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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염경엽 넥센 히어로즈 감독 |
염경엽 넥센 히어로즈 감독은 이번 시즌에 프로야구판에서 유독 빛난다.
김응룡 감독, 선동열 감독, 김시진 감독, 이만수 감독 등 선수시절 최고의 스타였던 감독들이 물러났다. 그러나 염경엽 감독은 첫 감독직을 맡은 지 2년 만에 우승에 도전하고 있다.
염 감독은 초라한 선수시절을 보냈다. 그런 그가 감독으로서 성공을 거둔 것이 놀랍다.
염 감독의 선수시절 통산 타율은 1할9푼5리로 2할을 밑돈다. 수비력은 높게 평가됐지만 타격실력은 그에 미치지 못했다. 염 감독의 통산타율은 역대 500경기 이상 출전한 타자들 가운데 최저이자 유일한 1할 대다.
염 감독은 넥센 히어로즈 감독이 되기 전 감독 경험이 한 번도 없었다. 짧은 수비코치 주루코치의 경험만 있을 뿐이다. 그는 현대유니콘스에서 은퇴한 뒤 코칭스태프가 아닌 구단 프런트에서 일했다. 그가 코치 생활을 한 것도 고작 3년 정도에 불과하다.
염 감독은 말 그대로 실패자의 삶을 살았다. 그는 승자의 빛나는 길을 걷지 못했다. 그러나 이제 최고의 감독으로 꼽힌다.
설령 올해 넥센 히어로즈가 우승하지 못해도 그가 올 시즌 최고의 감독임은 아무도 부인하지 못한다.
◆ 통산 최저타율 기록한 선수시절
염 감독은 고등학교와 대학시절까지 수비가 좋고 발도 빨라 나름 유망주로 대접받았다. 그는 1991년 태평양돌핀스에 2차 1번으로 지명됐다. 그만큼 팀에서 기대를 걸고 있었던 선수였다.
그러나 그에게 절실함이 없었다. 염 감독은 부친이 공무원 출신인 부유한 집안의 막내로 어려움 없이 자랐다. 주목받는 유망주로 인기가 높아지자 점점 훈련은 게을리 하고 유흥에 빠졌다. 그와 절친인 김기태 KIA타이거즈 감독이 우스갯소리로 “프로야구 사상 최초 야타족 출신”이라고 꼬집을 정도였다.
염 감독의 실력은 점점 하락세였지만 하위권을 맴돌던 태평양 돌핀스에서 주전자리를 놓치지 않았다. 그러나 현대가 태평양을 인수해 유니콘스로 이름이 바뀌면서 상황은 달라졌다.
현대 유니콘스는 고졸 최대어로 꼽히는 박진만을 잡았고 박진만은 곧바로 유격수 자리를 꿰찼다. 염 감독은 1996년 개막전 선발 엔트리를 박진만에게 내줬다. 염 감독은 “개막식에서 애국가를 부르는데 전광판에 내 이름이 없어 화장실에 가 펑펑 울었다”고 회상했다.
염 감독은 대수비와 대주자를 주로 맡는 백업요원으로 전락했다. 그러나 그 순간이 전환점이었다. 그는 선수로서 1년을 버틸 체력이 없다는 것을 깨닫고 더 이상 선수로서 기회가 오지 않을 것을 깨달았다.
그가 선택한 길은 공부였다. 염 감독은 코치로 제2의 인생을 성공하겠다고 다짐했다. 야구와 관련된 외국 서적을 자비로 번역해 읽었다.
지금도 유명한 그의 메모습관은 이때부터 시작했다. 감독과 코치들이 하는 말과 상황별로 느끼고 분석한 것들을 날마다 메모장에 기록했다. 이렇게 20년 가까이 기록해 온 메모들은 지금도 염 감독의 큰 자산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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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염경엽 넥센히어로즈 감독 |
◆ 초라한 운영팀 말단 생활
염 감독은 2000년 현대 유니콘스가 우승한 뒤 이른 나이지만 떠밀리듯 은퇴를 결정했다. 통산 898경기 출장으로 1천 경기를 채우고 싶은 마음도 있었다. 그러나 코치를 목표로 한 이상 빠를수록 좋다고 생각했다.
현대 유니콘스 구단은 그를 프런트로 활용했다. 현대 유니콘스에서 선수가 프런트로 간 경우는 염 감독이 처음이었다. 그의 뛰어난 분석력은 운영팀에서 능력을 발휘했다. 처음에 구단은 2년 동안 운영팀으로 일하면 코치자리를 주겠다고 했으나 5년간 동안 이 약속은 지켜지지 않았다.
