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신장식 조국혁신당 신임 대표가 2026년 7월25일 경기도 수원컨벤션센터에서 열린 전국당원대회에서 당기를 흔들고 있다. <연합뉴스> |
△당대표 선출
신장식은 2026년 7월25일 경기도 수원컨벤션센터에서 열린 전국당원대회에 단독 출마해 당대표로 선출됐다. 찬반투표에서 96.7%의 찬성률을 기록했다. 그동안 당대표 권한대행으로 있었다가 정식으로 당대표 자리에 올랐다.
신장식은 이날 수락연설에서 ‘선명한 개혁의 길’과 ‘자강의 길’을 강조했다. 검찰개혁을 지속적으로 추진하는 동시에
조국혁신당을 민생·사회권 정당으로 확대하고, 노동·주거·복지·불평등 등 민생 현안에 대한 정책 역량을 강화하겠다고 약속했다.
구체적으로 신장식은 취임 이후
조국혁신당의 과제로 검찰개혁 100% 완수, ‘원 이슈 정당’에서 벗어나 민생 강소정당으로 전환, 당 조직과 정체성 재정비, 민주당과의 연대보다
조국혁신당의 자강을 우선하는 당 운영,
조국 전 대표와의 정책적 역할분담 등을 제시했다.
이후
조국 전 대표와의 역할분담도 구체화했다. 신장식은 2026년 7월27일
조국 전 대표를
조국혁신당 혁신정책연구원장으로 지명했다. 조 전 대표가 불평등 해소와 사회투자 등 중장기 정책과 당의 비전을 연구하고, 신장식 대표가 당무와 원내활동, 대외정치를 맡는 방식으로 역할을 분담한 셈이다.
신장식은 2026년 8월23일 서울신문 인터뷰에서 “
조국혁신당이 민주당의 중도·실용 노선을 보완하는 선명한 개혁정당으로 자리 잡아야 한다”고 강조했다.
이후 신장식은 2026년 8월24일
김민석 더불어민주당 대표가
조국혁신당을 예방하면서 양당 간 연대와 통합, 정치개혁 등을 논의하기도 했다. 그는 이 자리에서 민주당에 교섭단체 요건 완화 등 정치개혁 약속의 이행을 요구한 것으로 알려졌다. 다만 민주당이
조국혁신당과 충분한 협의 없이 통합 논의를 추진할 경우 양당 간 신뢰를 쌓기 어렵다는 입장을 내비쳤다.
△당대표 권한대행으로 당 이끌어
신장식은 2024년 12월12일
조국 조국혁신당 전 대표가 수감된 이후 원내부대표와 원내대변인 등을 맡아
조국혁신당에서 중추적 역할을 수행했다.
신장식은 이후 2025년 5월20일
이재명 당시 더불어민주당 대선 후보의 경기 김포 유세에 참석해 찬조연설을 했다. 신장식은 사전 유세에서 수감 중인
조국 전 대표를 가장 빨리 만날 수 있는 방법은
이재명 후보를 대통령으로 만드는 것이라고 말하며 정권교체와 함께 조 전 대표의 사면·복권 필요성을 강조했다.
조국 전 대표가 2025년 8월11일 제80주년 광복절을 맞아 석방된 이후 신장식의 당내 입지도 한층 강화됐다. 신장식은 2025년 11월23일
조국혁신당 제3기 지도부에서 수석최고위원으로 선출되며 당내 주요 지도부로 자리 잡았다.
그러나 조 대표가 2026년 6월3일 실시된 6·3 지방선거와 함께 치러진 경기 평택을 국회의원 재선거에서 낙선한 뒤 대표직에서 물러나겠다는 뜻을 밝히면서
조국혁신당은 다시 지도부 공백을 맞았다. 이에 당헌·당규에 따라 당시 수석최고위원이었던 신장식이 새 지도부가 구성될 때까지 당대표 권한대행을 맡게 됐다.
| ▲ 신장식 조국혁신당 의원(왼쪽)이 2024년 5월31일 오전 서울 여의도 국회 의원회관에서 조국 조국혁신당 대표와 함께 국회 청소노동자들과의 오찬간담회를 하고 있다. <뉴시스> |
△
조국혁신당 입당과 국회 입성
신장식은 2024년 2월25일
조국 조국혁신당 전 대표가 주도한
조국혁신당의 인재영입 1호로 합류했다. 당시
조국혁신당은 창당준비위원회 단계였으며, 신장식은 입당 기자회견에서 “정치를 하기로 했다.
