비아의 원전 사업자 입찰이 코앞으로 다가온 만큼 김 사장의 책임이 막중하다.
사우디아라비아는 현재 원전 수주전이 가장 뜨거운 곳이다. 2030년까지 1.4GW(기가바이트)의 원전 2기를 건설할 사업자를 올해 안으로 결정하는데 한국 말고도 미국과 중국, 프랑스, 러시아가 뛰어들었다.
사업 규모는 200억 달러(21조 원가량)에 이르며 4월까지 예비사업자를 3곳으로 압축해 발표하기로 했다. 이 1차 컷오프를 통과해야 입찰 자격이 주어진다.
이번 입찰은 전초전에 불과하다.
사우디아라비아는 2040년까지 원전 16기를 짓겠다는 계획을 세워두고 있다. 사업비가 105조 원에 이를 것으로 예상되는데 최초 원전 사업자로 선정되면 후속 수주전에서 유리한 고지를 차지하게 된다.
정부와 원자력업계는 한전이 예비사업자로 무난히 선정될 것으로 기대하고 있지만 변수도 만만치 않다.
사우디아라비아가 전통적으로 미국과 가까운 데다 현재 실권을 잡은 무하마드 빈 살만 왕세자는 미국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의 사위인 재러드 쿠슈너 백악관 수석고문과 각별한 사이로 알려졌기 때문이다. 쿠슈너 수석고문은 미국 정부의 에너지분야에 영향력이 높은 인물이기도 하다
영국의 무어사이드 원전 역시 한전이 우선협상대상자로 선정되긴 했지만 아직 안심하기는 이르다. 중국과 일본 등 경쟁국이 더 나은 조건을 제시할 수 있다.
두 사업 모두 조환익 전 사장의 퇴임 전후에 진행된 사안인 만큼 김 사장의 빠른 인수인계가 필요한 일이다.
발전업계의 한 관계자는 “정부 역할도 중요하지만 원전 건설국들은 한전과 한수원 등 원전을 실제로 건설할 기관 자체와 소통하며 평가하길 원한다”며 “김 사장이 최우선적으로 직접 챙겨야하는 사안”이라고 말했다.
하지만 국내 원전 가동률이 계속 낮으면 부정적 영향을 미칠 수 있다는 말도 나온다. 최근 원전 가동률이 급락했다는 점이 수주전에서 흠이 될 수 있다는 것이다.
한전은 원전 가동률이 낮아진 탓해 지난해 4분기에 영업손실 1294억 원을 내며 18분기 만에 적자를 보기도 했다. 올해 1분기 기준으로 원전 가동률은 58% 수준인데 원전 가동률이 낮아지면 한전은 단가가 비싼 석유나 액화천연가스(LNG)를 써야 하기 때문에 비용 부담이 커진다.
김 사장으로서는 에너지 전환정책을 따르면서도 원전 가동률 등과 관련해 정부와 소통도 강화해야 한다.
업계는 김 사장이 과거 산업부 미주통상과장으로서 미국과 수퍼 301조 협상을 주도하는 등 협상력을 높게 평가받는 인물인 만큼 원전 수출과 정부 의견 조율을 모두 이끄는 데 적합한 인물로 바라본다. 노무현 정부 시절 산업부 1차관을 지내기도 했다.
그동안 한전 사장은 산업부 출신 관료나 민간기업 경영인 출신이 맡아 왔는데 김 사장은 두 가지 경력을 모두 갖췄다는 점에서도 기대가 높다. 그는 하이닉스반도체(현 SK하이닉스)와 한국지멘스 사장을 연이어 지냈다.
한전 관계자는 “한전이 이미 확보한 세계 최고 수준의 원전 기술 경쟁력에 탈원전정책이 부정적 영향을 미칠 수 있다는 우려가 있긴 하다”면서도 “우리 주력 원자로인 APR1400은 제 3세대 원전 가운데 최초로 상업운전을 시작해 안전성을 인정받고 있는 만큼 수주전에서 충분한 경쟁력이 있다”고 말했다. [비즈니스포스트 고진영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