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래에셋대우 해외진출
최현만은 미래에셋대우를 글로벌 투자금융회사로 키우기 위해 해외진출에 속도를 내고 있다. 해외 현지에서 인수합병을 추진하거나 부동산 등의 투자금융사업을 확대하는 것이 목표다.
최현만은 대우증권과 미래에셋증권의 합병법인인 미래에셋대우 대표이사로 2016년 4월 취임한 뒤 해외법인 합병과 청산 등으로 조직을 개편하고 자기자본 확대에도 힘을 기울였다.
미래에셋대우가 2016년 미국 뉴욕법인과 영국 런던법인, 2017년 베트남법인과 인도네시아법인에 각각 실시한 증자규모를 합치면 4억 달러 이상이다.
2017년 안에 미국 로스앤젤레스법인에도 홍콩법인을 통해 3억 달러 규모의 증자를 실시하기로 했다. 2018년에 인도법인을 설립할 계획도 세웠다.
최현만은 2017년 1월 연합뉴스 인터뷰에서 “전 세계 국가 14곳에 퍼져있는 해외채널을 적극 활용하겠다”며 “성장가능성과 비교해 저평가된 인도, 인도네시아, 베트남, 브라질 등 신흥국가에 주목해 현지 주식과 채권, 부동산과 사무실, 공기업 민영화 등 다양한 대체투자 대상에 눈을 돌리겠다”고 밝혔다.
△초대형 투자금융회사 발돋움 준비
최현만은 일정 이상의 자기자본을 보유한 초대형 투자금융회사에 허용된 업무를 통해 자기자본 활용처를 늘리고 새로운 수익원도 확보하는 방안을 추진하고 있다.
자기자본 3조 원 이상을 보유한 종합금융투자사업자는 기본적으로 자기자본 100%만큼 기업에 돈을 빌려주는 신용공여사업을 할 수 있다.
자기자본 4조 원 이상을 소유했을 경우 2017년 10월로 예정된 금융위원회의 인가를 받으면 만기 1년 안인 단기어음을 발행하거나 할인, 매매, 중개, 보증하는 단기금융업을 할 수 있다.
자기자본 8조 원 이상인 경우 고객자산을 기업금융에 투자하는 종합투자계좌(IMA)와 부동산담보신탁 업무를 수행할 수 있다.
미래에셋대우는 2017년 상반기 연결기준으로 자기자본 7조2328억 원을 보유해 8조 원에 가장 먼저 도달할 가능성이 높은 증권사로 꼽힌다.
최현만은 2016년 10월 대표이사 직속으로 초대형투자은행추진단을 신설해 초대형 투자금융회사에 걸맞은 기획과 상품개발을 미리 준비하고 있다.
2017년 3월24일 미래에셋대우 주주총회에서 “초대형 투자금융회사로서 발행어음과 종합투자계좌 등 다각도의 사업을 검토하고 전개하겠다”며 “국내 최대를 넘어 글로벌 투자금융회사들과 어깨를 견주도록 경쟁력을 키우겠다”고 밝혔다.
미래에셋대우가 보유한 연금자산 8조 원도 2017년 안에 10조 원으로 불릴 계획을 세웠다. 퇴직연금시장의 높은 성장성에 주목했다.
그러나 문재인 정부가 금융규제를 강화할 조짐을 보이면서 최현만이 추진하던 미래에셋대우의 몸집 불리기에 차질을 빚을 가능성도 제기되고 있다.
미래에셋대우가 금융위의 발행어음 인가를 받지 못할 경우 늘어난 자기자본을 제대로 활용하지 못해 자기자본이익률(ROE) 하락 등을 겪을 수 있기 때문이다.
△미래에셋증권 대표이사, 미래에셋대우 대표이사로 복귀
최현만은 2016년 4월 미래에셋증권 대표이사로 복귀하면서 ‘해결사’ 역할을 다시 맡은 것으로 평가된다. 취임하자마자 미래에셋대우(옛 대우증권)와 미래에셋증권의 합병과정을 총괄했다.
통합 미래에셋대우가 2016년 12월30일에 출범한 뒤에는 이질적인 두 회사의 조직을 최대한 빠르게 융합하는 과제를 짊어지게 됐다.
최현만은 1999년 미래에셋증권 대표이사 사장을 맡은 뒤 2011년까지 회사를 이끌었다. 그동안 미래에셋증권에서 객장을 없애고 주식위탁매매수수료를 대거 낮추는 등 과감한 조치를 취했다.
이를 통해 미래에셋증권을 신생증권사에서 업계 10위권으로 끌어올렸고 퇴직연금 등 자산관리(WM) 시장의 강자로 만들었다.
