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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재용 권오준 황창규에게 박수를 보내는 이유

신현만 mannn@careercare.co.kr 2014-11-29 17:30:3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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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 삼성그룹이 한화그룹에 화학과 방위사업 분야의 4개 회사를 매각한 것은 근래 들어 가장 신선한 소식이었다.

한국경제에서 이같은 대규모 인수합병은 대개 기업이 지탱하기 어려울 정도의 심각한 위기에 처했을 때 진행됐다. 그것도 기업이 자발적으로 한 게 아니라 정부나 채권단이 압력을 가해서 어쩔 수 없이 진행한 측면이 있었다.

  이재용 권오준 황창규에게 박수를 보내는 이유  
▲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
그런데 이번은 달랐다. 삼성이 한화에 넘긴 기업 중 일부는 작년에 적자를 냈고 올해 경영실적도 썩 좋아보이지 않는다. 그러나 그렇다고 금방 무너질 위기에 처한 것은 아니다. 억지로 매각해야 할 이유가 없다.


이번 매각발표 뒤 마찰음이 적지 않은 것처럼 자칫 잘못 매각하면 회사와 경영자의 이미지만 나빠질 수 있다는 점도 예상할 수 있었을 것이다. 그런데도 삼성은 과감하게 매각을 결정했다.

이번 거래가 한화가 먼저 제안해 추진된 것으로 알려졌다. 한화가 삼성테크윈과 삼성탈레스의 인수를 제안하자 삼성이 삼성종합화학 등 석유화학 부문까지 가져갈 것을 요청해 거래가 성사된 것으로 보인다.

한화는 그동안 그룹의 모태사업인 방위사업을 키우고 싶어했다. 이를 위해 인수합병이 필요하다는 판단에 따라 여러 기업을 놓고 검토해 온 것으로 알려졌다. 한화의 방위사업은 탄약과 정밀유도무기 등 재래식 무기에 치우쳐 있다.

그런데 삼성테크윈은 영상보안장비와 가스터빈, K-9자주포, 항공기, 함정용 엔진, 레이더 같은 정밀기계와 방산전자제품을 생산하고 있다. 삼성탈레스는 구축함 전투지휘체계와 리이더 등의 군사장비를 만들고 있다. 둘 다 한화그룹이 하고 싶지만 하기가 어려운 사업이다.

삼성그룹은 최근 들어 소재와 전자와 금융과 서비스, 건설과 플랜트로 사업구조를 재정비하면서 주력사업에서 벗어난 기업들의 정리 필요성을 느끼고 있었다. 한화그룹으로부터 방산기업을 팔라는 요청이 들어오자 이왕이면 화학회사도 같이 인수하라고 제안한 것도 이런 배경 때문이다.

이번 인수합병이 특히 주목받는 것은 한국을 대표하는 두 대규모 기업집단이 자발적으로 사업구조를 재편하는 과정에서 이뤄진 대형 거래라는 점이다. 한국의 대기업들은 최근 사업구조를 다시 짜고 있다. 그동안 한국기업의 문제, 한국경제의 폐해로 지적돼 왔던 '선단식 경영'에서 자발적으로 벗어나려 한다.

한국의 대기업들은 그동안 규모의 차이만 있을 뿐 사업구조는 모두 비슷비슷했다. 각 그룹마다 한결같이 건설회사나 증권회사 SI회사 종합상사 광고회사 등을 계열사로 두고 있다. 이것은 그룹의 경영진들이 내수시장을 목표로 사업포트폴리오를 짰기 때문이다. 작은 내수시장에서 경쟁하는 과정에서 건설업이 잘 되면 건설회사를, 석유화학이 뜨면 석유화학회사를 만들었다.


그러다보니 재벌의 사업구조는 천편일률적이었다. 문어발식 확장에서 비롯된 선단식 경영은 한국기업의 경쟁력을 위태롭게 만들었다.

  이재용 권오준 황창규에게 박수를 보내는 이유  
▲ 권오준 포스코 회장
그런데 이제 사정이 바뀌었다. 국내시장의 개방이 확대되면서 기업들은 더 이상 국내시장만 바라보고 경영할 수 없게 됐다. 그런데 해외시장에 나가려 하니 글로벌기업과 경쟁이 쉽지 않다는 점이 금방 확인됐다. 그들과 대적하기에 한국기업들은 작아도 너무 작았다.