2004년 현대 유니콘스가 마지막 우승을 차지했을 때 염 감독은 우승 축하연을 준비하러 롯데호텔까지 비를 맞고 뛰어가야 했다. 염 감독은 “현수막을 달고 우승 축하 동영상을 만든 뒤 한숨 돌리고 나니 내가 지금 뭐하고 있지 하는 생각이 들어 초라했다”고 회상했다.
하지만 염 감독은 언젠가 코치로 그라운드에 돌아갈 수 있으리라는 희망의 끈을 놓지 않았다. 염 감독은 운영팀 말단 대리로 일하면서도 야구공부를 놓지 않았다. 밤늦게까지 남아서 경기결과를 정리하고 분석하고, 각 선수와 감독의 성향까지 꼼꼼하게 메모로 남겼다.
김용휘 현대 유니콘스 단장은 당시 염 감독을 “머리가 비상하고 집념이 대단하다”고 평가했다.
그는 그렇게 공부한 이유에 대해 “유니폼을 입고 싶었다”고 말했다. 코치가 돼 선수로서 보여주지 못했던 것들을 보여주고 싶었다. 그는 누구보다 강한 동기와 절실함을 품고 있었다.
염 감독은 코치가 되기 위한 투자의 시간으로 프런트 생활을 여겼다. 선수에서 프런트가 되니 1년에 몇 천만 원씩 돈을 까먹었지만 유학비로 생각했다. 염 감독은 “프런트 생활을 한 8년 동안 1년에 4개월은 외국생활을 했다”며 “다 합하면 2년 넘게 유학을 한 것이나 다름없다”고 말했다.
◆ 밤새 상대 투수를 연구한 주루코치
염 감독은 2007년 현대 유니콘스에서 수비코치를 맡은 지 4년 만에 다시 2011년 LG 트윈스에서 수비코치가 됐다.
LG 트윈스에서 수비코치를 맡던 시절에 프런트를 뒤에 업고 선수단 내에서 파벌을 형성했다는 의혹이 제기되기도 했다. 프런트로 오래 일하다가 코치로 부임한 점과 현대 유니콘스 출신이라는 점 때문이었다.
LG 트윈스가 부진한 이유가 프런트 탓이라는 주장에 염 감독은 희생자가 됐다. 염 감독은 LG 트윈스 팬들에게 ‘정치꾼’이라는 비난을 받기도 했다.
결국 염 감독은 시즌을 마치고 친구인 김기태 당시 LG트윈스 감독이 제시하는 수석코치 자리를 박차고 넥센 히어로즈 코치로 자리를 옮겼다. 수비코치가 아닌 작전 및 주루코치였다.
넥센 히어로즈는 2012년 전체 팀도루 1위를 기록했다. 2011년 도루수 99개로 꼴지를 기록했는데 1년 만에 도루가 179개로 늘었다. 발이 빠른 선수만 도루를 하는 것이 아니라 거포들도 뛰었다.
넥센 히어로즈의 중심타선 박병호와 강정호는 2012년 20-20클럽을 달성했다. 상대 배터리와 상황분석에 뛰어난 염 감독의 작품이었다.
염 감독은 코치로 일하면서도 공부를 멈추지 않았다. 염 감독과 함께 넥센 히어로즈 코치로 일했던 박흥식 코치는 “염 감독은 상대투수의 허점을 연구하느라 밤을 샜다”며 “틈만 나면 메모를 하고 선수들에게 주루법을 가르쳤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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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염경엽 넥센히어로즈 감독 |
◆ 준비된 감독, 이장석의 선택
염 감독은 2013년 넥센히어로즈 감독으로 선임됐다. 지도자로서 경력이 많지 않고 감독을 해 본 적도 없는 염 감독을 선임한 데 고개를 갸우뚱하는 사람들도 많았다.
이장석 구단주는 “경험은 다소 부족할지 모르지만 변화에 알맞는 인물”이라며 “주저없이 선택했다”고 말했다.
당시 감독 선임은 이례적으로 이 구단주가 직접 인터뷰를 진행하는 방식으로 이뤄졌다. 이 구단주는 “야구에서 성적이 나려면 프런트의 지원과 현장의 움직임이 어우러져야 한다”며 “염 감독은 적잖은 프런트 경력이 있어 프런트쪽을 이해할 수 있는 감독”이라고 말했다. 이 구단주는 “소통이 잘 되는 것이 중요하다”며 “이 부분을 고려한 것”이라고 덧붙였다.
이 구단주 말처럼 염 감독은 현장과 구단 양쪽 경험을 바탕으로 모든 문제가 소통에서 나온다는 것을 잘 이해하고 있다. 그는 “구단 고위층이 감독의 선수기용이나 작전에 의문이 생긴다면 즉시 이유를 묻고 의문을 해소해야 한다”며 “이런 과정이 없기 때문에 오해가 커지는 경우가 많다”고 말했다.
