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에서 세탁기와 태양광제품을 대상으로 포문을 연 세이프가드(수입제한) 등 보호무역 조치가 반도체로 확산될 가능성이 고개를 들고 있다.
미국과 중국 등 주요국가에서 최근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 등 한국 반도체기업의 시장지배력 강화에 대응해 강력한 견제를 검토하고 있다.
▲ 김기남 삼성전자 DS부문 사장(왼쪽)과 박성욱 SK하이닉스 부회장. |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가 보호무역주의 확산에 악영향을 받을 수 있다는 분석이 나오는가 하면 메모리반도체 수요의 증가를 고려할 때 가능성이 낮다는 반론도 자리잡고 있다.
30일 외신을 종합하면 미국과 중국에서 최근 강화되고 있는 보호무역주의 여파가 한국의 핵심 수출품목인 반도체까지 확산될 가능성이 떠오른다.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은 현지 제조산업에 피해를 주는 수입품과 미국기업의 지적재산권을 침해하는 행위에 강력히 대응하겠다며 무역제재조치의 강화를 예고하고 있다.
최근 삼성전자와 LG전자가 수출하는 세탁기에 높은 관세를 부과하는 세이프가드가 결정되며 위협이 현실화되고 있다. 트럼프 정부에서 사실상 한국을 겨냥한 무역제재가 이뤄진 것은 처음이다.
대한무역투자진흥공사(KOTRA)는 최근 보고서에서 미국의 무역제한이 가전제품과 태양광에 이어 철강과 자동차 등 한국의 주요 수출산업분야로 확산될 가능성도 높다고 내다봤다.
지난해 한국 무역수출액 역대 최대 비중을 기록한 반도체까지 불똥이 튈 수도 있다.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가 글로벌 메모리반도체 1 ,2위 기업으로 시장성장의 수혜를 독차지하고 있기 때문이다.
최근 미국에서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를 상대로 지적재산권 침해 여부를 조사해달라는 요청이 줄지어 나오는 것이 미국의 무역제한조치를 위한 사전작업이 아니냐는 분석도 나온다.
트럼프 대통령은 최근 로이터를 통해 “지적재산권 침해 행위에 대한 막대한 과징금을 준비하고 있다”며 “이른 시일 안에 확인할 수 있을 것”이라고 엄포를 놓았다.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는 넷리스트와 비트마이크로, 테세라 등 미국 3개 반도체기업의 기술특허를 침해했다는 혐의로 미국 국제무역위원회(ITC) 조사를 받고 있다.
삼성전자와 LG전자 세탁기 세이프가드 결정도 국제무역위의 조사 이후 이뤄졌던 만큼 한국산 반도체에도 최악의 경우 수입제한이나 과징금 조치가 내려질 수도 있다.
반도체 최대 수요국가인 중국에서도 통상압박이 현실화할 조짐이 나타나고 있다.
중국 규제당국은 최근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의 메모리반도체 공급가격 상승이 독점에 따른 불공정행위라고 의심해 조사에 나서며 인위적 가격 하락조치 등을 검토중인 것으로 알려졌다.
미국 CNN머니는 “반도체 최대 고객인 중국이 수입산 반도체에 관세를 부과할 가능성이 높아지고 있다”며 “미국이 보호무역조치를 앞세우며 중국도 대응을 강화할 것”이라는 전망도 내놓았다.
CNN머니는 중국이 인텔과 퀄컴 등 미국 반도체기업을 견제하기 위해 관세 부과를 결정할 수 있지만 잠재적으로 미국과 중국의 ‘무역전쟁’에 피해를 보는 기업이 늘어날 수 있다고 파악했다.
김경민 대신증권 연구원은 중국 정부가 SK하이닉스의 도시바 반도체 인수참여 승인을 계속 미루고 있는 것도 반도체사업에서 견제조치를 강화하는 노력의 일부라고 바라봤다.
김 연구원은 “미국 통상압박이 세탁기와 태양광에 이어 반도체로 확산될 가능성이 있다”면서도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는 영향을 충분히 방어할 수 있을 것”이라고 내다봤다.
▲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왼쪽)과 시진핑 중국 국가 주석. |
미국과 중국 제조사들이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를 제외하면 메모리반도체 공급처를 찾기 어렵고 관세인상으로 반도체 가격이 높아질 경우 타격도 현지업체들에 돌아갈 수 있기 때문이다.
김 연구원은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가 메모리반도체 공급가격에 대한 주도권을 쥐고 있어 통상압박이 반도체 업황악화로 이어지기는 어려울 것이라고 내다봤다.
하지만 트럼프 정부가 미국 소비자와 현지기업의 타격 가능성을 감수하고 세탁기 관세 부과를 결정한 만큼 이런 상황을 고려해도 반도체에 강력한 무역제재조치를 내릴 가능성은 남아있다.
중국 정부도 이전부터 현지기업과 산업에 미칠 영향보다 정부 차원의 목표를 앞세워 정책을 일방적으로 결정하는 경우가 많았던 만큼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가 안심하기 쉽지 않다.
김 연구원은 “미국과 중국의 통상압박은 현재진행형”이라며 “미국과 중국 정부가 반도체산업에서 특정 공급업체의 점유율 확대를 견제하고 있는 만큼 영향이 지속될 수 있다”고 내다봤다. [비즈니스포스트 김용원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