이렇게 국내시장 개방과 해외시장 진출은 한국 재벌 오너 경영자들의 생각을 바꾸어 놓았다. 선택과 집중이라는 경영원리를 받아들이게 만들었다. 잘 할 수 있는 분야에 집중해 규모를 키우고 역량을 강화해야 한다는 것을 체감하게 했다.


이번 삼성과 한화의 대규모 거래는 그런 점에서 한국의 대기업이 처해 있는 엄혹한 상황을 상징적으로 보여준다. ‘마음만 먹으면 못할 게 없다’고 생각하는 한국의 재벌들이지만 자신들이 글로벌시장에서 얼마나 초라한 존재인지, 그리고 이것을 극복하려면 어떻게 해야 하는지를 인정하고 받아들인 하나의 사건이다.

삼성과 한화의 거래가 이런 움직임의 첫 번째 사례는 아니다. 최근 들어 기업들이 선택과 집중 원칙을 실천하는 사례가 늘고 있다.

포스코와 KT는 최고경영자가 바뀌면서 철강과 통신이라는 본업에 집중하고 있다. 두 회사는 본업과 관련이 없거나 연관성이 약한 사업을 정리하고 있다. 포스코는 포스코특수강 매각을 추진하고 있고, KT는 시장 1위인 KT렌탈의 매각절차를 밟고 있다. 권오준 회장과 황창규 회장은 회장에 취임하면서 “본업 집중, 비주력사업 정리”를 외친 뒤 이를 실행하고 있다.


덕분에 한국의 재벌들도 자기 색깔을 갖추기 시작했다. 주력사업이 다르고 조직구조도 다르고 기업문화도 다르게 변해가고 있다. 주력사업 중심으로 기업의 모습을 바꾸고 있는 것이다. 그것도 자발적으로. 

이런 흐름은 앞으로 더욱 확산될 것으로 보인다. 인구증가가 멈추면서 한국의 내수시장은 이미 정체상태에 놓여 있다. 게다가 자유무역협정(FTA) 체결국가가 계속 늘면서 시장개방의 속도는 빨라지고 폭은 확대되고 있다. 국내시장만 보고 경영해서 답을 찾을 수 없게 됐다.

이제
  이재용 권오준 황창규에게 박수를 보내는 이유  
▲ 황창규 KT 회장
한국기업에게 길은 해외시장밖에 없다. 글로벌 경쟁에서 과거처럼 사방팔방으로 역량을 분산하면 승패는 불 보듯 뻔하다. 잘 할 수 있는 것을 선택한 뒤 역량을 전부 쏟아부어야 한다. 그래야 조금이라도 성공 가능성을 높일 수 있다.


이를 위해 아깝더라도 비주력사업, 연관성이 부족한 사업은 하루라도 빨리 정리하는 게 필요하다.

그러나 아무리 작은 것이라도 가지고 있는 것을 포기하는 것은 쉽지 않다. 삼성이 4개 계열사를 한화에 넘긴 뒤 생기는 후유증은 상당기간 삼성그룹의 수뇌부를 괴롭힐 가능성이 크다. 경우에 따라서 상처를 입을 수도 있다.


그런 점에서 나는 그런 어려움을 감수하면서 매각을 결정한 삼성의 경영진에게 박수를 보내고 싶다. 마찬가지로 주력사업에 집중하기 위해 '알짜 계열사'를 팔고 있는 포스코의 권오준 회장과 KT의 황창규 회장, 그리고 한국기업의 많은 경영자들에게 응원을 보낸다.

신현만은 한국 최대 헤드헌팅회사인 커리어케어의 회장으로 언론인이자 리더십 전문가다. 서울대를 졸업하고 한양대에서 석사학위를 받았다. 한겨레신문 기자로 활동했고 한겨레신문사 자회사 사장과 아시아경제신문사 대표이사 사장을 역임했다. <보스가 된다는 것> <능력보다 호감을 사라> <회사가 붙잡는 사람들의 1% 비밀> <이건희의 인재공장> 등 많은 베스트셀러의 저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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