삼성전자는 지난해 그룹 차원의 컨트롤타워 부재와 리더십 공백 등에도 불구하고 역대 최대 실적을 내며 급성장했다. 주가도 가파른 상승세를 보여 삼성그룹 안팎에서 나오던 ‘위기설’을 잠재웠다.
하지만 올해는 메모리반도체 호황이라는 외부 변수가 힘을 잃어 그동안 가려졌던 위기요인들이 수면 위에 본격적으로 떠오를 수도 있다.
▲ (왼쪽부터)김기남 삼성전자 DS부문 사장, 김현석 CE부문 사장, 고동진 IM부문 사장. |
이승우 유진투자증권 연구원은 3일 “삼성전자는 2018년에 메모리반도체 고객사의 가격부담과 반도체 업황의 악화 가능성, 불리한 환율효과 등으로 실적에 부담요소를 안고 있다”고 파악했다.
지난해와 같은 실적 성장과 주가 상승을 올해도 이어가기는 사실상 어렵다는 의미로 해석된다.
삼성전자는 메모리반도체 가격 상승과 수요 증가에 힘입어 지난해 약 270%의 연간 영업이익 성장률을 달성한 것으로 추정된다. 주가는 연초부터 연말까지 42% 정도 올랐다.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이 연초부터 박근혜 게이트에 휘말려 구속수감되고 그룹 컨트롤타워인 미래전략실도 해체되는 험난한 상황에서 이뤄낸 성과였다.
하지만 지난해 빚어진 위기상황의 여파가 올해부터 삼성전자에 본격적으로 부정적 영향을 줄 것이라는 관측이 유력해지고 있다. 반도체 호황기가 힘을 잃어가고 있는 것이 최대 원인으로 꼽힌다.
유종우 한국투자증권 연구원은 “메모리반도체기업들의 D램 생산증가로 공급과잉이 가까워지고 낸드플래시 수요도 약세를 보이고 있다”며 “올해 반도체 가격 하락세가 이어질 것”이라고 내다봤다.
삼성전자는 지난해 스마트폰과 TV, 생활가전 등 완제품에서 증권가 기대에 다소 못 미치는 성적표를 냈지만 반도체 호황에 따른 실적 급성장이 만회해 약점을 가렸다.
그러나 반도체업황의 둔화로 그동안 삼성전자가 우려했던 위기상황이 닥칠 가능성이 높아진 셈이다.
윤부근 삼성전자 부회장은 지난해 기자간담회에서 삼성전자와 삼성그룹 계열사들을 ‘선장을 잃은 배’에 비유했다.
권오현 회장도 ‘사상 초유의 위기’라는 표현을 사용하며 불안한 전망을 내놓았다.
기업의 리스크 대응과 이를 극복할 사업전략 수립에 가장 중요하게 꼽히는 강력한 리더십이 삼성전자에서 이 부회장의 구속과 미래전략실 해체 뒤 사실상 공백상태기 때문이다.
삼성전자는 반도체사업에서 미국과 중국 등 정부 차원의 압박과 경쟁심화에 직면하고 있다. 대외협력을 더 강화하거나 과거와 같이 대규모 선제투자에 나서는 등 변화가 절실하다.
스마트폰과 TV 등 완제품분야에서도 경쟁력을 빠르게 높여가는 중국업체들의 물량공세가 만만찮다. 변화하는 시장상황에 맞춰 공격적 전략 실행이 필요하다는 지적이 높아지고 있다.
삼성전자가 반도체업황 등 외부 변수에 의존하기보다 스스로 성장기회를 만들어나가야 하지만 ‘큰 그림’을 그리고 진두지휘할 권한을 갖춘 주체는 뚜렷하지 않다.
올해 3월 주주총회에서
김기남 DS부문 사장 등 새 대표이사 내정자들이 본격적으로 경영 전면에 나서면 당분간 적응기간이 필요해 위기가 더 커질 수 있다는 관측도 나온다.
삼성전자의 IT분야 최대 경쟁업체인 애플의 경우 미국 법인세 인하의 혜택으로 투자를 벌일 여력이 커지며 올해 넷플릭스나 디즈니 등 거대 콘텐츠기업 인수를 노릴 수도 있다.
삼성전자도 지난해 실적 급증으로 인수합병과 투자를 추진할 여력은 커졌지만 단기간에 주요 의사결정의 중심점을 잡고 대규모 사업을 추진하기는 어려운 상황에 처해있다.
경제전문지 포천은 이 부회장의 구속을 2017년 세계 경제 10대 사건으로 꼽으며 “삼성전자의 단기적 사업의 전망은 양호하지만 중장기적으로 보면 흔들리는 땅 위에 놓여있는 셈”이라고 분석했다.
지난해부터 이어진 리더십 공백의 여파는 아직 연말인사도 실시하지 못한 삼성물산 등 주요 계열사까지 번지고 있다. 삼성전자와 삼성그룹이 한국경제 성장에 기여하는 규모를 볼 때 삼성의 위기가 올해는 한국 경제 전반으로 확산될 수 있다는 전망도 나온다.
삼성그룹 계열사의 한 관계자는 “투자나 인수합병 등 변화를 추진하기 사실상 어려운 상황”이라며 “어느 정도 악영향이 있을지 판단하기 어렵지만 그만큼 불확실성도 크다는 것”이라고 말했다. [비즈니스포스트 김용원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