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년 동안 시험했던 멀티 프로덕션 체제의 실패를 사실상 인정하며 ‘SM 넥스트 3.0’으로 체제 전환을 선언했는데 이 전략을 통해 육성하고 데뷔할 새 아티스트의 성과를 통해 그의 판단이 옳았다는 것을 증명해야 할 것으로 보인다.
22일 엔터테인먼트업계에 따르면 SM엔터테인먼트가 최근 발표한 새로운 청사진인 'SM 넥스트 3.0'의 가장 가까운 시험대는 곧 데뷔할 보이그룹일 가능성이 높다.
전날 공개된 ‘SM 넥스트 3.0’ 발표 영상에서 탁 대표는 “2026년 한 팀의 보이그룹이 데뷔할 예정이다”며 “남자 연습생 팀인 SMTR25 멤버도 대상이 될 것이며 올해 초 ‘응답하라 하이스쿨’이라는 예능으로 단계적으로 선보일 것”이라고 설명했다.
‘SM 넥스트 3.0’은 ‘멀티 크리에이티브’ 체제로와 전환과 글로벌 파트너와의 IP(지적재산) 협력 전략, 아티스트 보호, 모회사인 카카오의 AI(인공지능) 기술 활용 등이 포함된 SM엔터테인먼트의 새 체제다.
이 가운데 핵심은 '크리에이티브 센터'를 신설하는 데 있는 것으로 평가된다. 각 프로덕션에 나뉘어 소속됐던 크리에이터들을 독립된 조직인 크리에이티브 센터로 한 데 모은 것이다.
크리에이터란 앨범 등 제작 과정에서 뮤직비디오와 비주얼 등 요소를 맡는 인력을 이른다. 기존에 소속 프로덕션 아티스트만을 담당했던 크리에이터들은 앞으로 조직 체계에 국한되지 않고 상황에 따라 자신의 능력에 더 적합한 프로젝트를 담당할 수 있게 된다.
탁영준 대표는 전날 공개된 영상에 직접 등장해 ‘SM 넥스트 3.0’을 소개하며 이러한 제작 방식을 이를 ‘멀티 크리에이티브’ 시스템이라고 설명했다.
그는 “크리에이티브 조직은 프로젝트 단위의 책임자를 지정하게 된다”며 “담당 크리에이티브 리더에게는 독립성을 부여할 것”이라고 말했다. 이어 “최적의 직급이 아닌 최적의 사람에게 권한을 부여할 것”이라며 “성과와 연동한 보상 또한 주어질 것”이라고 설명했다.
탁 대표가 3년 만에 '멀티 크리에이티브'를 선언하며 체제에 칼을 댄 까닭은 기존 3년 동안 운영해온 ‘멀티 프로덕션’ 체제가 부분적 성공에 그쳤다고 판단했기 때문으로 보인다.
SM엔터테인먼트의 ‘멀티 프로덕션’ 체제는 회사 안에 개별 프로덕션 5개를 운영하는 형태다. 아티스트뿐 아니라 제작과 매니지먼트 인력도 각 프로덕션에 나뉘어 소속됐다.
사실상 하이브가 운영하고 있는 멀티레이블 체제와 같은 형태라고 볼 수 있다.
이는 2023년 발표된 ‘SM 3.0’ 체제에 기반을 둔다. 당시 SM엔터테인먼트는 ‘SM 3.0’을 발표하며 멀티 프로덕션 체제 도입을 공식화했다.
이 조치는 SM엔터테인먼트가 이수만 전 총괄프로듀서의 그늘에서 벗어나 새 시대를 열겠다는 의지로 해석되기도 했다. 이전까지 SM엔터테인먼트는 A&R(음반 기획 및 제작)과 매니지먼트, 뮤직비디오, 홍보, 마케팅 등 조직이 총괄프로듀서 1인의 지휘 아래 있었다. 이러한 조직 체계를 각 프로덕션에 개별적으로 나누어 배치한 것은 이수만 시대와 다른 길을 걷겠다는 시도로 읽혔다.
