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6일 건설업계 안팎의 말을 종합하면 올해 인사철 대형건설사 대표이사 인사 규모가 그리 크지 않을 것이란 관측이 많다.
이는 다만 대형사 및 대표들이 충분한 성과를 거뒀기 때문은 아니라는 평가가 우세하다.
지난해까지 수익성 바닥을 다진 대형사들은 올해부터 본격적으로 회복세에 접어든 지표들을 보이고 있다. 공사비 급등 시기와 맞물린 2021~2022년 착공 고원가 물량 비중이 자연스레 줄어들고 있는 것이 그 배경이다.
이에 따라 실적 자체는 우상향을 하고 있지만 그 수준이 기대에 미치지 못하는 데다 특히 지난해 대거 주요 건설사 대표 자리에 새 얼굴로 교체된 탓이다.
아직 임기가 1년밖에 지나지 않은 데다 수주산업이자 호흡이 상대적으로 긴 건설업 특성상 단기 성과에 인사영향이 덜 하다는 해석인 셈이다.
지난해 하반기 10대 건설사 가운데 새 대표가 선임되거나 내정된 곳은 현대건설, 대우건설, DL이앤씨, 현대엔지니어링, 포스코이앤씨, HDC현대산업개발 등 무려 6곳이다.
현대건설은 회사 첫 부사장 대표인 이한우 대표가, 대우건설은 중흥그룹 편입 이후 첫 오너경영인인 김보현 사장이, DL이앤씨는 잦은 수장 교체 이후 그룹에서 주택사업으로 잔뼈가 굵은 박상신 대표가 지휘봉을 잡았다.
현대엔지니어링은 역대 첫 재무전문가 대표인 주우정 사장, 포스코이앤씨는 10여 년 만에 내부승진 대표인 정희민 전 사장이, HDC현대산업개발은 지주사에서 돌아온 정경구 사장이 선임됐다.
다만 이들의 경영 성적표는 대체로 만족스럽지 않다는 평가가 나온다.
우선 올해 업계 최대 이슈 가운데 하나였던 안전사고 문제에서 신임 대표들은 모두 자유롭지 못했다.
새 대표 체제를 꾸린 건설사 가운데 현대건설, 대우건설, 현대엔지니어링, 포스코이앤씨, HDC현대산업개발 등 DL이앤씨를 제외한 모든 건설사에서 올해 사망사고를 막지 못했다.
현대엔지니어링 건설현장에서는 올해 2월 발생한 서울-세종고속도로 교량 붕괴사고로 10명의 사상자가 발생했다. 이에 주우정 사장은 대표로서 참석한 첫 공식석상에서 사고와 관련해 사과하고 재발방지를 약속했다.
포스코이앤씨는 지난 4월 신안산선 붕괴사고에 이어 새 정부 출범 이후 강도 높은 안전강화 기조가 들어선 7월 말과 8월 초에 잇따라 사상사고가 발생했다. 이에 정희민 전 사장이 물러나고 포스코 안전특별진단TF 팀장을 맡은 송치영 사장이 새 대표에 올랐다.
최근 대형사 건설현장에서 끊임없이 안전사고가 이어지면서 건설업계 수장들을 향한 날선 시선이 여전하기도 하다.
실적 측면에서도 구체적으로 보면 아쉬운 수준에 그치고 있다는 분석이 나온다.
대부분 대형사들은 주택사업을 중심으로 원가율을 낮추며 영업이익을 회복하는 흐름을 보이고 있다.
다만 지속적으로 발생하는 일회성 비용 관리에 실패한 점, 일부 부문에서의 극심한 수주 부진이 발목을 잡히는 형국이다.
현대건설 이한우 대표와 현대엔지니어링 주우정 사장은 지난해 말 빅배스(잠재적 부실 털기) 이후 올해 경영목표를 공격적으로 제시했다. 현대엔지니어링을 포함한 현대건설의 올해 연결기준 영업이익 목표는 1조2천억 원에 가깝다.
