KoreaWho
KoreaWho
 

[Who Is ?] 한민구 국방부 장관

합리적 리더십, 사드배치 격랑 [2017년]
이헌일 기자 queenlhi@businesspost.co.kr 2017-03-07 08:54:41
확대 축소
공유하기
페이스북 공유하기 X 공유하기 네이버 공유하기 카카오톡 공유하기 유튜브 공유하기 url 공유하기 인쇄하기
  • 전체
  • 활동공과
  • 비전과 과제/평가
  • 사건사고
  • 경력/학력/가족
  • 어록
생애
[Who Is ?] 한민구 국방부 장관
▲ 한민구 국방부 장관.


한민구는 대한민국 국방부 장관이다.

1951년 8월 30일 충청북도 청원에서 태어났다. 육군사관학교 31기다.

육군사관학교 전쟁사학과 교수, 제27보병사단 79연대 2대대장, 국방부 정책기획관실 국방기획담당, 육군참모총장 비서실장, 제53보병사단장, 수도방위사령관, 육군참모차장, 육군참모총장, 합동참모의장을 거쳤다.

군에서 부정부패를 근절하고 병영문화를 개선하기 위해 다양한 제도개혁에 힘을 쏟았다.

합참의장 청문회 시절부터 제기된 야전경험 부족은 약점으로 꼽힌다.

2016년 7월 한국과 미국이 한반도에 사드(THADD, 고고도 미사일방어체계)를 배치하겠다는 결정을 발표한 뒤 홍역을 치르고 있다.

한민구는 안보상 필요성을 강조하며 사드배치를 추진하고 있지만 중국의 무역보복이 가시화하면서 경제적 타격을 우려하는 목소리도 높다.

친화력 있는 성품과 합리적 리더십을 갖췄다는 평가를 받는다.

경영활동의 공과
비전과 과제/평가
◆ 평가

한민구는 국방부와 육군본부, 교육사 등 정책부서에서 쌓은 다양한 업무경험을 바탕으로 정책 및 전략기획 업무분야에 정통한 전문가로 꼽힌다.

주위에서 한민구를 온화하고 친화력있는 성품으로 갈등관리 능력이 뛰어나다고 평가한다. 조직 내에서 상하간 원활한 의사소통과 합리적 사고방식으로 상관과 부하들로부터 신망이 두터운 편으로 알려졌다.

문제의 본질을 읽어내는 능력이 뛰어나고 합리적 판단을 중요시한다.

국방부 국제협력관으로 재직할 당시 한미안보정책구상회의를 처음으로 발족하고 주한미군 감축협상, 방위비 분담협상 등을 추진했다. 국방부 정책기획관으로 재직하고 있던 2006년 열린 남북장성급회담에서 남쪽 수석대표를 맡아 문제해결 능력을 증명해 보였다.

군의 현안들을 해결하기 위해 다양한 방향으로 노력했다는 평가를 받는다.

장관에 취임한 뒤 출범한 방위산업비리 정부합동수사단에 적극 협조하고 인력을 지원했다. ‘청렴교육 및 자정결의대회’에서 본부직원들과 청력서약을 하며 전군의 부정부패를 척결하고 군납비리를 근절하자는 의지를 보였다.

군대 내 성범죄를 막기 위해 성군기 확립에 공을 들였다. 강간죄의 대상을 여성으로만 한정한 군형법 제92조를 개정해 남성을 포함하는 '사람'으로 변경했고 군인징계령과 군인징계령 시행규칙을 각각 개정해 성폭력과 성희롱 등 행위의 징계를 감경하거나 유예할 수 없도록 했다.

합참의장 청문회 시절부터 제기된 야전경험의 부족은 약점으로 꼽힌다. 합참의장 시절 벌어진 연평도 포격전에서 북한의 기습적 도발에 우리 군의 대응이 미흡했다는 지탄을 받았다.

사건사고
경력/학력/가족
◆ 경력

1975년 3월 제9 보병사단 소대장으로 임관했다.

1982년 10월부터 1984년 8월까지 육군사관학교 전사학과 교수로 재직했다.

1985년 8월부터 1986년 10월까지 대한민국 육군 제27사단 작전과장을 맡았다.

1986년 10월부터 1988년 12월까지 육군 제27사단 대대장으로 복무했다.

1994년 9월부터 1996년 3월까지 육군 제50보병사단 123연대장을 맡았다.

