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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Who Is ?] 김범수 카카오 이사회 의장](https://www.businesspost.co.kr/news/photo/201410/5353_8878_453.jpg)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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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김범수 카카오 이사회 의장. |
김범수는 1966년 3월 서울에서 태어났다. 2남3녀 중 맏아들이다.
가난한 어린시절을 보냈다. 그의 부모는 전남 담양에서 농사를 짓다 상경했다. 아버지는 막노동과 목공일을 했으며 어머니는 지방에 머물며 식당일을 했다.
중학생 시절 아버지가 정육 도매업을 해 작은 집을 장만하기도 했지만 아버지의 사업이 부도나면서 할머니를 비롯한 여덟 식구가 단칸방 하나에 의지해 힘겹게 살았다. 하지만 혈서까지 쓰며 독하게 공부해 재수를 거쳐 1986년 서울대학교 공과대학에 진학했다.
학창시절 이해진 네이버 이사회 의장과 동기로 지냈다. 두 사람은 1990년에 대학을 졸업하고 1992년 삼성 SDS에 나란히 입사했다.
1998년 새로운 비전을 찾기 위해 삼성 SDS에서 퇴사했다. 삼성SDS에 재직중이던 1998년 6월 서울 행당동 한양대 앞에 전국 최대 규모의 PC방인 ‘미션 넘버원’을 부업으로 열었다. 2억4000만 원을 투자했다. 또 자신의 전공을 살려 한 자리에서 모든 컴퓨터를 관리할 수 있는 PC방 고객 관리 프로그램을 제작하기도 했다.
PC방사업을 통해 모은 자본으로 게임사업에 뛰어들었다. 1998년 11월 서울 테헤란로 뒷길에 작은 사무실을 임대해 ‘한게임’을 세웠다. 이 회사는 1년 6개월 만에 회원이 1000만 명에 이르며 엄청난 성공을 거뒀다.
이후 2001년 이해진 의장이 이끌던 네이버컴과 합병해 NHN을 만든다. 한게임은 많은 사용자가 몰렸으나 뚜렷한 수익모델을 찾지 못했고 네이버컴은 자본이 풍족해졌지만 적당한 투자처를 찾지 못하고 있었는데 둘의 이해관계가 일치했다. 두 사람은 NHN의 공동대표를 맡았다.
결합은 성공적이었다. 한게임을 무료로 제공하며 아이템을 판매하는 방식으로 큰 수익을 올렸다. 여기에 2002년 검색 서비스 ‘지식in’도 성공하며 네이버는 포털사이트 1위로 올라섰다. 김범수와 이해진이 결합해 시너지를 낸 것이 성공의 원인으로 꼽힌다.
그러나 네이버 안에서 김범수의 입지는 좁아졌다. 한게임의 도박성이 문제가 되고 지식in 서비스의 성공으로 네이버의 한게임 의존도가 낮아졌기 때문이다. NHN 해외지사를 돌다 결국 2009년 회사를 나와 미국으로 떠났다.
이후 사업에서 계속 실패를 경험했다. 미국에서 동영상 사진 공유 블로그 서비스 ‘부루닷컴’을 만들었지만 반응이 좋지 않았고 2008년 지식in 서비스를 개량한 ‘위지아’로 국내시장에 진출했지만 결국 실패했다.
거듭된 실패에도 계속 사업을 추진했다. 그는 PC웹의 시대가 저물 것으로 보고 모바일시장을 공략하기로 했다. 2009년 10월 애플의 아이폰이 국내에 출시되는 것을 보며 모바일시대가 올 것을 확신했다.
김범수는 카카오로 두 번째 성공을 거뒀다. 2010년 3월 미국에서 귀국하자마자 모바일 메신저 ‘카카오톡’을 시장에 내놓았다. 카카오톡은 모바일 메신저 시장을 선점해 국내에서 90%가 넘는 점유율을 보이고 있다.
지난 10월 1일 국내 2위 포털 업체 ‘다음커뮤니케이션’과 손잡았다. 그는 통합법인 다음카카오의 최대주주이자 이사회 의장에 올랐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