탁영준 대표는 “’SM 3.0’은 더 많은 아티스트와 음악을 선보이면서도 크리에이티브의 독립성이라는 두 가지 목표를 부분적으로 달성할 수 있었다”면서도 “아티스트별로 더욱 뚜렷한 개성과 색깔, 음악적 진화를 이루려면 5개의 프로덕션만으로는 한계가 있을 수 있다”고 말했다.
SM엔터테인먼트 관계자는 “프로덕션의 구분 없이 아티스트에 더 적합한 크리에이터를 붙여서 완성도를 높이고자 한다”며 “크리에이터들이 더욱 더 중요해진 상황이기 때문에 그들에게 더 권한을 주기 위한 결정”이라고 말했다.
실제로 팬들 사이에서 멀티 프로덕션 체제에 대한 평가는 크게 두 갈래로 나뉘었다. 회사 역량을 한 팀에 쏟아 각 아티스트의 활동 주기가 늦게 돌아오던 기존 ‘SM 2.0’ 체제와 비교해 활동이 늘어난 점에 대해서는 긍정적 평가가 나온다.
▲ SM엔터테인먼트가 '멀티 프로덕션'에서 '멀티 크리에이티브'로 전환을 알렸다.
하지만 ‘SM 3.0’ 이후 SM엔터테인먼트의 프로듀싱 능력과 관련해서는 회의적 목소리도 적지 않았다.
팬들 사이에서 거론되는 ‘SM 3.0’의 대표적 산물은 걸그룹 ‘하츠투하츠’다. 하츠투하츠는 이수만 전 총괄프로듀서가 제작에 참여하지 않은 첫 번째 걸그룹이다. 하지만 일각에서는 ‘하츠투하츠’가 SM엔터테인먼트의 기존 색깔을 잘 나타내지 못한다는 평가가 나오기도 한다.
유튜브 등 SNS(사회관계망서비스)에서는 하츠투하츠를 이 전 총괄프로듀서가 중국에서 설립한 A2O엔터테인먼트의 현지 신인 걸그룹 'A2O 메이'와 비교하는 콘텐츠도 종종 볼 수 있다. “’A2O 메이’가 더 SM 여자아이돌 느낌이 난다”, 현재의 SM 경영진보다 이수만의 감각이 낫다”는 등의 의견이 적지 않다.
이러한 평가는 SM엔터테인먼트의 제작 능력이 이 전 총괄프로듀서 개인에게 의존했던 것 아니냐는 의문으로 귀결되기도 했다. 사실상 ‘SM 3.0’ 전략의 실패라고 볼 수도 있는 대목이다. 더불어 회사의 역량이 프로덕션 5개로 쪼개지며 제작 질이 저하된 것 아니냐는 우려의 목소리도 존재했다.
결국 탁 대표의 다음 과제는 ‘SM 넥스트 3.0’의 첫 번째 결과물로 선보이는 새 보이그룹을 통해 SM 3.0 시대에 받았던 미흡한 평가를 얼마나 보완할 수 있느냐에 쏠릴 수밖에 없다.
SM엔터테인먼트의 아티스트와 콘텐츠 제작, IP 전략 등 예술 측면을 주도하는 탁영준 대표는 2001년 SM엔터테인먼트에 입사한 뒤 ‘신화’와 ‘슈퍼주니어’ 등의 매니지먼트를 맡고 가수매니지먼트본부장을 지낸 아티스트 육성 전문가로 꼽힌다.
탁 대표가 공동대표로 취임할 당시 SM엔터테인먼트는 “탁영준 대표는 SM의 수 많은 가수들의 라인업을 체계적으로 매니지먼트하고 마케팅해, 글로벌한 스타로 성장시켰다”고 말했다. 이솔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