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부분 그룹에서 부회장 자리가 한 손에 꼽히는 만큼 부회장에 오른다는 점은 전문경영인으로서 대단한 영예다.
삼성그룹의 경우 사장단 규모만 60여 명에 이르는데 부회장은 오너인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을 비롯해 단 3명뿐이다.
그러나 부회장은 전문경영인으로 마지막 자리인 경우가 많다. 승진의 끝인 만큼 더 이상 오를 곳이 없다. 경영일선에 물러나면서 예우 차원에서 부회장으로 승진하는 경우도 많다.
조심스러운 자리이기도 하다. 눈에 잘 띄기 때문에 작은 일로 자리에서 물러날 수도 있다. 정몽구 현대차그룹 회장의 경우 2인자를 쉽게 두지 않아 부회장을 여러 명 두기도 한다.
최근 들어 부회장의 역할과 위상이 과거와 달라지는 그룹도 있다. 삼성그룹과 롯데그룹이 대표적이다.
두 그룹 모두 과거 부회장은 그룹의 2인자, 회장의 오른팔, 가신이라는 느낌이 강했지만 최근 들어 달라지고 있다.
최근 삼성전자에서 윤부근 부회장과 신종균 부회장이 사업부문장과 대표이사 등 주요 보직을 내려놓고 경영일선에서 물러나면서 부회장으로 승진했다.
윤 부회장은 CR담당으로 외부와 소통을 담당하며 신 부회장은 인재양성을 담당한다.
두 사람 모두 각자의 영역에서 두드러지는 사업적 성과를 낸 엔지니어 출신으로 흔히 떠올리는 2인자의 이미지와 거리가 멀다.
롯데그룹에서도 올해 2월 이인원 전 부회장 이후 공백이었던 부회장 자리에 3명이 한꺼번에 올랐다.
내년 1월 예정된 롯데그룹 임원인사에서 최대 3명의 부회장이 새로 탄생할 수도 있다. 이렇게 되면 롯데그룹은 국내 주요그룹 가운데 현대차그룹에 이어 두번째로 많은 전문경영인 출신 부회장을 거느리게 된다.
과거 삼성그룹과 롯데그룹은 각각 이건희 회장과 신격호 명예회장 등 총수에 집중된 경영체제로 움직여 왔기에 회장을 보좌하는 참모형 부회장들의 역할이 중요했다.
최지성 전 삼성그룹 부회장과 이인원 전 롯데그룹 부회장이 대표적이다. 이들은 회장 비서실을 거치면서 회장을 지근거리에서 보좌했으며 그룹의 컨트롤타워 역할을 하는 중추적 조직을 이끌었다는 공통점이 있다.
최지성 전 부회장은 삼성그룹 미래전략실을 이끌었으며 이인원 전 부회장도 롯데그룹 정책본부를 이끌었다. 공교롭게도 두 조직 모두 지금은 해체됐다.
최지성 전 부회장 이전 삼성그룹에 이학수 전 부회장도 있었다. 이학수 전 부회장은 이건희 회장의 비서실장과 전략기획실장을 지내며 이건희 회장의 오른팔이자 그룹 실세로 자리잡았다. 이 전 부회장은 특히 2008년 삼성 비자금 수사 때 특검에 모든 죄를 인정하면서 이건희 회장의 방패막이 역할을 톡톡히 하기도 했다.
이인원 전 부회장의 경우 당시 롯데그룹에서 오너일가를 제외한 유일한 부회장이었다.
◆ 전문가집단 현대차그룹, 신상필벌 확실한 LG그룹
현대차그룹과 LG그룹의 경우 전문가집단으로 부회장단이 구성됐다.
현대차그룹 부회장은 모두 9명인데 정몽구 현대차그룹 회장의 사위인 정태영 현대카드 부회장과 아들인 정의선 현대차 부회장을 제외한 7명이 전문경영인 출신이다.
▲ 김용환(왼쪽) 현대차 부회장과 윤여철 현대차 부회장.
현대차그룹에서 김용환 현대차 부회장만 참모형 부회장으로 분류될 뿐 나머지 부회장들은 모두 각자의 영역에서 전문성을 갖추고 있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
윤여철 부회장은 경력 대부분을 노무 관련 부서에서 쌓은 노무 전문가이며 김해진 부회장, 양웅철 부회장, 권문식 부회장은 모두 기계공학을 전공한 연구개발 전문가다.
현대차그룹은 부회장 대부분이 오랜 기간 자리를 지키고 있다. 윤여철 부회장은 중간에 잠깐 물러나기는 했으나 2008년 처음 부회장 자리에 올랐으며 이형근 부회장은 2010년 부회장으로 승진해 지금까지 자리를 지키고 있다.
정몽구 현대차그룹 회장이 부회장들에게 전폭적 신뢰를 주고 있어 부회장들이 장수하고 있는 것으로 풀이된다.
LG그룹은 신상필벌 기조가 뚜렷하다. LG그룹 부회장단은 7명으로 이뤄졌는데 각 분야에서 오랜 기간 경험을 쌓고 실적이 뚜렷한 전문가들로 구성됐다.
오너일가인 구본준 LG 부회장을 비롯해 박진수 LG화학 부회장, 차석용 LG생활건강 부회장, 한상범 LG디스플레이 부회장, 조성진 LG전자 부회장, 권영수 LG유플러스 부회장, 하현회 LG 부회장 등이다. 이 가운데 나이가 가장 많은 구 부회장이 만 66세이며 가장 적은 권 부회장이 만 60세다. [비즈니스포스트 조은아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