1997년 3월부터 1999년 11월까지 국방부 정책기획국 정책조정과 과장을 역임했다.

2002년 4월부터 2003년 4월까지 육군 기획관리참모부 전략기획처 처장을 맡았다.

2003년 4월부터 2004년 5월 까지 육군 제53보병사단 사단장으로 재직했다.

2004년 5월부터 2005년 5월까지 국방부 국제협력관으로 근무했다.

2005년 5월부터 2006년 12월까지 국방부 정책기획관을 역임했다.

2006년 12월부터 2008년 4월까지 수도방위사령부 사령관을 지냈다.

2008년 4월에서 2009년 9월까지 육군 참모차장으로 근무했다.

2010년 7월부터 2011년 10월까지 제36대 대한민국 합동참모본부 의장으로 활동했다.

2012년 9월부터 2014년 6월 초까지 육군사관학교 석좌교수로 활동했다.

2014년 7월 제44대 국방부 장관에 임명됐다.

◆ 학력

내수초등학교와 내수중학교를 거쳐 1970년 청주고등학교를 졸업했다.

1971년에 육사 31기로 입학해 1975년 졸업했다.

1997년 서울대학교에서 서양사학 학사학위를 받았다.

1992년 연세대학교 행정대학원에서 외교안보학 석사학위를 받았다.

◆ 가족관계

부인 곽정임씨와 사이에 1남1녀를 두고 있다.

◆ 상훈

1999년 보국훈장 삼일장을 받았다.

2004년 보국훈장 천수장을 받았다.

2011년 7월 한반도 및 아시아 태평양지역 평화와 안보 증진에 기여한 공로를 인정받아 미국 정부로부터 공로훈장(Legion Of Merit)을 받았다.

2014년 제11회 연세를 빛낸 행정인상을 수상했다.

◆ 상훈

1999년 보국훈장 삼일장을 받았다.

2004년 보국훈장 천수장을 받았다.

2011년 7월 한반도 및 아시아 태평양지역 평화와 안보 증진에 기여한 공로를 인정받아 미국 정부로부터 공로훈장(Legion Of Merit)을 받았다.

2014년 제11회 연세를 빛낸 행정인상을 수상했다.

어록


"사드배치는 한미동맹 차원의 결정이고 북한의 핵과 미사일에 대비한 최소한의 자위적 조치다. (사드배치) 작전운용을 가속화하겠다." (2017/03/06, 국회 국방위원회 전체회의에서)

"김정은 체제의 대안세력을 사전에 제거하고 국제사회의 김정은정권 교체시도를 미리 차단한다는 의미다. 탈북자 또는 체제에 불만을 지닌 세력에 강력한 경고 메시지를 던진 것으로 보인다.“ (2017/02/20, 국회 국방위원회 간담회에서 북한 김정남 사망사건과 관련해)

"한국의 군사적 필요성에 의해 일본과 논의를 재개했다. 이 협정이 자위대의 한반도 진출을 보장해준다는 지적이 나오지만 한국의 요청이나 동의 없이 일본 자위대가 한국 영역에 진입할 수 없다."(2016/10/28, 국회 국방위원회 전체회의에 출석해 한일군사정보협정과 관련해)

“모병제를 논의하려면 120만 북한의 병력에 한국 군이 얼마의 병력으로 대응할 수 있는지 전제가 필요하다. 한국이 최소한 50만 명의 상비병력을 유지해야 하는데 모병제를 실시하자고 하는 것은 본말이 전도된 의견이다.” (2016/09/21, 대정부질의에 출석해)

"사드가 배치되면 레이더 앞에 서서 전자파가 위험이 있는지 제 몸으로 직접 시험하겠다. 사드는 유해하거나 문제가 있는 무기 체계가 아니다." (2016/7/13, 경북 성주군에 사드를 배치하겠다는 계획이 발표된 뒤 반대시위를 벌이고 있는 주민들과 만나 사드의 레이더가 인체 혹은 작물 재배에 유해할 수 있다는 주장에 대해)

“북한은 단거리부터 중거리, 장거리 미사일을 모두 개발하고 있는데 한국이 이를 막아내기에 한계가 있다. 사드가 한반도에 배치되면 한국의 방어능력이 강화될 수 있어 군사적으로 이득이 분명하다.” (2016/06/06, 미국 CNN과 인터뷰에서)