염 감독은 프런트와 코칭스태프의 업무를 엄격히 구분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이는 프런트의 일은 프런트가 하고 감독의 일은 감독이 한다는 확고한 철학을 지닌 김용휘 현대유니콘스 단장 밑에서 운영팀으로 일하면서 물려받은 유산 덕분이다.
이 때문에 이 구단주와도 마찰 없이 잘 호흡을 맞춰가고 있다고 평가받는다. 염 감독은 “감독이 되리라고 생각하지 않았다”며 “단장을 바라보고 단장이 되기 위해 준비를 해 왔다”고 말했다. 그리고 염 감독의 철저한 준비는 그가 성공한 감독이 되는 데 밑거름이 됐다.
◆ 시합중 결코 자리에 앉지 않는 감독
염 감독은 선수관리를 철저히 한다.
일부 감독들이 하듯 무조건 강도 높은 훈련을 실시하지 않는다. 휴식을 줄 때는 확실히 쉬게 하고 선수별로 필요한 훈련들을 맞춤형으로 진행한다.
염 감독은 “훈련량이 너무 많으면 집에 돌아가 '오늘도 끝났네. 내일은 어떻게 하지' 라는 생각이 든다”며 “프로라면 선수들이 즐겁게 야구장에 나와 ‘내일은 또 뭐할까” 생각하도록 하고 싶다“고 말했다.
시즌 중 체력관리도 철저하다. 시즌 초반부터 주전급 선수들을 로테이션으로 출전시키며 체력이 소진되는 것을 막았다. 넥센은 결국 주요 선수의 부상없이 올 시즌을 마무리할 수 있었다.
염 감독의 관리가 아니었다면 상대적으로 얇은 넥센의 선수층으로 정규시즌 준우승은 불가능했을 것이라는 분석도 있다.
염 감독이 선수들 몸 관리에 공을 들이는 것은 잘 알려져 있다. 지난해 포스트시즌에서 선수단에 한알에 5만 원씩 하는 공진단을 1인당 10알씩 나눠준 일이 대표적이다. 팬이 염 감독에게 포도즙을 전달하자 감사하다는 의례적 인사 대신 “이것은 선수들이 먹어야 하는데”라고 말하곤 한다.
염 감독은 다른 감독들과 달리 경기 내내 덕아웃에 서서 경기를 지휘한다. 염 감독은 왜 경기 중 앉지 않느냐는 물음에 “선수들이 땀을 뻘뻘 흘리며 뛰는데 감독이라고 앉아있을 수 있겠느냐”며 “내가 감독하는 동안 앉지 않을 것”이라고 말했다.
염 감독은 지금도 배우는 데 열중한다. 그는 “모든 감독이 내 스승”이고 “모든 책에서 배울 점이 있다”고 말한다. 염 감독은 넥센 히어로즈에 맞는 색깔의 야구를 만들기 위해 김성근 한화 감독의 세밀한 야구에 제리 로이스터 전 롯데 감독의 두려워하지 않는 야구를 접목했다.
김성근 한화 이글스 감독은 염 감독에 대해 “야구에 대한 연구를 많이 하고 현실에 안주하지 않는 감독”이라며 “9개 구단 감독 가운데 가장 많이 고민하는 대단한 감독”이라고 평가했다. 김 감독은 평소 칭찬을 많이 하지 않는데 이례적인 극찬이다.
염 감독은 성과를 남에게 돌린다.
염 감독은 지난해 넥센 히어로즈가 창단 뒤 처음으로 포스트시즌에 진출한 뒤 “내가 한 것이 아니라 모두가 함께 만들어낸 것”이라고 말했다. 염 감독은 “전임 김시진 감독님이 젊은 선수들을 키워냈고 이장석 대표님도 트레이드로 선수구성을 잘 해줬다”며 “그런 것들이 밑바탕이 돼 만들어 낸 것”이라고 말했다.
염 감독은 좋지 않은 결과에 대한 책임을 진다. 그는 “감독은 결과에 책임을 지는 사람”이라며 “그걸 두려워하면 감독이 아니다”고 말했다. 염 감독은 넥센 히어로즈가 좋은 성적을 거두는 데 대해 “나는 한 게 없다. 구단이 좋은 선수를 데려오고 코치가 정성껏 지도한 효과”라며 “무엇보다 선수들 스스로가 열심히 한 것”이라고 말했다.
“난 결과가 안 좋을 때 책임만 지면 된다.” 염 감독이 자주 하는 말이다. [비즈니스포스트 김디모데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