권오현 부회장이 돌연 경영일선에서 물러나기로 결정한 배경을 놓고 해석이 분분하다.
권 부회장은 세대교체를 위한 결단이라고 스스로 밝혔다. 그러나 이재용 부회장의 항소심이 진행되는 상황에서 이 부회장의 경영복귀가 절실하다는 점을 보여주기 위한 포석이라는 관측도 나온다.
삼성전자는 13일 권 부회장이 부품사업을 총괄하는 DS부문장에서 자진사퇴하면서 대표이사와 이사회 의장도 내년 3월 임기가 끝나는 대로 물러난다고 밝혔다.
권 부회장은 삼성전자가 어려운 상황에 처하고 미래를 책임질 성장동력도 불투명한 시기에 경영쇄신과 세대교체가 절실하다고 판단해 사퇴를 결정했다는 입장을 내놓았다.
하지만 이건희 회장의 와병과 이재용 부회장의 구속, 삼성그룹의 컨트롤타워인 미래전략실 해체 등으로 삼성전자의 경영리더십이 불안한 상황에서 권 부회장이 전격적으로 사퇴를 결정한 것은 뜻밖의 행보라는 관측이 지배적이다.
권 부회장이 삼성전자의 대외행사나 글로벌 주요 협력사와 사업논의, 전략수립과 투자결정 등을 진두지휘하며 이 부회장을 대신해 역할을 점점 키워나가고 있었기 때문이다.
권 부회장이 물러날 경우 삼성전자에서 이를 대체할 만한 인물이 뚜렷하지 않다.
윤부근 CE부문 사장과 신종균 IM부문 사장이 권 부회장과 함께 각자대표이사를 맡고 있지만 삼성전자에서 반도체와 디스플레이 실적이 차지하는 비중이 절대적이기 때문에 권 부회장의 역할은 특히 중요하다.
더욱이 권 부회장은 삼성전자의 미래를 대비하기 위한 경영쇄신 등 중요한 당면과제를 제시해 놓았는데 내년 3월까지 남은 시간이 많지 않은 만큼 이를 모두 마무리하기도 쉽지 않다.
특히 삼성전자가 한국경제 전반에 미치는 영향력이 압도적으로 크기 때문에 권 부회장의 퇴진으로 생길 경영공백이 자칫 국가적 타격으로까지 확산될 수 있다는 말까지 나온다.
이 때문에 권 부회장의 사퇴는 이재용이 부회장이 항소심에서 풀려날 수 있도록 여론을 조성하기 위한 것 아니냐는 관측도 제기된다.
삼성전자의 경영리더십 공백이 한국경제 전반에 타격을 입힐 수 있다는 의견은 이 부회장이 박근혜 게이트와 관련해 구속수사를 받을 때부터 정치권과 재계에서 꾸준히 나왔다.
삼성전자를 포함한 삼성그룹 계열사가 다른 재벌기업과 같이 오너일가의 결정에 주요 사업전략 수립과 투자 등을 의존해온 만큼 이 부회장의 공백에 따른 영향이 클 수밖에 없다는 것이다.
그러나 삼성전자가 3분기에 역대 최대실적을 내는 등 승승장구하고 있어 이런 의견이 널리 힘을 받지는 못한 측면도 있다.
증권사들과 국제 신용평가사, 정치권 등에서 삼성전자의 실적 고공행진을 놓고 이 부회장 공백의 악영향이 크지 않는 것 아니냐는 말도 나돌았다.
항소심 재판부도 이 부회장을 둘러싼 여론과 삼성전자의 경제적 영향력 등을 완전히 배제하고 판결을 내릴 수 없는 만큼 권 부회장의 사퇴 이후 삼성전자의 경영공백과 여론의 변화에 촉각을 기울일 수밖에 없을 것으로 보인다.
권 부회장은 후임자를 추천한 뒤 물러날 계획을 밝혔다. 권 부회장의 퇴진 결정으로 삼성전자의 새로운 경영진 구성은 최대이슈로 부상할 수밖에 없다.
이 과정에서 삼성전자 주주들 역시 적극적으로 목소리를 낼 가능성도 있다. 삼성전자의 새로운 성장동력 확보를 위해 이 부회장의 경영복귀가 필요하다는 여론이 주주들을 중심으로 확산될 수도 있다.
전자전문매체 더버지는 “삼성전자에서 실질적인 리더로 자리잡은 권 부회장의 사퇴는 이 부회장의 구속사태가 삼성전자의 사업운영과 기업문화에 막대한 영향을 준다고 증명한 첫 번째 사례”라고 바라봤다. [비즈니스포스트 김용원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