“(자위적 핵보유를) 정부에서 고려하고 있지 않다. 북핵을 두고 국민적 분노와 아쉬움이라는 측면에서 그런 주장이 나오는 것으로 알고 있다.” (2016/02/15, 국방위원회 전체회의에 출석해 일부 여당 의원들이 자위권 차원에서 핵보유를 검토해야 한다는 의견을 낸 것을 두고)

“북한이 핵실험에 대한 유엔 안보리의 제재 기간에 장거리 미사일을 발사한 것은 국제사회에 대한 정면도전이고 한반도의 평화와 안전에 도전이자 위협이다. 북한의 전략적인 도발에 한미가 긴밀하게 협력해 대응하자.” (2016/02/07, 북한이 이날 장거리 미사일을 발사한 것에 대응하기 위해 한미 긴급대책회의를 열고)

"사드는 국방과 안보라는 관점에서 바라봐야 한다. 군사적 차원에서 말하면 우리의 능력이 제한되기 때문에 (한반도 사드배치를) 검토할 필요가 있다." (2016/01/25, MBC와 인터뷰에서)

“사진이 늠름했는데 직접 보니 더욱 미남이다. 재활치료를 잘 해줘서 고맙다. 결혼할 때 주례가 없어 내게 부탁하면 주례를 서겠다.” (2015/12/30, 국군수도병원을 방문해 북한의 목함지뢰도발 사건 때 다리를 잃은 하재헌 중사(당시 하사)를 격려하며)

"한미 정부가 사드배치 문제를 논의한 것이 없다. 무엇을 근거로 (주장을) 한 것인지 모르겠다. (사드배치와 관련해) 미국 내부에서 의사결정이 안 된 것으로 알고 있다.“ (2015/10/30, 외신에서 록히드마틴 고위관계자가 한미 정부가 사드배치계획을 논의하고 있다고 보도한 것과 관련해)

“‘사드 문제는 한미 정상이 논의할 문제가 아니다’고 외교부 장관이 말했다. 군사적으로 판단해도 그런 문제가 아니다.” (2015/10/08, 국정감사에 출석해 10월 박근혜 대통령의 미국 방문에 한민구가 공식 수행원에 포함된 것을 두고 미국과 사드배치를 논의하기 위한 목적이 아니냐는 질문에 대답하며)

“북한이 추가 도발을 해온다면 우리 군은 가차없이 단호하게 응징해 혹독한 대가를 치르게 하겠다. 이번에야말로 북한 도발의 악순환 고리를 끊어내겠다.” (2015/08/22, 목함지뢰 사건 이후 한국이 대북 확성기방송을 재개하고 북한이 준전시상태를 선포하는 등 첨예한 대립을 이어가던 때 대국민담화를 통해)

"주한미군의 사드 배치와 관련해 미국 정부가 어떠한 결정도 내리지 않았고 사드 배치와 관련해 양국 정부 사이에 어떠한 협의도 없었다." (2015/04/10, 애슈턴 카터 당시 미국 국방부 장관과 서울에서 국방장관회담을 가진 뒤 기자회견에서)

“주한미국 대사에 대한 테러는 한미동맹에 대한 공격을 가장 극명하게 보여주는 것이다. 이런 공격을 막을 수 있는 능력 또한 굳건한 한미동맹에서 나온다.” (2015/03/06, 마크 리퍼트 주한 미국대사 피습사건과 관련해)

“한반도 사드 배치와 관련해 현재 미국의 결정도, 미국의 요청도, 한미 간 협의도 없다는 기존 입장에 변화가 없다.” (2015/02/04, 창완취안 중국 국방부장과 회담에서 사드 배치와 관련한 질문에 답하며)

“창조라는 개념을 국방에 적용해 국방분야에서 도약을 이루겠다. 창조국방의 기대 효과는 군사력을 운용에 혁신개념을 창출하고 적에게 우위를 점하는 군사력을 건설하는 것이다. 창조국방으로 유의미한 결과가 나온다면 평화통일이 되기 전에 북한의 위협을 결정적으로 무력화하고 역비대칭을 달성할 수 있다.