조국과 함께 걷기로 했다”고 밝혔다.
이후 신장식은
조국혁신당 비례대표 4번으로 공천됐고, 2024년 4월10일 실시된 제22대 총선에서 당선돼 국회에 입성했다. 앞서 2000년과 2004년 민주노동당 후보, 2008년 진보신당 후보로 서울 관악을 지역구에 출마했으나 모두 낙선한 바 있다. 이번에 비로소 비례대표로서 처음 국회의원 뱃지를 달았다.
국회 입성 이후에는 입법 활동에 나섰다. 신장식은 2024년 6월19일 국가배상법 일부개정법률안을 대표발의했다. 전사하거나 순직한 군인·군무원·경찰공무원·예비군대원의 유족이 국가를 상대로 자신의 정신적 고통에 대한 위자료를 청구할 수 있도록 하는 내용을 담았다. 신장식은 2024년 6월24일 국회 소통관 기자회견에서 법안의 취지와 고 홍정기 일병 유족의 국가배상 문제를 설명했다.
해당 법안은 신장식 의원안을 비롯해 엄태영·
김민석 의원안 등을 통합한 대안으로 심사됐으며, 2024년 12월10일 국회 본회의를 통과했다. 개정 법률은 2025년 1월7일 시행됐으며, 이에 따라 전사·순직 군경 유족은 기존 보상금과 별도로 정신적 손해에 대한 위자료를 청구할 수 있는 법적 근거를 갖게 됐다.
윤석열의 12·3 비상계엄 사태 당시 헌정질서 지키기에 나섰다.
윤석열 당시 대통령이 2024년 12월3일 밤 비상계엄을 선포하자 신장식은
조국혁신당 의원들에게 국회로 집결해야 한다고 알렸다.
조국혁신당 의원들은 경찰의 통제를 뚫고 국회 본회의장으로 이동했으며, 국회는 2024년 12월4일 계엄 해제 요구 결의안을 의결했다. 신장식도 해당 표결에 참여했다.
이후 신장식은 헌정질서와 노동·고용 분야로 입법 활동을 넓혔다. 2025년 2월4일에는 매년 12월4일을 ‘헌법수호의 날’로 기념하는 국회법 개정안을 발의했다. 2024년 12월4일 국회가 헌법상 권한에 따라 계엄 해제 요구 결의안을 의결한 일을 헌정질서 수호의 역사로 기록하자는 취지였다.
이밖에 신장식은 2025년 3월5일 성별 임금격차를 줄이기 위한 ‘성평등임금공시제 5법’을 추진한다고 밝혔다. 300인 이상 사업장의 성별·직종·직급·직무·근속연수·고용형태별 임금 현황을 공개하도록 하는 내용으로, 관련 법안은 2025년 3월21일 남녀고용평등법 개정안 등으로 실제 발의됐다.
| ▲ 신장식 변호사가 2023년 1월9일 MBC 라디오 '뉴스하이킥'의 새 진행자로 발탁돼 방송을 진행하고 있다. <MBC> |
△시사방송 진행자로 활동
신장식은 2008년 2월3일 진보신당 분당 사태 이후 법률가의 길을 걷기로 결심했다. 주민운동과 진보정당 활동을 통해 제도개혁의 필요성을 을 절감한 때문이라 설명했다.
신장식은 2010년 충북대학교 법학전문대학원에 입학했다. 이후 2013년 4월26일 법무부가 발표한 제2회 변호사시험 합격자 명단에 이름을 올리며 변호사로 활동을 시작했다.
변호사로 활동하던 신장식은 방송 진행자로도 활동 영역을 넓혔다. 2021년 8월23일 TBS 라디오 ‘신장식의 신장개업’ 진행을 시작해 2022년 12월30일까지 방송을 맡았다. 이어 2023년 1월16일부터 MBC 표준FM ‘신장식의 뉴스하이킥’을 진행하며 검찰개혁과
윤석열 정부의 국정운영, 노동·민생 문제 등을 다뤘다.
