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정태영 현대카드 겸 현대캐피탈 대표이사 부회장. |
일장춘몽, 한단지몽, 백일몽.
일순간의 헛된 꿈을 나타내는 말은 이토록 많다.
정태영 현대카드 대표이사 부회장이 현대차그룹 금융계열사 수장으로서 독자적 입지를 구축한다는 것이 자칫하면 이 단어들로 표현될 상황에 놓였다.
29일 금융권에 따르면 현대차그룹은 순환출자고리를 해소하면서 지배회사체제로 가는 지배구조 개편안을 발표해 금융계열사의 독립구조는 사실상 사라졌다.
현대차그룹이 지주사체제를 선택했다면 금융과 산업의 분리원칙에 따라 현대캐피탈, 현대카드, 현대커머셜, 현대라이프생명 등 금융계열사는 산업자본인 현대차그룹의 지주회사로부터 독립해야 했다.
또 독립한 금융그룹의 수장으로
정태영 현대카드 겸 현대캐피탈 대표이사 부회장이 유력하게 점쳐졌다.
정 부회장은
정몽구 회장의 둘째 사위다. 현대캐피탈, 현대카드, 현대커머셜 등 3곳의 대표이사와 현대라이프생명 이사회 의장을 맡아 현대차그룹 금융계열사들을 이끌고 있다.
정 부회장은 부인 정명이 현대카드 및 현대캐피탈 브랜드부문장 겸 현대커머셜 커머셜부문장과 함께 현대커머셜 지분 50%를 지배하면서 현대차그룹에서 금융계열사의 대표자로 입지를 다지고 있었다.
여기에 생명보험사 현대라이프생명 운영에도 뛰어들어 현대기아차의 영향력에서 벗어나 순수 보험업으로 독자적 경영능력까지 입증해 보이려 했다.
하지만 현대차그룹은 지주회사가 아닌 지배회사체제를 선택하고 현대캐피탈을 비롯한 모든 계열사를 지배회사 밑으로 두기로 했다. 정 부회장이 금융그룹을 독자적으로 이끌어 나갈 기회는 사실상 없어진 셈이다.
그러나 정 부회장이 낙담에 빠졌다고 판단하기에는 이른 것으로 보인다.
정 부회장은 현대커머셜을 통해 현대카드와 현대캐피탈을 잘 이끌어 나가고 적자에 빠져있는 현대라이프생명을 살려내는 것으로 금융계열사의 진정한 전문경영인로서 실력을 발휘하려고 애쓸 것으로 보인다.
현대카드는 2017년 순이익 1538억 원을 거뒀다. 2016년보다 10.8% 줄어들었지만 신용카드업황이 좋지 않고 국내 카드회사 전체 순이익이 32.3% 감소한 것과 비교하면 실적이 나쁘진 않다.
3월에는 인공지능, 핀테크 등 청년 스타트업 창업펀드에 50억 원을 출자해 2017년부터 주력했던 디지털전환사업에 박차를 가하고 있다.
정 부회장은 ‘현대자동차 직원만 쓰는 카드’라는 얘기를 듣던 현대카드를 맡아 10년 만에 삼성카드와 2~3위를 다투는 카드회사로 키웠다는 평가도 나온다.
현대캐피탈은 순이익이 2015년 16.4%, 2016년 8.7%의 성장률을 보였다.
다만 현대라이프생명은 정 부회장에게 아픈 손가락이다. 정 부회장은 2012년 현대라이프생명이 출범한 뒤 2년 안으로 흑자 전환을 할 것이라고 자신했지만 사업을 시작한 지 5년 연속 적자를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
현대모비스가 현대라이프생명의 3천억 원 규모 유상증자에 참여하려다 포기해 현대라이프생명의 주인이 현대차그룹에서 대만 생명보험사 푸본생명으로 바뀔 상황에 놓여 있기도 하다.
반면 현대커머셜이 현대모비스 몫까지 유상증자에 참여할 가능성이 있다는 시각도 나오고 있다.
정 부회장이 현대차그룹과 좋은 시너지를 끌어 내면서 정정당당한 실력으로 '꿈을 이루어낸다'는 신화를 써낼지 지켜볼 일이다. [비즈니스포스트 김수연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