국방부 고위 인사들 몇 사람만으로 될 일이 아니기 때문에 연구 토의를 할 수 있는 모임을 만들어 전문가들에게 교육도 받고 이를 군내 흐름으로 정착시켜 나가겠다.” (2015/01/28, 한국국방안보포럼(KODEF) 강연에서)

“병영 내에서 인간의 존엄성이 일상적으로 파괴되고, 극심한 육체적 고통을 받는 가운데 한마디 하소연조차 하지 못하고 죽음에까지 이르렀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러한 일이 발생할 때까지 우리 군은 이를 예방하고 관리 감독해야 할 책임을 다하지 못했다." “재판을 받는 가해자 및 방조자에게 엄정한 군기와 군령을 유지하기 위해 군형법이 허용하는 범위 내에서 최대한 엄중하게 조치하겠다.” “병사들이 고충을 인터넷과 전화 등으로 지휘관은 물론, 가족이나 외부에도 알릴 수 있는 여건을 만들겠다.” (2014/08/04, 윤일병 폭행사망사건 관련 대국민 사과성명 발표에서)

“‘기본이 튼튼한 국방’은 군 본연의 임무인 군사대비태세를 확고히 하고 전투력 발휘의 근간인 장병들이 만족하는 국방환경을 조성하는 것이다. ‘미래를 준비하는 국방’은 안보환경 변화에 능동적으로 대응할 수 있는 독자적 방위역량을 강화하면서 국익증진과 통일준비에 유리한 전략환경을 만들어 가는 것이다.”, “전방위 국방태세 확립, 행복한 선진 국방환경 조성, 미래 지향적 방위역량 강화, 한미동맹 발전 및 대외 국방협력 강화 등 네 가지 사항에 중점을 두겠다.” (2014/06/30, 국방부 장관 취임사에서)

“합참의 당시 입장은 북한에 충분히 대응하되 추가도발은 억제하라는 것이었다.” “연평부대가 교전규칙에 의해 대응한 뒤 합참은 추가적 대응지시를 내렸다.” “앞으로 북한의 도발은 어떤 상황에서도 분명하게 응징 및 보복하겠다.” (2014/06/29, 국방부 장관 후보자 청문회에서 합참에서 단호하게 대응하라는 지시가 없었다는 지적에 대해)

“공대지 공격이 미흡했던 것은 공군 초계임무가 공대공 전투에 대비한 것으로 공대지 공격을 할 수 없는 상황이었다.”, “북한의 2차공격이 있기 전 자위권 차원에서 공대지 능력을 갖춘 뒤 출격했다.” (2014/06/29, 국방부 장관 후보자 청문회에서 새정치민주연합 안규백 의원이 북한의 연평도 포격 도발시 공대지 공격준비를 안했고 또 대통령이 공격명령을 내렸지만 군이 반대했다며 군 대응의 적절성을 묻는 질문에)

"천안함 피격사건은 군령과 작전기강의 준엄함을 일깨워 줬다.", "확고한 군사대비태세 유지와 장병들의 정신적 대비태세 강화, 엄정한 작전기강이 확립되어야 한다." (2010/07/14, 경기도 평택의 해군 2함대사령부에서 열린 전군 주요지휘관회의에 참석해)

"2012년으로 연기한 것은 한반도 주변의 여러 정치적 유동성이 증대되는 문제와 북한의 변화 등 정치적 상황을 고려했다.", "전작권 전환 취소가 아니라 연기이기 때문에 더 완벽하게 받을 수 있도록 준비를 할 수 있다." (2010/06/30, 합참의장 청문회에서 전작권 환수시기 연기와 관련해 한 후보자가 합리적 결정이라고 말한데 대해 민주당 신학용의원이 대한민국 전투능력에 대해 의심하는 것이냐며 전작권을 우리가 가지고 있으면 안보가 불안하다고 생각하는 것이냐는 질문에)

"가급적 육군의 숫자를 줄이고 정보과학군이 만들어지는 것이 바람직하지만 지상군의 규모가 어느 정도 필요한 측면도 있다." "앞으로 육해공군이 2대1대1의 비율로 균형을 갖출 수 있도록 가급적 노력할 것이다." "합참의장이 해야하는 중요한 일은 적시에 중요한 판단을 하고 지시를 내리는 것이다." "합참본부에서 근무한 적은 없지만 합참본부와 그 업무를 이해하는 능력은 뛰어나다." (2010/06/30, 합참의장 청문회에서 한나라당 정의화 의원이 지나치게 육군중심인 합참본부의 문제점을 지적하며 한 후보자의 이에 대한 의견을 묻는 질문에)