최현만은 2012년 6월 미래에셋생명 대표이사로 자리를 옮겼지만 2016년 4월 초부터 미래에셋증권에 복귀할 수 있다는 관측이 나왔다. 박현주 미래에셋금융그룹 회장이 미래에셋대우를 직접 챙기겠다고 밝힌 뒤에도 복귀설이 계속 나왔다.
결국 최현만은 2016년 4월20일 미래에셋증권 대표이사에 올랐다. 2016년 11월 통합을 앞둔 미래에셋대우(옛 대우증권) 대표이사로 선임됐고 2016년 12월30일 통합 미래에셋대우가 출범하면서 조웅기 마득락 사장과 함께 미래에셋대우 CEO 3인체제의 수장을 맡게 됐다.
△미래에셋생명 대표이사
2012년 수석부회장으로 승진하면서 미래에셋생명 대표이사를 맡은 뒤 퇴직연금사업을 대폭 키웠고 기업공개(IPO)도 성공했다.
미래에셋생명 대표이사로 2012년 6월 취임한 뒤 자산운용분야 인력을 대폭 늘리고 변액보험자산의 해외투자 비중도 50%까지 끌어올렸다. 이를 통해 미래에셋보험의 변액보험 총자산수익률을 2012~2015년 동안 업계 1위로 유지했다.
은행과 증권사 위주였던 퇴직연금시장에도 신경을 쏟았다. 그 결과 미래에셋생명은 2015년 말 기준으로 퇴직연금 적립금 3조499억 원을 넘어섰다. 자금을 운용관리하는 적립금이 2조1174억 원을 차지했는데 2013년 말 9685억 원에서 2년 만에 120% 가까이 증가한 것이다.
미래에셋생명은 변액보험과 퇴직연금사업의 호조에 힘입어 2015년 말 기준으로 생명보험업계 수익률과 민원평가에서 모두 생명보험업계 선두에 올랐다.
2021년 도입되는 새 국제회계기준(IFRS17) 도입에도 대비해 2014년 도입준비팀을 꾸리는 등 관련 준비를 보험업계에서도 이른 시기에 진행했다.
미래에셋생명의 수익성이 강화되자 2009년부터 추진해 왔던 기업공개(IPO)를 하는 데도 속도를 냈다. 그 결과 2015년 7월8일 미래에셋생명이 코스피에 상장했다.
미래에셋생명 주가가 상장 이후 공모가 7500원을 넘어서지 못해 체면을 구겼다. 그러나 최현만은 2016년 2월 한경비즈니스 인터뷰에서 “미래에셋생명이 변액보험 수익률 1위의 저력을 바탕으로 내실경영의 가치를 인정받는다면 주가도 충분히 반등할 것”이라고 말했다.
△미래에셋금융그룹의 2인자
1989년 한신증권에 입사했을 때 동기들보다 서너 살 더 나이가 많았다. 실적경쟁에 지쳐 사표를 두차례 던진 적도 있었지만 결국 영업력을 인정받아 입사 8년 만에 지점장으로 승진했다.
1996년 11월 동원증권 서초지점장이었던 시절 그의 영업력에 주목한 박현주 강남본부장 등과 의기투합했고 1997년 7월 미래에셋금융그룹의 창업에 동참했다. 박현주 본부장은 최현만이 평사원이었을 때 부장이었는데 그때부터 친분을 쌓으면서 호형호제하는 사이가 됐다.
당시 국내 첫 자산운용사였던 미래에셋자산운용 대표이사를 맡아 2년 동안 회사를 이끌었고 1999년에는 미래에셋벤처캐피탈 대표이사를 맡았다.
박현주 회장의 당시 숙원이었던 미래에셋증권이 그해 12월에 출범하자 첫 CEO를 맡아 12년 동안 일했다. 2005년 미래에셋증권의 기업공개(IPO)를 이끌었고 2007년 홍콩에 법인을 내면서 해외사업도 시작했다.
2012년 미래에셋금융그룹의 수석부회장으로 승진하면서 명실상부한 2인자 자리에 올랐다. 미래에셋생명으로 자리를 옮겨 연금사업을 크게 확대했고 2009년부터 끌어오던 기업공개에도 성공했다.
2016년 미래에셋증권 대표이사로 복귀해 미래에셋대우(옛 대우증권)과 미래에셋증권의 통합작업을 총괄했다. 박현주 회장이 두 회사의 빠른 화학적결합을 이끌어낼 적임자로 최현만을 지목한 것으로 알려졌다.
| ▲ 최현만 미래에셋대우 수석부회장(왼쪽)이 2017년 7월24일 서울 광화문 포시즌스호텔에서 한성숙 네이버 대표와 함께 ‘디지털 금융 비즈니스의 공동 추진에 관한 협약’을 체결한 뒤 기념촬영을 하고 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