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싱귤러리티(특이점)’를 만들어 중국회사, 남들이 못하는 걸 더 철저하게 해야 한다.”
서경배 아모레퍼시픽그룹 회장이 최근 한 특강에서 사드보복으로 위기를 맞는 상황과 관련해 이렇게 말했다.
서 회장은 사드보복을 계기로 외부요인에 크게 흔들리는 사업체질을 바꾸기 위해 인내의 시간을 보내고 있다.
18일 업계에 따르면 아모레퍼시픽그룹은 한중관계 해빙무드로 수혜가 예상되지만 정상화까지는 갈 길이 멀어 보인다.
이승욱 한화투자증권 연구원은 “아모레퍼시픽은 중국 현지에서도 글로벌 브랜드와 경쟁이 점차 심해질 것”이라며 “시장 다변화를 위해 미국과 유럽 등에 투자를 확대하고 있으나 2019년 이후가 돼야 기대할 수 있어 단기적 모멘텀이 마땅치 않다”고 바라봤다.
아모레퍼시픽그룹은 4분기째 내리 영업이익이 줄어들면서 위상이 크게 약해졌다. 2분기 연결기준 영업이익이 지난해 같은 기간과 비교해 60%나 쪼그라들었는데 3분기 역시 40%가 감소했다. 4분기에도 두자릿수 후퇴가 불가피해 보인다.
더욱이 경쟁사인 LG생활건강이 3분기에 사상 최대 분기실적이라는 성과를 내면서
서경배 회장은 더 체면을 구겼다.
이런 차이가
차석용 부회장이 LG생활건강에 구축한 안정적 사업포트폴리오 덕분이라는 말이 나오는 만큼 업계에서는 위기에 직면한
서경배 회장의 행보에 관심이 더욱 집중되고 있다.
서 회장은 IMF 외환위기를 이겨낸 대표적 오너경영인으로 꼽히는데 또 다른 도전에 부딪힌 셈이다.
그는 1997년 35세의 젊은 나이에 아모레퍼시픽의 전신인 태평양 대표에 올랐다. 그 뒤 ‘문어발식’ 경영을 버리고 뷰티사업 중심으로 구조조정을 하면서 20년 동안 매출을 10배, 영업이익은 21배로 키워냈다.
서 회장은 올해 초 취임 20주년을 맞아 “아모레퍼시픽은 1945년 창업했지만 20년 전 다시 태어난 것과 다름없다”며 “당시 위기극복을 위한 부단한 노력을 통해 지금의 아모레퍼시픽으로 도약할 수 있었다”고 말하기도 했다.
서 회장은 다시 한번 전열을 가다듬고 있다.
최근 내년으로 예정돼있던 인사를 앞당겨 진행하면서 실적이 부진했던 아모레퍼시픽과 아모레퍼시픽 미국법인, 이니스프리의 사령탑을 모두 교체했다.
동시에 내년 초부터 본격 시행할 개혁안도 제시했다. 구체적으로 보면 혁신상품 개발과 브랜드 차별화, 이커머스 등 신규채널 확보를 통한 내수기반 확대, 미국시장과 신흥시장 진출을 통한 글로벌사업 가속화를 뼈대로 한다.
‘중국인관광객 모시기’에서 힘을 빼고 상품 강화와 유통채널 확대, 해외시척 개척에 집중하겠다는 것이다.
11일에는 기존 사옥이 있던 중구 청계천에서 용산 신사옥으로 이주도 마쳤다.
서 회장은 “세 번째 용산시대를 열었다”며 신사옥을 '원대한 기업' 비전 달성을 위한 구심점으로 삼겠다고 밝혔다.
용산은 서 회장에게 각별한 곳이다. 아버지인
서성환 회장은 1945년 개성에서 창업했지만 1956년 용산에 사업의 기틀을 세웠다. 1976년에는 용산에 10층 규모 신관을 지어 본격적으로 사업을 확대했다.
서경배 회장은 제품 혁신을 위한 연구개발 투자 역시 대폭 늘렸다. 아모레퍼시픽그룹은 2020년까지 경기도 용인시에 ‘뷰티산업단지’를 준공한다. 부지조성과 기반시설 비용 등으로 1630억 원이 들어갔으며 건립 시 수천억 원이 추가로 투자된다.
서 회장은 “혁신을 위해서는 변화를 일으킬 때까지 인내해야 한다”며 “아모레퍼시픽의 대표적 혁신제품인 쿠션제품도 우연한 아이디어로 시작해 수년 동안 시간이 필요했다”고 말했다. [비즈니스포스트 고진영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