권오현 대표이사 부회장이 물러난 뒤 삼성전자에서 추진될 변화에 재계의 관심이 집중되고 있다. 경영공백 위기에 대응해야 하는 부담이 이전보다 커지고 있기 때문이다.
당분간 삼성전자 등 계열사의 경영에서 세부조직과 전문경영인들이 역할을 강화해 톱니바퀴처럼 움직이며 전체 운영을 책임지는 ‘시스템의 삼성’이 본격적으로 가동을 시작할 것이라는 전망이 나온다.
16일 업계에 따르면 삼성전자에서 내년으로 예정된 권 부회장의 사퇴를 전후해 본격적으로 벌어질 변화를 놓고 다양한 관측이 나오고 있다.
월스트리트저널은 “권 부회장의 사퇴로 삼성전자의 리더십 위기는 한층 더 깊어졌다”며 “삼성전자가 이 다음 대책을 마련할 수 있는지가 절대적 숙제로 남게 됐다”고 보도했다.
삼성전자는 올해 초부터 이재용 부회장의 구속으로 최대 위기를 맞았다는 평가를 받았지만 실적과 주가는 이와 반대로 가파른 상승세를 이어왔다. 반도체사업이 최고 전성기를 맞았기 때문이다.
하지만 월스트리트저널은 삼성전자 반도체사업이 중국과 일본의 강력한 위협에 놓이고 스마트폰사업에서도 소프트웨어 경쟁력 확보가 불안한 상황에서 안심하기 어려운 처지라고 파악했다.
월스트리트저널은 관계자를 인용해 권 부회장이 그동안 반도체와 디스플레이 대규모 투자와 지난해 갤럭시노트7 단종사태 후속조치 등을 진두지휘하며 중요 역할을 대부분 도맡아왔다고 바라봤다.
권 부회장은 국내외 주요일정 참석과 해외기업에 협력논의 등 이 부회장이 담당했을 만한 업무도 대신해왔다. 실질적으로 총수 공백사태를 만회했던 만큼 사퇴에 따른 영향도 클 수밖에 없다.
전자전문매체 EE타임스는 권 부회장이 이런 상황에도 사퇴를 결단한 배경은 결국 과거 일본 전자업체들이 겪었던 역사를 삼성전자가 되풀이하지 않도록 변화를 이끌기 위한 것이라고 바라봤다.
현재 삼성전자의 실적 대부분을 책임지는 반도체와 디스플레이, 스마트폰이 결국 수년 안에 중국 등의 공세에 따라잡힐 수밖에 없을 것으로 판단해 대규모 조직쇄신의 불씨를 당겼다는 것이다.
권 부회장은 삼성전자가 미래 성장동력을 마련하지 못한 만큼 대대적인 변화와 새 경영진들의 꾸준한 노력이 필수적이라고 밝혔다. 삼성전자에 ‘반도체 신화’를 이끌어낸 스스로의 공을 치하하기보다 한 단계 더 앞을 내다보며 후임 경영진들에 과제를 남겨두고 떠나는 셈이다.
증권사 번스타인은 월스트리트저널을 통해 “삼성전자의 경영진은 각 분야에서 수십 년의 경험을 쌓은 전문가들로 구성돼있다”며 “충분히 권 부회장의 역할을 대체할 수 있을 것”이라고 바라봤다.
삼성전자에서 이제는 각 사업분야와 조직의 전문경영진들이 주요 경영인의 결정에 의존하기보다 각자 최선을 다해 톱니바퀴처럼 맞물려 움직이며 거대기업인 삼성전자를 이끌어가야 하는 책임을 안게 된 셈이다.
그동안 업계에서는 권 부회장이 역할을 확대해 이 부회장 대신 그룹 차원의 경영까지 책임질 수 있다는 전망이 계속 나왔다. 하지만 정반대의 상황이 벌어지고 있다.
이런 배경에서 삼성그룹의 최대 장점 가운데 하나로 평가받던 ‘시스템의 삼성’이 마침내 본격적으로 시험대에 올랐다는 평가도 나온다.
삼성전자를 포함한 계열사는 그동안 삼성 미래전략실이 그룹 차원의 인사와 투자, 전략수립 등을 총괄하고 조율하는 체계적인 의사결정체제 아래에서 움직여왔다.
하지만 삼성전자는 각 사업부문의 규모가 크고 그룹 전반에 미치는 영향도 큰 만큼 각자대표체제를 구축해 독립적 운영체계를 어느 정도 갖춰놓고 있다. 권 부회장의 사퇴로 이런 시스템이 더욱 강화되는 계기가 만들어질 수도 있다.
삼성전자는 최근 미국에서 투자설명회 ‘CEO서밋’을 열고 삼성전자의 여러 펀드가 외부기업의 인수합병, 협력 추진 등에 역할을 확대해 더 적극적인 투자에 나설 것이라는 계획도 내놓았다.
삼성전자가 올해 초까지 지주사체제 전환을 검토하다 이 부회장의 구속사태 등으로 계획을 철회한 만큼 어느 정도 대대적인 조직개편에 대한 준비가 되어있을 가능성도 높다.
삼성전자를 주축으로 과거 미래전략실이 갖추고 있던 불투명한 의사결정구조 등을 보완한 삼성그룹의 새 컨트롤타워가 만들어질 것이라는 관측도 고개를 들고 있다.
이렇게 되면 삼성 미래전략실 중심구조의 약점으로 꼽히던 각 계열사의 독립성이 강화되는 한편 그룹차원의 협력이 더 체계적인 형태를 갖추며 시스템의 삼성이 더욱 강화될 수도 있다.
삼성전자 관계자는 권 부회장의 사퇴에 따른 후속조치 등은 아직 논의중에 있다며 말을 아꼈다. [비즈니스포스트 김용원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