특히 ‘신장식의 뉴스하이킥’을 진행하면서 고 홍정기 일병 유족의 국가배상 소송과 국가배상법 개정 문제를 공론화하는 데 힘을 기울였다. 홍정기 일병은 군 복무 중 급성 백혈병에 걸렸으나 적시에 진료를 받지 못한 채 사망했고, 유족은 국가를 상대로 위자료 청구 소송을 제기했다.
서울중앙지방법원은 2023년 10월13일 홍정기 일병 유족의 손해배상 청구를 기각했다. 당시 재판부는 유족이 이미 사망보상금 등을 받은 만큼 국가배상법상 이중배상금지 원칙에 따라 별도의 위자료를 청구할 수 없다고 판단했다.
유족과 군인권센터는 2023년 10월19일 기자회견을 열고
한동훈 당시 법무부 장관이 국가배상법 개정을 약속했지만 법 개정이 지연되고 있다고 비판했다. 법무부는 2023년 10월25일 국가배상법 개정안을 국회에 제출했다고 밝혔지만, 제21대 국회 임기 내 심사가 마무리되지 못하면서 해당 법안은 폐기됐다.
신장식은 2023년 10월24일 방송에서
한동훈 당시 법무부 장관이 법 개정을 약속하고도 신속하게 처리하지 않아 유족이 소송에서 패소했다는 취지로 비판했다. 이 과정에서 유족의 고통을 정치적 인기몰이나 ‘셀럽놀이’의 수단으로 이용했다는 강한 표현을 사용하기도 했다. 이에 법무부는 2023년 11월1일 신장식에 대해 ‘악의적 허위선동’이라며 법적 조치에 나설 것이라고 밝히기도 했다.
이후 방송통신심의위원회와 선거방송심의위원회의 제재가 이어졌고, 신장식은 2024년 1월29일 MBC ‘뉴스하이킥’에서 하차하겠다는 의사를 밝혔다.
△민주노동당에서 정치활동 시작
신장식은 1987년 민주화운동과 대통령선거를 거치며 정치가 사회를 바꿀 수 있다는 생각을 갖게 됐다고 2015년 8월12일 '민주사회를 위한 변호사모임' 인터뷰에서 회고했다.
신장식은 청주고등학교에 재학 중에 충북대학교 시위 현장에서 최루탄을 경험했고, 6월항쟁과 대통령선거 과정에서 시민들이 집단적으로 정치에 참여하는 모습을 지켜봤다.
이후 신장식은 대학생으로서 1991년부터 서울 신림동과 봉천동 일대 철거지역 주민들을 돕는 활동에 참여했다. 공부방 운영과 주민지원 활동을 시작으로 철거민들과 함께 생활하며 주거권과 지역개발, 주민자치 문제에 관심을 넓혔다. 1995년에는 관악주민연대 설립 과정에 참여해 관악구에 정착했으며, 관악구립어린이집 정상화와 상가임대차 보호, 실업극복, 지역복지 등 주민생활과 밀접한 문제를 다뤘다.
주민운동을 이어가던 신장식은 시민단체 활동만으로는 지역 주민들이 예산과 행정, 법률 결정 과정에 직접 참여하는 데 한계가 있다고 판단해 선거와 정당정치에 참여하기로 했다. 이에 1998년 6월4일 실시된 제2회 전국동시지방선거에서 서울 관악구 봉천9동 구의원 선거에 무소속으로 출마했으나 낙선했다.
이후 2000년 4월 제16대 총선에서 민주노동당 후보로 서울 관악을에 출마했으나 낙선했다. 2004년 4월 제17대 총선에서도 같은 지역구 민주노동당 후보로 출마했지만 당선되지 못했다. 이후 민주노동당 내에서 활동하며 당 기획위원장과 권영길 당시 민주노동당 당대표의 비서실장을 지냈다.
민주노동당 분당 이후에는 진보신당에 합류했다. 2008년 4월 제18대 총선에서 진보신당 후보로 서울 관악을에 출마했으나 다시 낙선했다. 이후 진보신당은 2008년 4월28일 신장식을 이선희 전 진보신당 비례대표 후보와 함께 당 공동대변인으로 임명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