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방시혁 빅히트엔터테인먼트 대표와 방탄소년단. |
방시혁 빅히트엔터테인먼트 대표가 방탄소년단을 앞세워 아시아 가수들에게 철옹성처럼 여겨졌던 미국시장을 뚫어냈다.
방 대표조차도 6년 전 미국에서 한국 아이돌그룹의 성공 가능성을 놓고 “미국은 잘 모르겠다”며 자신감을 유보하기도 했으나 마침내 그 벽을 넘어섰다.
방탄소년단의 팬덤 ‘아미(ARMY)’는 7일 기준 트위터 계정 팔로워만 214만3130명에 이른다. 미국을 포함한 전 세계적 성공 없이는 상상하기 힘든 숫자다.
방탄소년단은 최근 ABC ‘지미 키멜 라이브’, CBS ‘제임스 코든의 더 레이트레이트 쇼’, NBC ‘엘렌 드제너러스 쇼’ 등 미국 3대 방송사의 유명 토크쇼를 모두 섭렵했다.
미국 피플은 11일 배포될 특별호에서 방탄소년단을 ‘세계에서 가장 인기있는 보이그룹(World’s Hottest Boy Band)’이라고 소개했다.
방탄소년단의 신곡 ‘마이크드롭(MIC DROP)’ 리믹스버전은 4일 미국 빌보드 메인차트 ‘핫 100’에서 28위에 올랐다. 케이팝그룹 역사상 최초의 40위권 진입이다.
방탄소년단은 11월 ‘아메리칸 뮤직어워드(AMAs)’에서도 아시아 가수로는 유일하게 초청돼 공연을 펼쳤다. AMAs는 그래미 어워드, 빌보드뮤직 어워드와 함께 꼽히는 미국 3대 음악시상식이다.
미국의 세계적 인기듀오 체인스모커스는 이날 방탄소년단을 무대로 부르며 “이들을 세계적 슈퍼스타라고 부르는 것조차 부족하게(understatement) 느껴진다”고 말하기도 했다.
미국 음악시장은 한국의 18배에 이른다. 모든 제작자가 꿈꾸는 세계 최고규모의 시장이지만 아시아 가수가 그만큼 진입하기도 힘들어 ‘그림의 떡’으로 여겨지기도 한다.
할리우드에서 동양인은 주류에서 한참 벗어나 있다. ‘화이트워싱(whitewashing, 다 백인화시킨다는 뜻)’으로 불리는 인종차별 문제가 흑인을 중심으로 제기되면서 경각심이 일어나고는 있지만 동양인은 여전히 논의에서 한발 비껴가 있다.
싸이의 ‘강남스타일’도 이른바 원 히트 원더(one-hit wonder), 반짝인기로 끝났다.
하지만 방탄소년단은 미국의 ‘원디렉션’이 사실상 해체한 이후 비어있는 보이그룹의 자리를 채우면서 열성적 팬덤 ‘아미’를 모으는 중이다.
아미는 방탄소년단의 팬카페 이름이자 팬덤을 지칭하는 용어로 두가지 뜻이 있다.
첫 번째는 ‘청춘을 위한 사랑스러운 대표(‘A’dorable ‘R’epresentative ‘M’.C for ‘Y’outh)다. 두 번째는 군대(ARMY)라는 의미다. 방탄복과 군대는 항상 함께하므로 팬클럽과 방탄소년단도 항상 함께라는 것이다.
업계의 한 관계자는 “동양인을 상대로 의식적, 무의식적 차별이 여전한 미국 엔터테인먼트업계에서 방탄소년단의 메인스트림 진출은 믿기 어려운 성공”이라고 말했다.
방탄소년단의 성공에는 방시혁 대표의 기획력이 오롯히 자리잡고 있다.
방탄소년단은 방 대표가 기획부터 제작까지 도맡은 첫 아이돌그룹이다. 방탄소년단이라는 이름도 ‘청춘이 겪어야 하는 고통, 압박감의 총탄을 막아준다’는 뜻을 담아 방 대표가 직접 지었다.
방 대표는 서울대학교에서 미학을 전공했는데 음악에서도 직관적 콘텐츠로 의미와 정서를 전달하는 것이 중요하다고 여겼다.
방탄소년단 앨범의 특징 역시 연작으로 구성돼 특유의 서사를 담고 있다는 점이 꼽힌다.
‘화양연화’, ‘윙스’ 등의 음악시리즈를 통해 학교, 청춘, 유혹 등의 주제로 서사구조를 만들면서 방탄소년단의 멤버들이 한 개인으로서 성장해나가는 과정이 고스란히 콘텐츠로 만들어졌다. 방탄소년단의 성장사가 곧 이들의 콘텐츠인 셈이다.
이런 서사는 국적을 넘어 공감대를 형성해 방탄소년단의 무기가 됐다. 9월 발매된 미니앨범 ‘러브 유어셀프 承 ‘Her’'도 2018년까지 이어질 ‘러브 유어셀프 시리즈’의 첫 번째 앨범이다. 사랑의 설렘과 두근거림을 담았다.
방탄소년단 멤버 슈가는 “이번 앨범은 사랑에 몰입한 그 순간을 그리고 있는데 그 단계가 ‘승’이라고 생각했다”며 “내년까지 전체 시리즈가 다 공개되고 나면 (기승전결 가운데) 왜 ‘기’가 아니라 ‘승’이 먼저 나오게 됐는지 이해할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방 대표는 한국 대중음악계에서 손꼽히는 작곡가이자 프로듀서다. 중학교 시절 밴드활동으로 음악을 시작해 1994년 ‘유재하 가요제’에서 동상을 받으면서 음악계에 발을 들였다.
데모테이프를 듣고 박진영 JYP엔터테인먼트 최대주주가 방 대표를 영업하면서 1997년 말부터 JYP엔터테인먼트 창립멤버로 일했다.
2005년부터는 독립해 빅히트엔터테인먼트를 세워 제작자로 꿈을 키웠다.
방 대표는 지난해 한 인터뷰에서 방탄소년단을 기획한 배경과 주안점을 두고 “멤버들 스스가 본인들의 이야기를 할 수 있어야 한다고 생각했다“고 말했다.
중소기획사인 빅히트엔터테인먼트를 세우면서 '10년 내 아시아 재패'를 목표로 세웠는데 아시아뿐 아니라 대형 엔터테인먼트 회사들도 뚫지 못한 미국시장의 벽을 넘었다. [비즈니스포스트 고진영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