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 반도체기업 퀄컴이 기존 주력사업이던 스마트폰에서 벗어나 자동차반도체에 역량을 집중하는 강도높은 체질개선에 속도를 내고 있다.
삼성전자가 퀄컴 의존에서 벗어나 스마트폰에 자체개발한 AP(모바일프로세서) ‘엑시노스’ 탑재를 확대할 기회를 맞았지만 기술개발이 늦어지면 오히려 스마트폰 경쟁력이 뒤처질 수도 있다.
18일 전자전문매체 씨넷에 따르면 퀄컴이 스마트폰시장의 성장둔화에 대응해 더 빠른 시장확대가 예상되는 자동차 반도체시장에서 공격적으로 사업기회를 찾고 있다.
스티브 몰렌코프 퀄컴 CEO는 씨넷과 인터뷰에서 “자동차에 5G통신 등 신기술이 도입되는 속도가 갈수록 빨라지고 있다”며 “자동차분야에서 퀄컴의 역할도 이에 맞춰 커질 것”이라고 말했다.
퀄컴은 자동차와 스마트폰 등의 통신에 사용되는 통신모뎀반도체와 인포테인먼트 및 자율주행기술 구현에 사용되는 프로세서, 자동차 카메라에 사용되는 이미지센서 등을 개발해 공급한다.
퀄컴이 44조 원의 거액을 들이는 자동차반도체 글로벌 1위기업 NXP반도체 인수도 유럽연합 등 전 세계 당국의 심사를 거쳐 연말까지 마무리될 것으로 예정됐다.
인텔 등 대형 반도체기업들이 자율주행반도체 등 관련기술 확보에 주력하는 사이 퀄컴이 NXP반도체의 기술력과 시너지를 내고 기존 고객사도 확보해 빠르게 앞서나갈 기회를 찾고 있는 셈이다.
퀄컴은 스마트폰시장에서 사업전망이 어두워지자 자동차반도체 중심 체질변환에 속도를 내고 있다. 시장성장이 점점 느려지는데다 퀄컴에 특히 불리한 사업환경이 만들어지고 있기 때문이다.
한국 법원은 최근 공정거래위원회가 퀄컴에 독점과 시장지위 남용을 이유로 부과한 1조 원의 벌금과 시정조치가 정당하다고 인정했다. 퀄컴은 중국에서도 비슷한 제재조치를 받았다.
판결이 확정되면 퀄컴은 그동안 수익의 대부분을 차지하던 통신기술 사용료를 삼성전자와 LG전자 등 제조사에서 대폭 낮춰받을 수밖에 없고 스마트폰 반도체의 특허도 독점할 수 없게 된다.
유럽연합 등 당국도 비슷한 제재조치를 검토하는 가운데 퀄컴에 불리한 판례가 만들어지는 셈이다. 반도체 최대고객사인 애플도 퀄컴에 기술사용료 지불을 거부하며 법정공방을 벌이고 있다.
퀄컴은 ‘사면초가’에 놓인 셈인데 스마트폰 반도체에 계속 실적을 의존할 경우 큰 타격이 불가피하다. 따라서 신규 매출처 확보가 절실한 만큼 자동차용 반도체에 역량을 최대한 끌어모으고 있는 것이다.
퀄컴은 이런 변화에 맞춰 스마트폰 제조사에 공급하는 AP의 기술개발과 공급에 이전보다 소극적으로 나서고 있다. 단계적으로 사업 축소수순을 밟고 있는 것이라는 분석도 나온다.
그동안 퀄컴은 해마다 프리미엄 스마트폰에 공급하는 고성능AP를 상반기와 하반기 두차례에 걸쳐 내놓았는데 올해는 ‘스냅드래곤835’ 한 종류로 줄였다.
화웨이와 미디어텍, 삼성전자 등 후발주자들의 기술력이 상향평준화돼 AP시장에서 퀄컴의 시장지배력을 위협하고 있는 것도 퀄컴이 자동차분야에 역량을 더 집중하고 있는 이유로 꼽힌다.
퀄컴의 이런 전략변화가 특히 삼성전자에 미칠 영향이 작지 않을 것이라는 분석이 나온다.
삼성전자가 스마트폰사업에서 퀄컴의 AP에 의존하고 있는 한편 반도체사업에서는 자체개발한 엑시노스 AP로 퀄컴과 맞경쟁을 펼치는 상반된 입장에 놓여있기 때문이다.
삼성전자는 올해 출시한 갤럭시S8과 갤럭시노트8 등 고성능 스마트폰에 퀄컴의 스냅드래곤835와 자체개발한 ‘엑시노스8895’를 출시국가 또는 통신사별로 나누어 절반 정도씩 탑재하고 있다.
▲ 고동진 삼성전자 무선사업부 사장(왼쪽)과 김기남 반도체총괄 사장. |
퀄컴이 AP 기술개발에 투자를 줄이며 경쟁력이 낮아질 경우 삼성전자 반도체사업부는 스마트폰에 엑시노스 공급비중을 높이고 외부고객사 확대도 활발히 추진할 기회를 맞을 수 있다.
하지만 삼성전자가 자체 반도체기술로 퀄컴의 의존에서 완전히 벗어날 수 있을지는 여전히 불투명하다. AP 개발에 비교적 늦게 뛰어든 만큼 자체적인 기술경쟁력을 확보할 가능성이 불확실하기 때문이다.
애플과 화웨이, 퀄컴 등은 모두 스마트폰에 핵심기능으로 자리잡은 인공지능 기술구현에 필요한 AP 설계기술을 갖추고 있다. 하지만 삼성전자는 엑시노스 시리즈에 이와 관련한 기술을 확보하지 못했다.
삼성전자가 스마트폰에 엑시노스 AP 탑재를 늘리는 동시에 제품경쟁력도 확보하려면 결국 인공지능 등 신기술 발전에 대응해 경쟁을 벌일 만한 반도체 설계기술을 확보하는 것이 우선과제로 꼽힌다.
삼성전자 관계자는 “인공지능반도체는 아직 구체적인 개발단계를 언급할 시기는 아니다”며 “기술구현을 위해 스마트폰사업부와 협업도 필요하기 때문에 좀더 지켜봐야 할 것”이라고 말했다. [비즈니스포스트 김용원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