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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하이트진로 김인규사장, 롯데그룹 신동빈 회장, 오비맥주 장인수 부회장 |
연말이다. 송년회 시기다. 주류업계의 대목이다.
주류업계는 올해 세월호 사건으로 피해를 봤다. 이 때문에 연말에 특수를 누려 부진을 만회하려고 총력전을 펴고 있다.
소주는 순해지고 맥주는 진해진다. 소주는 도수가 내려가고 맥주는 도수가 올라간다.
하이트진로는 최근 17.8도 참이슬을 내놓았다. ‘소주=20도’라는 공식이 8년 만에 깨졌다. 롯데주류, 맥키스, 한라산소주 등도 잇달아 낮은 도수의 소주 출시를 준비하고 있다.
오비맥주는 최근 5.2도인 100% 몰트맥주 '더 프리미어 OB'를 내놨다. 더 프리미어 OB는 하이트의 맥스(4.5도), 롯데 클라우드(5도)와 비교해 도수가 가장 높다.
왜 소주는 순해지고 맥주는 진해지는 것일까?
술 도수에 조금이라도 수익을 더 내고 생존을 도모하는 경제학이 숨어있다.
◆ 순한 소주전쟁, 누가 먼저 시작 했나
전국 소주시장은 대략 1조6천억 원 정도로 추산된다. 한국주류산업협회는 과열경쟁을 조장한다는 이유로 지난해 3월 이후 점유율 공개를 하지 않고 있다.
증권가에서 국내 소주시장 점유율을 하이트진로(참이슬) 45∼48%, 롯데주류(처음처럼) 17%, 무학(좋은데이) 14%, 금복주(참소주) 10%, 보해(잎새주) 4%로 파악한다. 하이트진로는 연말을 앞두고 순한 소주전쟁에 불을 지폈다.
하이트진로는 지난 25일 17.8도 참이슬을 내놓았다. 기존 18.5도에서 0.8도 내렸다. ‘대한민국이 즐기는 깨끗함’을 슬로건으로 내세웠다.
참이슬은 2006년 출시 당시 도수가 19.8도였다. 그 이듬해 19.5도로 낮아졌다. 5년 뒤 2012년에 19도, 올해 2월에 18.5도가 됐다. 그러다 불과 9개월 만에 17도 대에 진입했다.
낮은 도수의 소주로 바람을 일으킨 건 롯데주류의 처음처럼이다.
진로가 1998년 참이슬의 도수를 23도로 낮추자 그 다음해 롯데주류가 22도로 도수를 더 내린 처음처럼을 내놓았다.
처음처럼은 순한 소주임을 브랜드 특징으로 내세웠다. 처음처럼은 알칼리 환원수를 이용해 작은 물 입자로 목 넘김이 부드럽다는 점을 강조했다.
처음처럼의 등장으로 참이슬과 처음처럼은 도수 내리기 경쟁에 돌입했다.
처음처럼의 등장을 의식한 하이트진로는 2004년 참이슬 도수를 21도로 낮췄다. 롯데주류는 이에 질세라 2006년 20도, 2007년 19.5도 처음처럼을 선보였다. 2012년 하이트진로는 19도의 참이슬을 내놨다.
소주업계의 양강이 순한 소주 경쟁을 벌이자 지방기업 무학이 출사표를 던졌다. 최저도수를 들고 나왔다.
무학은 2006년 국내 최초로 17도 미만 소주 ‘좋은데이’를 출시했다. 당시 참이슬과 처음처럼이 19.8도, 20도로 경쟁할 때 무학은 16.9도 소주를 내놨다.
좋은데이는 2007년 판매량 1280만 병을 기록한 데 이어 2012년 3억3600만 병을 판매했다. 5년 만에 무려 26배 이상의 성장세를 기록했다.
