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민재 기자 betterfree@businesspost.co.kr2014-03-04 16:42:4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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활동공과
비전과 과제/평가
사건사고
경력/학력/가족
어록
생애
▲ 신격호 롯데그룹 총괄회장
신격호는 1922년 10월4일 경상남도 울산군 삼남면 둔기리에서 아버지 신진수와 어머니 김필순의 5남5녀 중 장남으로 태어났다. 2년제 농업보습학교를 졸업한 뒤 백두산 밑에 있는 ‘명천국립종양장’의 연수생으로 1년 동안 있었다. 이 당시 이웃 마을 부농의 딸인 노순화 여사와 결혼했다. 1941년 아내와 딸을 두고 홀로 일본으로 건너가 와세다대학에 진학했다.
일본에서 껌 사업으로 성공을 거뒀으며 1967년 국내에 롯데제과를 설립했다. 2012년 일본롯데 회장을 지냈으며 2011년부터 현재까지 한국 롯데그룹 총괄회장으로 재직하고 있다.
경영활동의 공과
비전과 과제/평가
◆ 평가
시장이나 소비자와 소통에 소극적이다.
사건사고
경력/학력/가족
◆ 경력
1949년 일본에서 주식회사 롯데를 설립해 1959년 롯데상사, 1961년 롯데부동산, 1967년 롯데아도, 1968년 롯데물산, 주식회사 훼밀리 등 상업과 유통업으로 일본의 10대 재벌이 됐다.
1969년 일본 프로 야구 퍼시픽 리그의 도쿄 오리온즈 구단을 보유하는 나가타 마사이치 구단주의 시기 중에서 롯데와 업무제휴 관계를 체결하며 롯데 오리온스로 개칭해 1972년부터 롯데오리온스를 인수하고 현재까지 3대 구단주로 재직하고 있으며 1992년부터 지바 롯데마린스라는 구단명으로 개칭했다.
1971년 롯데전자를 세워 전자부문으로 진출했다. 이어서 1985년 롯데데이터센터를 세웠고 1987년 롯데엔지니어링을 설립했다.
한국진출은 1966년부터 시작했다. 1966년 롯데알미늄을 시작으로 이듬해 롯데제과를 세웠다. 1973년 호텔롯데와 롯데전자, 롯데기공 등을 설립했다.
1974년 롯데산업과 롯데상사, 롯데칠성음료 등을 설립했다. 1978년엔 롯데삼강과 롯데건설, 롯데햄, 롯데우유를 세웠고 1979년 롯데쇼핑을 세워 유통업을 강화했다.
1975년 롯데 자이언츠 구단을 창단하고 1982년에 한국프로야구로 가맹하며 초대 구단주로 지내고 있다.
2011년 2월 둘째 아들인 신동빈회장에게 한국 롯데그룹 회장 자리를 물려주고 총괄회장을 맡고 있다.
◆ 학력
면장을 지낸 백부의 도움으로 2년제 농업보습학교에 진학했다. 보습학교를 졸업한 뒤 백두산 밑에 있는 ‘명천국립종양장’의 연수생으로 1년 동안 있었다.
1941년 일본으로 건너가 현재의 와세다대 이학부인 와세다 고공(高工) 야간부 화학과를 1946년 졸업했다.
◆ 가족관계
남동생 넷이 있는데 신철호는 공금횡령을 통해 현 롯데제과 전신인 롯데화학공업사를 세웠다. 그 아래로 신춘호 농심 회장과 신준호 푸르밀 회장, 신선호 일본 산사스사장이 있다. 여동생 신정희는 동화면세점 사장이며 매제 김기병은 롯데관광 회장이다.
‘명천국립종양장’의 연수생으로 1년 동안 이웃마을 부농의 딸인 노순화씨가 첫째 부인이다. 노순화는 신격호가 일본에 가 있는 동안 사망했다. 노순화와 사이에서 신영자 롯데쇼핑 사장을 낳았다.
신격호는 일본에서 자신이 세 들어 사는 집 주인의 딸 다케모리 하츠코와 결혼했다. 하츠코의 모친은 중국 상하이 홍구공원에서 윤봉길 의사의 폭탄투척으로 중상을 입은 주중 일본공사 시게미쓰 마모루의 딸이다. 슬하에 두 아들을 뒀는데 신동주 일본 롯데그룹 부회장과 신동빈 한국 롯데그룹 회장이다.
탤런트 서미경이 셋째 부인이다. 딸 하나를 얻었는데 바로 신유미 롯데호텔 고문이다.
◆ 상훈
1978년 국민훈장 무궁화장을, 1981년 동탑산업훈장을 받았다.
1995년 관광산업분야에서 처음으로 금탑산업훈장을 받았다.
◆ 상훈
1978년 국민훈장 무궁화장을, 1981년 동탑산업훈장을 받았다.
1995년 관광산업분야에서 처음으로 금탑산업훈장을 받았다.
어록
“큰일을 하려면 작은일도 알아야 한다는 것이 나의 지론이다. 껌은 23개 기업에서 생산되는 제품 1만5천 종 중 하나일 뿐이다. 나는 그 1만5천가지 제품의 특성과 생산자, 그리고 소비자 가격을 알고 있다” (1983년 10월, 월간 ‘직장인’과 인터뷰에서 기자가 껌 한 통의 소비자 가격을 알고 있는 회장에 대해 놀라자)
“나에겐 늘 극복해야 할 일들이 있다. 돈을 버는 것만이 내가 추구하는 전부가 아니고, 극복할 일들이 있다는 것에 묘한 쾌감을 느낀다” (1983년 10월, 월간 ‘직장인’과 인터뷰에서)
“망하더라도 제일 늦게 망해야 한다” (1998년 6월 18일, ‘뉴스메이커’ 인터뷰에서)
“과감한 혁신과 현장중심경영으로 기존사업의 내실화에 만전을 기해 달라” (2014년 1월, 신년사에서)
“서울에 세계 최고 높이의 제2롯데월드를 짓는 것이 여생의 꿈” (일본 경제주간지 ‘슈칸다이아몬드’와 인터뷰에서)
◆ 평가
시장이나 소비자와 소통에 소극적이다.
◆ 기타
홀수달에는 한국에서, 짝수달에는 일본에 머물며 그룹을 경영해 ‘대한해협의 경영자’라는 별명을 가지고 있다.
1971년 만든 ‘둔기회’를 현재까지 이끌고 있다. 1969년 울산공단에 공업용수를 대기 위해 댐이 건설되자 영산 신씨 집성촌이었던 울산광역시 울주군 삼동면 둔기리 일부가 수몰됐다. 수몰 뒤 신격호의 친인척과 고향 사람들이 전국 각지로 흩어졌다. 신격호는 이를 안타까워해 둔기회를 조직했다. 이 모임은 매년 5월 첫째 주말에 마을잔치를 열고 있으며 현재 1,100여 세대로 늘어났다.
신격호가 살았던 마을 근처에 별장이 있다. 신격호는 매년 한두 차례 이곳에 와서 쉬며 선친묘소를 참배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