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권오현 삼성전자 부회장이 2017년 6월20일(현지시각) 벨기에 브뤼셀 솔베이 도서관에서 열린 플레이북 조찬 행사에 참석해 기조연설을 하고 있다. |
박수칠 때 떠나기는 어렵다. 더욱이 정상에 있는 이라면 더욱 그렇다.
권오현 삼성전자 부회장이 물러난다. 이제 겨우 66세. 30대그룹 사장단 가운데 절반 이상이 60대 이상인 현실에서 퇴진을 선택했다. 그래서 ‘용퇴’라는 말도 나온다.
흔히 정상에 선 사람의 갑작스런 물러남은 급격한 변화를 몰고 온다. 삼성에는 어떤 변화의 소용돌이가 몰아칠 것인가?
권 부회장은 19일 미국에서 진행된 재계 리더들의 모임 ‘워싱턴 경제클럽’에서 “가장 정상에 있을 때 내려오라는 말이 있다”며 “삼성은 세계 최고의 기업이 됐고 지금이 떠날 때”라고 말했다.
퇴진이 워낙 뜻밖이다 보니 이런저런 말이 나오는데 다시 한번 용퇴임을 강조한 셈이다.
권 부회장은 또 “IT산업은 너무나 빨리 변해서 앞으로 10년 동안 무슨 일이 일어날지 모른다”며 “거기에서 어떻게 살아남을지가 항상 제일 큰 도전이었고 앞으로도 어떻게 살아남느냐, 그리고 최고의 위상을 어떻게 유지하느냐, 즉 ‘생존’과 ‘유지’가 양대 과제”라고 말했다.
퇴진 이후 삼성전자 더 거센 도전에 직면에 있고 이를 위해 스스로 대대적 변화를 해야 한다는 점을 거듭 당부했다.
권 부회장은 퇴진을 발표할 때도 “후배 경영진이 나서 비상한 각오로 경영쇄신을 추진해주기 바란다”며 “(나의 사퇴가) 어려운 상황을 이겨내는 도전과 혁신의 계기가 되었으면 한다”고 말했는데 같은 맥락이라고 할 수 있다.
삼성전자는 오너가 아닌 최고 전문경영인이 용퇴한 뒤 대규모 변화를 이미 한 차례 겪었다.
윤종용 전 삼성전자 부회장이 2008년 사퇴할 때도 그랬다.
윤 전 부회장은 삼성전자가 글로벌기업으로 성장하는 기반을 닦았다. 그는 평소 “사람은 돌아서는 모습이 아름다워야 한다”고 말했다.
윤 전 부회장도 물러나면서 “삼성전자가 근본적으로 변화하고 혁신하기 위해서는 위로부터 변화가 필요할 것이라고 판단했다”고 말했다.
당시 삼성전자는 ‘김용철 변호사의 삼성 비자금 의혹 폭로’로 이건희 회장이 경영일선에서 물러나 있을 때였다.
윤 전 부회장이 사퇴하고 난 다음해에 삼성전자는 4개 사업(디지털미디어·정보통신·반도체·LCD) 총괄체제에서 2개 부문(DMC(digital media & communications)부문, DS(digital solution)부문)체제로 조직을 개편하는 등 대대적 변화를 거쳤다.
해외로 눈을 돌리면 잭 웰치 전 제너럴일렉트릭(GE) 회장도 마찬가지였다.
그는 46세에 제너럴일렉트릭 최고경영자에 올라 세계 최고 기업으로 키웠다. 1981년 취임 당시 매출 270억 달러, 순이익 16억 달러이었으나 2000년 매출 1300억 달러, 순이익 120억 규모로 성장했다.
웰치 전 회장은 2001년 9월 퇴진을 선택했다.
그러나 그의 용퇴는 후계자를 충분히 물색해 놓은 뒤 이뤄졌다. 웰치 전 회장은 7년에 걸쳐 뒤를 이을 전문경영인을 키웠다. 1994년 임원 가운데 23명을 후보로 추려냈고 1998년 3명을 최종후보로 압축했다. 이어 2년 동안 지켜본 뒤 제프리 이멜트 회장을 후계자로 낙점했다.
권 부회장도 내년 3월 대표이사와 이사회 의장에서 물러나기 전에 후임자를 추천하겠다고 했다.
권 부회장이 후임자를 추천할 시간을 벌어 퇴진하는 것은 하루 아침에 CEO가 바뀌기도 하는 우리 기업의 현실에서 보면 진일보한 것이기도 하다.
물론 권 부회장이 오랜 기간 삼성전자 경영진들을 지켜봐 왔기 때문에 후임자를 추천하는 일에 어려움이 없겠지만 웰치 전 회장이 후계자를 준비해왔던 작업에 비춰보면 여전히 갑작스럽다. 오너가 있고 그렇지 않은 차이인지도 모른다. [비즈니스포스트 백설희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