“장기적이고 안정적인 주둔환경을 보장하고 이전비용을 최소화할 수 있는 규모로 합리적 논리에 따른 검증결과를 미측에 제시하겠다.” “충분한 검토를 마친 만큼 이해할 만한 결과가 나올 것으로 예상한다.” (2004/07/20, 용산기지 이전에 따른 부지 제공 규모와 관련한 질문에)

“현재 한미간에 군사임무전환이라는 것이 합의돼서 시행되고 있고, 또 미 2사단의 이전시기가 2008년 이후가 될 것으로 판단된다. 또 우리가 자체적으로 추진하고 있는 협력적 자주국방 추진계획과 국민 여러분들께서 걱정하시는 안보우려의 문제 등을 고려해서 최소한 2008년도까지 3년 정도 연장할 필요가 있다고 우리가 요청했고, 미국이 한국의 입장을 충분히 이해하고 동의한 것이라고 볼 수 있다.” (2004/07/10, CBS ‘시사자키 오늘과 내일’과 인터뷰 중 주한미군 감축시한이 3년 뒤로 미뤄진 것에 관한 질문에)

“지난 50년간 한미 동맹은 안보의 근간으로 국가발전과 경제성장의 밑바탕이 돼 왔다. 앞으로도 한반도의 안정과 평화를 위해 보다 포괄적이고 역동적인 관계로 양국 관계가 발전되도록 노력하겠다.”, “조만간 미국의 구체적 감축안을 접수해 협의할 예정이다. 우리는 이 과정에서 주한미군 감축이 한반도 안보태세에 영향을 미치지 않도록 협의를 진행하겠다. 협상원칙은 한미동맹의 틀 강화, 한반도 안보상황 고려, 한미 연합방위태세와 한국군의 전력증강 수준 고려 등이다.” (2004/07/19, 제10차 미래 한미동맹정책구상회의(FOTA)를 앞두고 가진 국방일보와 인터뷰에서)

◆ 평가

한민구는 국방부와 육군본부, 교육사 등 정책부서에서 쌓은 다양한 업무경험을 바탕으로 정책 및 전략기획 업무분야에 정통한 전문가로 꼽힌다.

주위에서 한민구를 온화하고 친화력있는 성품으로 갈등관리 능력이 뛰어나다고 평가한다. 조직 내에서 상하간 원활한 의사소통과 합리적 사고방식으로 상관과 부하들로부터 신망이 두터운 편으로 알려졌다.

문제의 본질을 읽어내는 능력이 뛰어나고 합리적 판단을 중요시한다.

국방부 국제협력관으로 재직할 당시 한미안보정책구상회의를 처음으로 발족하고 주한미군 감축협상, 방위비 분담협상 등을 추진했다. 국방부 정책기획관으로 재직하고 있던 2006년 열린 남북장성급회담에서 남쪽 수석대표를 맡아 문제해결 능력을 증명해 보였다.

군의 현안들을 해결하기 위해 다양한 방향으로 노력했다는 평가를 받는다.

장관에 취임한 뒤 출범한 방위산업비리 정부합동수사단에 적극 협조하고 인력을 지원했다. ‘청렴교육 및 자정결의대회’에서 본부직원들과 청력서약을 하며 전군의 부정부패를 척결하고 군납비리를 근절하자는 의지를 보였다.

군대 내 성범죄를 막기 위해 성군기 확립에 공을 들였다. 강간죄의 대상을 여성으로만 한정한 군형법 제92조를 개정해 남성을 포함하는 '사람'으로 변경했고 군인징계령과 군인징계령 시행규칙을 각각 개정해 성폭력과 성희롱 등 행위의 징계를 감경하거나 유예할 수 없도록 했다.

합참의장 청문회 시절부터 제기된 야전경험의 부족은 약점으로 꼽힌다. 합참의장 시절 벌어진 연평도 포격전에서 북한의 기습적 도발에 우리 군의 대응이 미흡했다는 지탄을 받았다.

◆ 기타
koreawho

댓글 (0)

  • - 200자까지 쓰실 수 있습니다. (현재 0 byte / 최대 400byte)
  • - 저작권 등 다른 사람의 권리를 침해하거나 명예를 훼손하는 댓글은 관련 법률에 의해 제재를 받을 수 있습니다.
  • - 타인에게 불쾌감을 주는 욕설 등 비하하는 단어가 내용에 포함되거나 인신공격성 글은 관리자의 판단에 의해 삭제 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