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지만 이 부회장이 간접적으로 영향력을 행사할 수 있는 지분을 모두 따지면 이야기가 달라진다.
이 부회장은 삼성문화재단과 삼성생명공익재단 이사장에 올라있는데 이들은 삼성생명 지분을 각각 4.68%, 2.18% 보유하고 있다. 이 부회장이 최대주주인 삼성물산이 보유한 분을 합하면 20%를 훌쩍 넘겨 이 회장을 앞선다.
지난해 금융위원회는 금융회사의 지배구조에 관한 법률에 따라 제2금융권의 대주주 적격성 심사를 처음 실시했는데 이건희 회장을 심사대상으로 삼았다.
이 과정에서 이 회장이 경영활동을 하지 못하고 있고 이 부회장이 실질적 영향력을 행사하는 위치에 있는 만큼 이 부회장을 심사대상으로 삼아야 한다는 주장이 많았다.
하지만 금융감독원은 법률적 자문결과 이상이 없다며 이 회장을 상대로 심사를 진행해 금융회사 지배에 문제가 없다는 판단을 내렸다.
올해에는 이런 상황에 변화가 나타날 수 있다.
금융위가 금융회사 지배구조에 관한 법률 개정 움직임을 나타내고 있기 때문이다. 지배구조가 분명치 않은 금융지주회사 등의 지배구조를 개선하려는 것인데 모호한 대주주 자격도 현실적 지배력을 고려해 명확히 규정하게 될 것이라는 관측이 많다.
현행법은 대주주 자격심사 대상을 금융회사의 최대주주 중 최다출자자 1인으로 규정하고 있다. 최대주주가 법인인 경우 최다출자자 1인이 개인이 될 때까지 거슬러 올라간다. 최대주주가 법인 사이 순환출자를 구성하는 경우 이 순환출자가 속한 기업집단의 동일인이 자격심사 대상이 된다.
이처럼 현행법에서 대주주를 확정하기 어려운 경우 동일인의 지배력을 인정하고 있다는 점에서 공정거래위원회의 동일인 제도 변경 시도도 주목받는다. 금융회사 지배구조법 개정의 가늠자가 될 수 있기 때문이다.
지난해 국감 등에서 이건희 회장과 신격호 롯데그룹 총괄회장 등의 동일인 지정이 적절치 않다는 지적이 나옴에 따라 공정위는 현실에 맞도록 동일인을 지정하는 방향으로 제도를 개선하기로 했다.
이에 따라 올해 5월 상호출자제단기업집단을 새로 지정할 때 삼성그룹 동일인으로 이건희 회장이 아닌 이재용 부회장이 지목될 가능성이 큰 것으로 여겨진다.
여기에 금융위는 대기업집단 금융계열사를 통합해 관리하는 금융그룹 통합감독 시스템도 새로이 마련한다. 금융회사 지배구조법이 어떤 방향으로 개정될지 속단하기는 이르지만 이런 점들을 고려할 때 삼성그룹의 실질적 총수인 이 부회장이 대주주 적격성 심사 대상에 오를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다.
삼성그룹 입장에서 이는 부담일 수 있다. 그러나 한편으로는 대주주 적격성 심사대상이 바뀌는 편이 나을 수 있다는 의견도 있다. 지난해 이건희 회장의 해외 차명계좌가 드러나면서 대주주 적격성에 위배된다는 지적이 나왔기 때문이다.
박찬대 더불어민주당 의원은 11월27일 국회 정무위 전체회의에서 “이 회장이 조세범처벌법과 외국환거래법을 위반해 지배구조법상 삼성생명 최대주주 적격성 유지 요건을 충족하지 못하게 됐다”고 지적했다. 이에 최종구 금융위원장은 “그럴 가능성이 있다”고 인정했다.
현행법은 조세범처벌법, 공정거래법, 지배구조법, 금융관계법령을 위반해 금고 1년 이상 실형을 받은 경우에 최대 5년 동안 10% 이상의 의결권을 제한하고 있다.
이재용 부회장은 국정농단에 연루돼 재판을 받고 있기는 하지만 유죄가 확정된다 해도 대주주 적격성에 위배되지는 않는다. 뇌물공여와 특정경제범죄가중처벌법 등 이 부회장에게 적용된 혐의는 금융회사 지배구조법상 의결권이 제한되는 위법사항이 아니기 때문이다.
물론 금융회사 지배구조법 개정이 이뤄진다면 특경가법이 대주주 적격성 심사 조건에 포함될 가능성도 없지 않다. 19대 국회에서 법안이 만들어질 때도 특경가법 포함이 논의됐으나 지나친 규제라는 반대의견이 많아 최종적으로 제외됐다.
이 부회장은 1심에서 특경가법에 유죄판결을 받았다. 만약 심사 조건이 강화되는 방향으로 법 개정이 이뤄지면 금융계열사 지배력에 지장이 생길 수 있다.
이미 이 부회장의 대주주 적격성은 삼성 금융계열사에 부담으로 작용한다.
삼성증권은 초대형 투자은행(IB) 사업을 추진하고 있는데 금융위원회로부터 발행어음 사업 인가심사가 보류되고 있다. 금융위는 이 부회장을 삼성증권 대주주로 판단하고 재판 결과를 기다리고 있다. [비즈니스포스트 김디모데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