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이 항소심 재판에서 집행유예를 받고 석방됐지만 불편한 처지에 놓여 있다.
이건희 삼성전자 회장의 차명계좌 수사와 삼성전자의 다스 소송비용 대납 의혹 등으로 논란이 커지며 삼성그룹을 바라보는 곱지 않은 시선이 늘어나고 있기 때문이다.
이 부회장은 당분간 경영복귀를 서두르기보다 이 회장 시절의 삼성그룹과 '
이재용의 삼성'이 완전히 다르다는 점을 설득하기 위한 변화에 집중할 것으로 보인다.
경제분석지 마켓리얼리스트는 21일 "이 부회장은 약 1년의 수감기간을 마치자마자 수많은 당면과제를 떠안게 됐다"며 "삼성의 개혁을 이뤄내는 것이 그 중 하나"라고 보도했다.
마켓리얼리스트는 이 부회장이
박근혜 게이트 사태 이전부터 진행하던 삼성전자의 사업 효율화와 스마트폰사업 반등, 새 성장동력 확보 등 노력에 다시 속도를 내야 할 것이라고 파악했다.
이 부회장이 이를 위해 가능한 이른 시일에 삼성전자 경영 전면에 복귀해 강력한 리더십을 보여줘야 한다는 목소리도 높아지고 있다.
하지만 현실적으로 여론을 고려할 때 경영복귀를 서두르기 쉽지 않은 상황으로 보인다.
검찰이 진행하던
이건희 회장 차명계좌 수사에서 최근 새 계좌가 대거 발견되며 수사의 강도가 높아지고 있기 때문이다.
삼성전자가 2009년에 이 회장의 사면을 노려 이명박 전 대통령에 뇌물로 다스 소송비를 대납했다는 의혹이 커지고 있는 점도 삼성그룹을 향한 여론을 나쁘게 만들고 있다.
이번에 논란이 되는 사건들은 모두 이 부회장이 경영 전면에 본격적으로 나서기 이전에 벌어진 일이라 직접적 연관성을 찾기 어렵다.
하지만 삼성그룹 오너일가가 오래 전부터 비판을 받았던 부정부패와 정경유착 등 문제가 이를 계기로 재조명되며 이 부회장을 바라보는 사회적 여론에도 어느 정도 영향을 미칠 수밖에 없다.
이 부회장 재판결과를 둘러싼 논란도 갈수록 커지고 있다. 담당 판사의 해임을 요구하는 국민 청원이 쏟아지자 청와대가 이를 받아들이기 어렵다는 공식입장을 내놓았을 정도다.
이 부회장은 그동안 재판 과정에서 삼성그룹 경영에 참여하는 태도와 회사를 이끌어가는 목표가 이 회장 등 선대 오너일가와 다르다는 점을 재판부에 설득하기 위해 애썼다.
삼성그룹 경영권 승계에 외부 도움을 얻기보다 경영능력으로 국민들에 당당히 인정받겠다는 것이다.
2016년 말 국정조사 청문회에서 이 부회장은 직접적으로 "정경유착과 같은 구태를 모두 고치고 변화를 보여드리며 신뢰받을 수 있는 기업인이 되도록 노력하겠다"고 말했다.
이 회장 시절 삼성그룹에서 발생한 '흑역사'가 최근 물밀듯이 쏟아져나오며 이 부회장이 미래의 삼성은 완전히 다르다는 점을 증명하기 위해 힘써야 하는 이유가 훨씬 커진 셈이다.
▲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의 집무실이 있는 삼성전자 서초사옥. |
이 부회장은 삼성그룹 계열사 전반에 차례로 이런 변화를 보여주는 데 속도를 내고 있다.
오너일가의 지배력 유지 수단이라는 비판을 받던 삼성 미래전략실을 해체하고 삼성전자와 삼성물산, 삼성생명 등 주요 계열사에 총괄조직을 신설해 자율경영체제를 구축한 것이 대표적 사례다.
삼성전자 등 주요 계열사가 수평적 조직문화 정착을 추진하며 이사회 투명성 강화와 주주환원 강화 등 변화에 속도를 내고 있는 점도 과거의 삼성과 차이를 증명하기 위한 노력으로 해석된다.
이 부회장은 상고심 재판과 경영복귀에 앞서 삼성그룹 신뢰 회복을 위한 추가 조치를 내놓을 가능성이 높다. 삼성전자 반도체 직업병 문제와 지배구조 문제 해결이 최대 당면과제로 꼽힌다.
삼성전자 관계자는 "이 부회장의 경영복귀 시기를 현재 예측하기 어려운 상황"이라고 말했다. [비즈니스포스트 김용원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