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 웨스턴디지털이 도시바가 내민 화해의 손길을 사실상 뿌리쳤다. 낸드플래시 신규공장에 공동으로 투자하자는 제안을 거부했다.
반도체사업 매각을 끝까지 방해하겠다는 의지를 재확인한 셈이다. SK하이닉스가 참여한 컨소시엄이 도시바 반도체를 인수할 것이라고 여전히 장담하기 힘들다.
그러나 SK하이닉스는 웨스턴디지털을 대신해 도시바 낸드플래시 신규공장에 공동투자를 할 수 있어 단기간에 시장점유율을 확대할 기회를 잡을 수도 있다.
로이터는 27일 “웨스턴디지털이 도시바의 요청을 거부하고 반도체사업 매각을 막기 위한 법적 대응을 계속 이어가기로 했다”고 보도했다.
스티브 밀리건 웨스턴디지털 CEO는 실적발표회에서 이런 입장을 내놓으며 도시바의 신규 낸드플래시공장 투자에도 참여할 뜻이 없다고 밝혔다.
도시바는 사모펀드 베인캐피털과 애플, SK하이닉스 등 컨소시엄에 반도체사업을 약 20조 원에 매각하기로 합의했다. 독점규제심사 등을 거쳐 내년 3월까지 매각절차를 마무리할 계획을 세웠다.
하지만 웨스턴디지털이 합작법인 설립계약을 이유로 미국 연방법원 등에 매각중단을 요청한 상태라 상황은 여전히 유동적이다. 미국법원의 결정은 내년 초에 나올 것으로 알려졌다.
도시바 CEO는 최근 주주들에게 매각이 지연될 경우에도 충분히 대응할 수 있는 방법을 준비중이라고 밝혔다고 로이터는 보도했다. 미국법원의 결정이 웨스턴디지털에게 유리한 쪽으로 나올 가능성도 고려하고 있는 것이다.
도시바는 웨스턴디지털의 마음을 돌리며 반도체사업 매각과 별개로 협력을 계속 이어가기 위해 노력하고 있다. 낸드플래시 핵심기술과 생산시설을 대부분 두 회사가 공유하고 있기 때문이다.
최근 도시바가 신규 반도체공장 투자계획을 밝히며 웨스턴디지털의 참여를 제안한 것도 법적 분쟁을 마치고 화해 분위기를 만들기 위한 조치로 해석됐다.
하지만 웨스턴디지털이 법적 대응에 강력한 의지를 재확인한 만큼 반도체사업 매각이 도시바의 뜻대로 되지 않을 가능성이 커진 셈이다.
밀리건 CEO는 “웨스턴디지털이 온전한 권리를 확보하기 어려운 상황에서 도시바 반도체와 함께 투자에 나서는 방법은 동의할 수 없다”고 말했다.
도시바는 최근 주주총회에서 반도체사업 매각 동의도 얻으며 9부 능선을 넘었지만 아직 웨스턴디지털이라는 장벽은 넘지 못하고 있는 것이다.
박성욱 SK하이닉스 부회장이 최근 반도체협회 행사에서 “도시바 반도체 인수과정은 내년 3월까지 지켜봐야 할 것”이라며 조심스러운 입장을 보인 것도 이런 상황을 감안했다고 할 수 있다.
▲ 도시바와 웨스턴디지털의 일본 낸드플래시 생산공장. |
하지만 SK하이닉스 입장에서 도시바 반도체 인수가 무산되더라도 오히려 긍정적 결과를 얻을 수 있다는 분석도 나온다.
SK하이닉스는 계약조건에 따라 도시바와 웨스턴디지털이 함께 투자한 생산시설에는 투자할 수 없다. 하지만 신규공장에 웨스턴디지털이 참여를 거부하면 도시바와 공동투자를 할 수도 있다.
도시바는 최근 신규공장 투자계획을 최근 대폭 확대해 추가 자금이 필요해졌고 SK하이닉스는 낸드플래시 시장점유율 확대를 과제로 안고 있는 만큼 공동투자를 할 경우 두 업체가 모두 실익을 챙길 수 있다.
SK하이닉스는 도시바 반도체 인수참여와 투자가 모두 무산되더라도 장기적으로 이득을 볼 수 있다. 도시바는 삼성전자에 이어 낸드플래시시장 점유율 2위인데 매각논의의 장기화로 경쟁력을 잃게 될 수 있기 때문이다.
최태원 SK그룹 회장이 최근 한 행사에서 “도시바 반도체를 인수하는 것이 아니라 투자하는 것이라고 생각한다”며 “SK하이닉스에 도움이 될 수 있는 여러 협력방안을 알아보겠다”고 말했는데 이런 모든 계산을 고려한 것일 수도 있다. [비즈니스포스트 김용원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