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시바 반도체사업 인수에 참여한 미국 사모펀드 베인캐피털이 인수금액과 별도로 향후 낸드플래시 연구개발과 시설투자에 10조 원 이상의 거액을 지원한다는 계획을 내놓았다.
낸드플래시 경쟁업체인 삼성전자가 도시바의 공격적인 사업확대로 반도체 시장점유율과 수익성에 타격을 받을 가능성이 높아지고 있다.
베인캐피털은 16일 일본 니혼게이자이를 통해 도시바 반도체사업 인수 뒤 운영계획을 내놓았다.
베인캐피털 측은 내년 3월 예정대로 인수가 마무리되면 도시바 경영진이나 사업구조에 큰 변화를 추진할 생각이 없으며 낸드플래시 연구개발과 시설투자에 지원을 아끼지 않겠다고 밝혔다.
도시바 반도체가 상장할 때까지 인수금액과 별도로 1억 엔(약 10조 원) 이상을 지원하겠다는 계획도 새로 내놓았다. 베인캐피털은 도시바 반도체사업부의 증권시장 상장을 목표를 두고 있다.
베인캐피털은 “우리는 수많은 투자자들을 등에 업고 있는 만큼 충분한 재원을 마련할 수 있을 것”이라며 “공격적인 반도체 시설투자로 도시바 반도체의 성장을 돕겠다”고 말했다.
도시바 반도체사업을 인수한 베인캐피털 컨소시엄에는 애플과 델, 씨게이트 등 대량의 낸드플래시를 필요로 하는 업체들이 참여해 있다. 이들 업체가 추가 시설투자를 지원하며 일정 물량의 낸드플래시를 공급받는 계약을 맺게 될 가능성이 높다.
SK하이닉스는 베인캐피털 컨소시엄에 약 4조 원을 출자해 도시바 반도체사업 인수에 합류했지만 인수계약조건에 따라 추가로 벌어지는 낸드플래시 시설투자에는 참여할 수 없다.
하지만 나루케 야스오 도시바반도체 사장은 니혼게이자이를 통해 “SK하이닉스와 협력은 기존 협력사인 웨스턴디지털에 영향을 주지 않는 선에서 이뤄질 것”이라는 입장을 제시했다.
SK하이닉스가 인수전에 참여한 목적대로 도시바와 다양한 기술협력을 추진하며 충분한 투자효과를 볼 가능성이 열려있는 셈이다.
반면 삼성전자에는 도시바의 반도체 투자확대가 강력한 위협이 될 수도 있다.
도시바가 글로벌 업체들의 대규모 지원을 받아 낸드플래시 생산량을 늘리게 될 경우 삼성전자는 곧바로 업황악화 또는 점유율 감소의 타격을 받게 될 공산이 있기 때문이다.
애플 등 삼성전자의 반도체 주요고객사가 도시바의 낸드플래시 생산투자에 참여해 일정한 물량을 공급받을 경우 삼성전자의 공급비중도 자연히 줄어들 수밖에 없다.
니혼게이자이는 “도시바는 그동안 반도체사업 매각을 진행하며 삼성전자가 낸드플래시시장에서 지배력을 더욱 높일 수 있도록 시간을 벌어줬다”며 “격차가 더욱 커졌을 것”이라고 바라봤다.
▲ 권오현 삼성전자 부회장(왼쪽)과 박성욱 SK하이닉스 부회장. |
하지만 야스오 사장은 삼성전자와 경쟁을 위해 웨스턴디지털과 협력을 지속하고 적극적인 투자도 벌이게 될 것이라며 직접적으로 삼성전자를 겨냥한 성장전략을 본격화하겠다는 의지를 내비쳤다.
도시바는 그동안 반도체사업 매각을 놓고 분쟁을 벌이던 웨스턴디지털도 신규 낸드플래시 공장투자에 참여하라는 제안을 보냈다. 사실상 화해의 손길을 내민 것으로 해석된다.
도시바가 베인캐피털과 웨스턴디지털의 자금지원을 모두 받을 경우 삼성전자와 맞먹는 수준의 생산투자를 벌여 점유율을 빠르게 추격할 수 있다. 글로벌 낸드플래시시장에서 삼성전자는 1위, 도시바는 2위 점유율을 차지하고 있다.
SK하이닉스 역시 도시바와 기술협력 가능성은 열려있지만 당장 점유율 경쟁에서 밀릴 가능성이 높아 단기적으로는 낸드플래시 시장지배력 확보에 어려움을 겪을 수도 있다.
도시바는 최근 2019년으로 예정됐던 자체 시설투자계획도 내년 3월로 앞당긴다고 발표하며 투자확대에 속도를 내고 있다.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에 예상보다 빠른 위협으로 떠오를 가능성도 충분하다. [비즈니스포스트 김용원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