이번에 참이슬이 내놓은 소주가 17.8도인 점을 감안하면 국내 최저도수 소주의 원조는 무학의 좋은데이인 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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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신동빈 롯데그룹 회장이 지난 8월 열린 '2014 롯데마케팅 포럼'에서 클라우드 맥주를 소개하고 있다. |
◆ 진한 맥주, 막 오른 3파전
맥주가 진해진다는 것은 무슨 의미일까?
국내기업이 내놓은 진한 맥주는 100% 몰트 맥주를 말한다.
몰트(Malt)는 싹튼 보리, 즉 맥아다. 100% 몰트 맥주는 맥아, 홉, 물 외에 다른 첨가물을 사용하지 않은 맥주다. 올몰트(All Malt) 맥주는 일반 맥주보다 진하고 구수한 맛이 난다.
국내 올몰트 맥주에 하이트진로의 맥스, 롯데주류의 클라우드, 오비맥주의 OB골든라거가 있다. 오비맥주는 이달 골든라거의 생산을 중단하고 더 프리미어 OB를 출시했다.
국내 올몰트 맥주는 2002년 하이트진로가 프라임을 출시하면서 시작됐다. 하이트진로는 2006년 업그레이드된 맥스를 출시했다. 2011년 오비맥주가 OB골든라거를 출시하면서 하이트진로와 오비맥주가 올몰트 맥주 시장을 양분했다.
롯데주류가 지난 4월 클라우드를 시장에 내놓으면서 올몰트 맥주시장에 지각변동이 시작됐다.
클라우드는 '신동빈 맥주'로까지 불리며 롯데그룹 차원의 전폭적 지원을 받았다. 신 회장은 최근 몇 년 동안 "맥주사업은 그룹의 숙원사업"이라며 "맥주사업에 반드시 진출하겠다"는 뜻을 밝혀왔다.
신 회장은 클라우드 최종 시음회에서 클라우드를 한 모금 들이킨 뒤 "좋다"라고 평가하며 최종 승인을 한 것으로 알려졌다.
클라우드는 출시 6개월 만에 6천만 병이 팔리며 돌풍을 일으켰다. 보통 국내 주류제품이 생산 이후 출고까지 10~15일 정도 걸리는 데 클라우드는 재고가 이틀치에 불과할 정도다.
하이트진로의 맥스는 올해 3분기까지 2억 병 이상이 판매됐다. 지난해 같은 기간보다 7.5%가 늘어 여전히 선두를 지켰다.
김인규 하이트진로 사장은 "맥주에 대한 국내 소비자들의 선호도가 점차 다양화, 고급화되고 있다"며 "품질 경쟁력에서 글로벌 브랜드를 이길 수 있는 맥주를 만들기 위해 노력할 것"이라고 말했다.
오비맥주는 지난해 올몰트맥주 시장에서 점유율은 16%를 차지했으나 올해 4월 롯데주류 클라우드가 출시된 이후 3%까지 추락했다.
오비맥주는 이달 OB골든라거의 생산을 중단하고 더 프리미어 OB를 출시했다. 오비맥주는 골든라거보다 3배 더 긴 숙성기간을 거쳐 만든 더 프리미어 OB를 통해 더욱 진한 맛으로 승부수를 띄웠다.
장인수 오비맥주 부회장은 더 프리미어 OB를 출시하며 “더 프리미어 OB는 오비맥주의 80년 양조기술력을 집약해 만든 프리미엄 맥주로 글로벌시장에 내놓아도 손색이 없다"며 "3년 안에 1천 만 상자를 돌파하겠다"고 포부를 밝혔다.
올몰트 맥주시장에서 하이트진로의 맥스가 압도적 점유율을 차지하고 있지만 앞으로 어떤 변화가 일어날지는 예측하기 어렵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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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오비맥주 장인수 부회장이 이달 11일 올몰트 맥주 '더 프리미어 OB'를 공개했다. |
◆ 순한 소주, 진한 맥주 전쟁은 왜 일어났나
소주업체들은 대개 연말에 순한 소주를 내놓는다.