다만 현대건설과 현대엔지니어링 모두 플랜트 부문 불확실성을 털어내지 못하며 연간 6천억~7천억 원가량의 영업이익이 예상되는 상황이다. 최근 3분기 실적발표에서도 불확실성이 이어지는 탓에 하향 조정하려던 목표 수치를 정확히 시장과 소통하지 못했다.
현대건설이 풍부한 신규수주와 함께 원전분야에서 큰 주목을 받고 있지만 단기 실적에서는 리스크를 여전히 털어내지 못하고 있다.
대우건설도 3분기 토목과 플랜트 부문 해외 현장에서 발생한 비용 탓에 당초 예상에 미치지 못하는 수익성을 확보하는 데 그쳤다.
대우건설은 올해 2분기와 3분기 연속으로 시장기대치(컨센서스)를 각각 15.6%, 43.2% 밑돈 영업이익을 내는 데 그쳤다. 자체적으로도 각각 1년 전과 비교해 영업이익이 후퇴했다.
DL이앤씨는 플랜트 부문 수주가 크게 부진한 데 영향을 받아 최근 3분기 실적발표와 동시에 매출, 수주, 영업이익 연간 계획을 모두 내려 잡았다.
영업이익은 2021년 분할 이후 3년 연속 감소세를 딛고 반등할 가능성이 크다. 하지만 특히 수주 부문에서는 목표를 기존 13조2천억 원에서 10조 원 아래(9조7천억 원)으로 낮춰 잡았다. 이에 내년 실적 감소 전망도 고개를 들고 있다.
▲ 올해부터 현대자동차그룹 건설계열사를 이끌고 있는 이한우 현대건설 대표이사(왼쪽)과 주우정 현대엔지니어링 대표이사 사장.
포스코이앤씨도 2분기 해외 공사현장의 원가 반영, 3분기 신안산선 사고관련 비용 반영이 이뤄지며 2개 분기 연속 영업손실을 봤다.
김승준 하나증권 연구원은 ‘3분기 실적발표 정리’ 보고서에서 “대형건설사에서는 올해 반복되는 해외 비용, 플랜트 수주 부진, 국내 건축·주택에서의 충당금 등이 발생하고 있다”며 “일부 기업들은 4분기에도 이런 비용이 나올 여지가 있다고 예고했고 내년에도 발생할 가능성이 있어 실적에 관한 변동성이 큰 시점”이라고 내다봤다.
반면 올해 새 리더십이 들어선 건설사 가운데 HDC현대산업개발의 정경구 사장은 여러 지표에서 나름의 성과를 거두고 있다는 평가가 나온다.
HDC현대산업개발은 올해 1~3분기 연결기준 매출 3조1200억 원, 영업이익 2070억 원을 거뒀다. 매출이 지난해와 유사한 가운데 영업이익은 3분기 일시적으로 시장기대치에 15.8% 미치지 못했지만 누적 기준으로는 지난해보다 45.1% 개선한 성적표를 받고 있다.
또 3분기까지 누적 신규수주 4조4344억 원을 기록하며 달성률 94.4%를 기록했다. 3년 연속 수주목표 달성이 가시권에 들어왔다.
건설업 색채를 벗어내고 있는 SK에코플랜트는 최근 그룹 인사를 거치며 장동현 부회장의 파트너로 SK하이닉스 출신 반도체 공정 전문가인 김영식 사장을 대표로 내정했다. 기업공개(IPO)를 앞두고 기업가치를 높이기 위한 변화에 속도를 내는 모양새다.
건설업계 한 관계자는 “최근 부동산 시장 규제까지 강화하면서 여전히 어려운 경영환경에 놓여 있다는 시각이 우세하다”며 “큰 폭의 대표 변화는 없을 것으로 보이지만 임원인사 특성상 각각의 그룹 상황에 따라 미리 단언하기는 쉽지 않다”고 말했다. 장상유 기자