카허 카젬 한국GM 사장이 사면초가의 위기에서 돌파구를 찾고 있다.
한국GM은 판매부진에 노사갈등, 철수설이 겹쳐 ‘삼중고’를 겪고 있는데 구원투수로 등판한 카젬 사장도 마땅한 반전카드를 찾는 데 고전하고 있다.
29일 업계에 따르면 한국GM은 판매실적이 연일 하향곡선을 그리면서 쌍용차로부터 국내판매 3위를 버겁게 지키고 있다.
11월까지 한국GM의 누적 내수판매량은 지난해 같은 기간보다 25.6% 줄었다. 국내 완성차회사 가운데 가장 하락폭이 크다.
지난해까지 3년간 누적적자도 2조 원에 이른다. 계속되는 판매부진을 감안하면 내년 역시 적자행진은 예고된 수순이라고 할 수 있다.
카젬 사장으로서는 회사가 가장 힘든 시기에 수장에 오른 셈이다. 그는 취임 첫 달부터 최악의 판매실적을 받아들었다. 올해 9월 내수판매량이 8991대에 그쳤는데 9천 대도 팔지 못한 것은 2012년 1월 이후 6년 만이다.
노조와 꼬인 관계도 좀처럼 풀릴 기미가 안보인다. 한국GM 노조는 내년 1월2일부터 1월5일까지 나흘 동안 모든 공장에서 총파업을 하겠다는 일정을 잡아놓고 있다.
임금협상이 해를 넘어서는 것은 15년 전 제너럴모터스(GM)가 옛 대우자동차를 인수한 뒤 처음 있는 일이다.
카젬 사장은 취임 전부터 직접 노조를 찾아가 만나는 등 의욕을 보였지만 최근 들어 노조와 파열음은 커지고 있다. 노조는 21일 본교섭에서 카젬 사장이 일정을 이유로 회의를 한 시간 안에 마칠 것을 요구했다며 불성실한 태도라고 비판하기도 했다.
한국GM 관계자는 “보통 노사교섭에 매번 대표가 가는 것은 아닌데 카젬 사장은 부임 이후 단 한 차례도 교섭에 빠지지 않고 성실히 임하고 있다”며 “성의없다는 비판은 말도 안된다”고 반박했다.
노조와 골이 깊어지면서 철수설도 다시 불붙고 있다. 올해 내내 이어진 철수설은 한국GM이 국내판매에서 힘을 쓰지 못한 이유로도 꼽힌다.
카젬 사장은 전임자인
김제임스 전 사장이 경영환경 악화와 철수설 등 온갖 악재가 겹친 상황에서 돌연 물러난 뒤로 올해 9월 한국GM 사장에 부임했다.
갑작스런 CEO 공백 리스크는 해소할 수 있게 됐지만 시작부터 카젬 사장을 향한 불신도 높았다. 카젬 사장이 GM에서 호주와 태국, 우즈베키스탄, 인도법인을 거치며 사업장 축소와 철수 등 구조조정을 주도했던 이력 때문이다.
GM은 최근 장사가 안되는 사업장을 잇달아 접고 미국과 중국에 집중하고 있다. 카젬 사장의 바로 직전 부임지인 GM 인도법인의 경우 올해 상반기에 판매를 중단했다.
카젬 사장이 한국GM의 위기 해결에 적합한 경험을 갖췄다는 반론도 만만찮다. 생산과 사업관리분야 베테랑이기 때문이다.
그는 1995년 GM호주에 입사해 생산부문에서 여러 요직을 거쳤고 GM태국 등 아세안 지역에서도 생산 및 품질 부사장을 역임했다.
카젬 사장이 여러 법인의 실패를 지켜본 경험을 한국GM에서 긍정적으로 활용할 수 있을 것이라는 기대도 있다. 카젬 사장으로서도 또 다른 사업장의 문을 닫았다는 이력을 쌓기는 달갑지 않을 것이다.
카젬 사장은 한국GM 철수설과 관련해 그렇다, 아니다 확답을 피하고 있다. 한국GM을 둘러싼 불확실성 탓으로 해석된다. 다만 그는 11월 말 기자들과 만나 “철수설을 불식하려면 흑자전환을 통해 지속가능한 미래를 확보하는 게 중요하다”는 원론적인 말만 했다.
한국GM 관계자는 “철수 여부는 본사의 영역인 만큼 카젬 사장으로서는 책임질 수 있는 답변만 한 것”이라며 “공식적 발표는 하지 않았지만 카젬 사장은 수년 내 흑자전환를 목표로 비용절감과 매출상승을 위해 노력하고 있다”고 말했다.
이 관계자는 “GM에서 한국법인은 소형차 생산기지로서 워낙 중요한 곳이라 철수 가능성이 낮다”고도 덧붙였다.
카젬 사장은 시장의 관심을 되찾고 철수설을 잠재우기 위해서라도 내년 상반기에 어떻게 해서든 중형 SUV 에퀴녹스를 출시하겠다는 계획을 세워놓고 있다.
그러나 노조가 에퀴녹스를 수입하지 말고 국내에서 생산해야 한다고 주장하고 있어 출시에 차질을 빚을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
업계의 한 관계자는 “아직 철수를 점치기는 이르지만 한국GM은 본사 입장에서 예전만큼 매력적 생산기지가 아니다”며 “카젬 사장이 일단 노조와 합의점부터 찾고 경영 정상화를 위한 수를 내지 않으면 또 구조조정 임무를 떠안게 될 수도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비즈니스포스트 고진영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