하이트진로 관계자는 이번 17.8도 참이슬 출시에 대해 “지난 9∼10월 소비자 1740 명을 대상으로 소주 알코올 도수 저도화에 대한 인식조사에서 93.6%가 저도수를 원했고, 지난 8∼10월 소비자 1225 명이 소주 알코올 도수 변경에 대한 소비자 인식 조사에서 최적도수로 17.8도를 선택했다”고 말했다.
순한 소주가 인기인 이유로 도수가 낮아지면 더 많이 마시게 된다는 점과 웰빙 트렌드, 여성 음주자의 증가가 꼽힌다.
그러나 무엇보다 소주업체들이 낮은 도수의 소주를 출시하는 이유는 알코올 도수를 내릴 경우 원감절감 효과를 볼 수 있기 때문이다.
소주는 희석식 술이다. 알코올(주정)을 물에 희석해 만든다. 원가에서 주정이 차지하는 비중이 가장 크다. 소주업체들은 매년 매출의 20% 정도를 주정 구입에 쓴다.
도수를 낮추면 주정비용이 줄어든다. 일반적으로 도수가 1도 낮아지면 병당 10원의 원가절감효과가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특히 연말에 판매는 늘지만 원가는 줄어들기 때문에 소주업체가 낮은 도수 상품을 잇달아 내놓는다.
그렇다면 국내 맥주업체는 왜 진한 맥주 경쟁을 벌이는 것일까?
국내 올몰트 맥주시장의 규모는 2조 원이다. 전체 맥주시장에서 10% 정도를 차지한다. 하이트맥주의 맥스가 6~7%, 롯데주류 클라우드가 2%, 오비맥주 OB골든라거가 1% 정도다.
국내 올몰트 맥주시장이 그리 큰 규모가 아닌데도 맥주업체가 온 힘을 쏟는 이유는 소비자의 기호가 수입맥주의 영향으로 급격히 변했기 때문이다.
지난달 관세청 품목별 수출입 실적에 따르면 올해 3분기까지 맥주 수입량은 8만9397 톤, 수입액은 8412만 달러다. 지난해와 비교해 각각 18%, 19%가 증가했다.
거기다 최근 수입맥주의 공격적 판매로 소비자들은 대형마트와 편의점에서 국산맥주보다 더 싼 가격으로 수입맥주를 살 수 있게 됐다.
국내 소비자들의 입맛은 어느새 일본, 미국, 네덜란드 맥주에서 독일 맥주로 옮겨가고 있다.
일본 올몰트 맥주인 기린의 이치방시보리, 산토리의 더 프리미엄 몰츠가 인기몰이를 하다 최근 더 진한 맛을 특징으로 하는 에일맥주가 인기 맥주로 떠오르고 있다.
국내 대부분의 맥주는 라거 맥주다. 10도 이하의 낮은 온도에서 긴 시간 동안 발효시켰기 때문에 탄산의 시원한 청량감을 느끼게 한다.
에일맥주는 20도 내외에서 발효시킨 정통 유럽식 맥주로 도수가 높다. 풍부하고 진한 맛이 특징이다.
소비자들이 해외 올몰트 맥주, 나아가 더 진한 맛을 특징으로 하는 유럽 에일맥주를 접하면서 국내 맥주업체들은 생존을 위해 진한 맥주 개발을 서두를 수밖에 없었다.
국내 맥주업계 관계자는 “소비자들의 소비 패턴이 개인화하면서 회식의 소맥 문화도 언제까지 유지될지 불확실하다”며 “소맥에 적합한 국산 맥주가 외면받을지 모른다는 위기감을 갖고 있다”고 말했다.
수입 에일맥주 공격에 대응하기 위해 하이트맥주는 지난해 말 덴마크의 맥주연구소 알렉시아와 기술제휴를 통해 ‘퀸즈에일’을 내놨다. 오비맥주도 지난 4월 에일맥주 ‘에일스톤’을 출시했다. [비즈니스포스트 김수진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